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선물 세 번째 이야기

정남 님과 작별 후 남은 나의 초상화

2006년, 35살 첫 아이를 임신하였을 때

당시 군산시정신보건센터라는 곳으로 예술행사에 도움이 필요하다 하여 미술적인것을 돕는 지역 매개자로 방문하였다. 낯선 정신장애인들을 가까이에서 만나기는 처음이었고, 어설프지만 연극에 필요한 소품 만들기, 행진에 쓰일 깃발에 함께 그림 그리기 등 꽤 유쾌한 활동을 하였다. 그 후로 센터의 직원으로부터 미술요법 즉 그림 그리기 봉사를 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연이은 아이 둘을 출산하고 나 또한 온전치 못한 정신상태로 많이 힘든 터라 두려움이 앞섰지만 왠지 거절하지 못하고 꽤 긴 시간, 그때 뱃속의 아이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그들 중 정남님은 그녀 만의 인물 캐릭터를 무수히 그렸고, 방문할 때마다 또는 숙제를 내주지도 않았는데도 비슷한 이 그림들을 그려서 다음 주 방문 시 내게 건네주었다. 대부분의 종이는 센터에서 제공하는 이면지라는 도장이 찍힌 A4 프린트 용지 뒷면이었다. 


그녀가 자주 하는 말은  

선생님 화장품 샘플 있어요?

선생님 역사책 있어요?

고양이는 야아옹 해요 야아옹

고보연선생님 저는 00 아파트 살아요. 엄마랑 두부 만들었어요.


수도 없이 들었던 그녀의 정겨운 이 말들은 누군가의 하품이나 아~ 졸려 정도로 어느 누구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것들이며 익숙한 그 말들에 수도 없이 비슷한 대답을 해줬고 가끔 다른 회원들은 '정남님 알았으니까 그만해요'한다.


그런데 몇 달 전 이 시설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직원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난 눈물이 핑 돌았다. 좀 더 잘해주지 못한 것부터 역사책을 갖다 주지 못한 것 화장품 샘플을 주지 못한 것 등 여러 가지 것들이 떠올랐다. 가장 아쉬운 것은 그녀를 작가로 성장시키지 못한 것이다. 내 역량이 부족하고 바지런하지 못해서라는 자책을 수도 없이 하였다.


그래서 기록을 하기로 하였다. 

또 1년이 지났을 때 남겨두지 못한 이들과의 소소한 이야기가 후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


정남님의 그림은 그리운 시간을 담는다.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 또는 좋아하는 사람들은 빠르고 유연하게 그려진다. 그렇게 기록된다.     

그녀의 그림을 미술작가로서 평하자면 개성 있고 예술적이다. 그리고 사랑스럽다.


이렇게 행복한 사람이 또 있을까?

이 선물 같은 그림들을 자주 받았다니. 게다가 개미허리라 참 좋다. 날씬하다.

정남님이 행복하게 살아가기 바란다.


2022년 1월 28일

작가의 이전글 선물 두 번째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