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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메아리 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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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Jun 19. 2023

인간의 품종을 바꾼다

우생학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옛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모든 일은 근본에 따라 거기에 걸맞은 결과가 있다는 비유로 해석되고 근본은 본질이나 본바탕, 뿌리라는 뜻이므로 부모를 닮는다는 것은 분명히 유전적 특징이다.
의사 집안에 자식이 의사이고 부모가 변호사이면 자식도 법관이 되는 경우가 많고 요즘 시대 슈퍼 직업으로 불리는 연예인도 대를 이어 자식이 배우나 가수로 활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지만 부모와 같은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단지 유전적 형질만은 아니다.
'자식은 부모를 보고 배운다.'는 말이 있듯 어릴 때부터 부모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며 자라고 엄마가 자식의 교육에 적극적으로 훈육을 시키면 환경적 영향에 의해 자식이 공부를 잘할 수 있는 확률은 당연히 높다.
즉 아무리 우수한 유전적 특성을 타고난다 해도 교육과 환경이 받쳐주지 않으면 부모를 닮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반면 범죄자 부모에게 태어나고 열약한 환경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도 스스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받아 학업을 마치고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현존하는 사례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유전적 특징은 타고나지만 환경적 영향도 중요하다는 뜻으로 판단할 수 있으나 부모를 닮는다는 현상은 명백한 유전적인 특성이다.

요즘 현대인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들은 유전자 변형 식품들이 많다.
더 빨리, 더 보기 좋게 재배하고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유전자를 개량한 채소와 더 빨리 사육하고 더욱 부드러운 고기를 얻기 위해 유전자 변형으로 개량한 품종의 고기를 먹는다.
물론 기존의 토종 작물도 있고 토종 품종의 고기도 있다.
하지만 재배와 사육 조건이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는 식품들이다.
그런 이유로 대부분 사람들은 시장과 마트에서 유전자 변형 식품을 사 먹고 산다.
과학적으로 동식물의 유전자 변형이 가능하다면 인간도 유전자 변형을 통해 개량이 가능한 것이다.
19세기말부터 서양에서는 인간의 품종을 개량하기 위한 연구에 매진했다.
우생학이란 인류를 유전적으로 개량하기 위해 유전적 요인과 여러 가지 사람의 조건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영국에서 처음 시작된 우생학은 우수한 사람들을 만들어 내겠다는 목적으로 의학과 유전학, 통계학을 통해 우수한 인간들을 양산하고 열악한 유전자를 지닌 사람의 증가를 제한하는 것을 목적으로 우수한 형질의 사람들의 연구에 매진했고 반대로 육체적 정신적 결함을 가진 사람들의 연구도 포함되었던 학문이다.
다윈의 진화론을 뒤엎는 우생학은 1883년 영국 프랜시스 골턴에 의해 인간의 재능은 유전으로 결정되며 인위적인 교배로 우수한 인간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으로 학문으로 정립되기 시작했다.
유전자의 질을 개량해서 우수한 유전자는 보존하고 나쁜 유전자는 도태시켜야 한다는 논리이며 그 당시 품종을 개량한 불테리어와 닥스훈트, 퍼그가 등장했다.
그러나 개들의 외형이 달라져 다리가 짧아지고 몸통은 길어졌으며 유전적인 결함으로 동작이 느려진 개가 태어났다.
개량된 불테리어는 자기의 꼬리를 물려고 빙빙 도는 강박적인 행동을 반복했으며 퍼그는 개량 후 눈은 커지고 코는 납작해졌는데 이후 개량된 퍼그는 납작한 코로 인해 조금만 움직여도 숨을 헐떡거리게 되었다.

종교계의 반대와 우수한 인재를 양성한다는 긍정적 여론이 나뉘던 우생학은 1874년 미국의 리처드 덕데일이 발표한 '애더 주크'의 연구에서 범죄자는 대를 이어 태어난다는 주장이 '주크'의 조상이 범죄자였다는 사실을 증거로 우생학은 범죄자를 소멸시키고 사회를 통제할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보고서와 책이 출판되면서 덕데일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어 우생학을 지지하는 여론이 미국에서 일어났고 미국의 자본가들이 우생학 연구에 후원을 했으며 록펠러와 카네기, JP모건도 우생학 연구에 후원을 하고 하버드 대학에서도 우생학을 지지했으며 루스벨트 대통령도 적극적으로 우생학을 지지했던 인물이었다.
미국 재벌들이 우생학을 지지한 사유는 기업에서는 우수한 노동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자본가들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당시 사회적으로 우생학에 대한 긍정적 여론이 확대되자 법제화가 필요한 미국은 현대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혼인금지법과 이민 제한법을 제정한다.
혼인금지법은 정신질환이 있거나 유전적 병이 있는 사람, 알코올 중독자와의 결혼을 국가가 강제로 금지한 법이고 이민제한법은 외국인 범죄자와 매춘부 등 정상적이지 않은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하는 법이지만 사실 미국은 1790년대부터 백인에 대해서만 입국이 허용되었으며 우생학이 등장하며 제정된 법으로 연방법이 아닌 각주의 입헌에 따르는 법이었다.
1907년에 인디애나 주를 시작으로 단종법이 시행되었는데 단종법이란 국가가 강제로 불임수술을 강행하는 법으로 사회적 기준 미달자의 생식능력을 국가가 강제로 없애는 법이었다.
요즘 상식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미국의 법이지만 범죄자를 제한한다는 명분과 좋은 자녀, 우수한 인재를 만들 수 있다는 논리가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미국 시민에게 공감대를 형성했던 것이다.
단종법은 성범죄자와 성매매여성, 강력범죄자와 부랑자가 강제 불임수술의 대상이었으며 심지어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흑인과 인디언도 단종법을 받아야 하는 몇몇 주도 있었다.
인디애나 주에 이어 1935년에는 미국 28개 주에서 단종법을 입법화했으며 단종법 시행 후 미국에서 강제로 불임수술을 받은 여성은 공식적으로 1만 6천 명이 넘었고 1974년 단종법이 폐지되기 전까지 비공식적으로는 수십만 명이 불임수술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51개 주에서 과반이 훨씬 넘는 주에서 단종법이 입법화되면서 미국 사회는 우생학을 지지하는 쪽으로 여론이 기울었으며 미국은 가족경진대회를 통해 건강한 치아, 유전적 결함이 없고 IQ 데스트에 통과한 사람과 음악적 소양이 있는 사람 등 가족 경진대회에  합격한 가족에게 메달을 수여했다.
이어 미국은 우생학 증명서 (Eudugen certification)를 운전면허증처럼 발급하는 지경에 이른다.

한편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세계 대전을 일으키기 전 전쟁을 위한 명분으로 로마시대의 고서 타키투스(Tacitus)가 쓴 '게르마니아'를 이용한 사실이 있다.
타키투스는 고대 로마의 호민관, 법무관을 지냈던 역사가로 그의 저서는 '타키투스의 역사'와 '타키투스의 연대기'가 있고 타키투스 개인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없으며 그가 집필 초기에 ‘게르마니아’를 쓴 것으로 추정되는데 ‘게르마니아’는 갖가지  편향적인 내용으로 쓴 46페이지의 책으로 당시 퇴폐적인 로마인에 비해 게르만민족을 고귀한 야만인이라 기술했고 이러한 내용 때문에 16세기 이후 독일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타키투스는 게르마니아에 가 본 적도 없었고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구전을 통해 들은 내용만을 썼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한 책이며 정치적 주장을 흥미롭게 이야기한 구전을 통한 문학서로 평가되는 책이다.
히틀러는 이 책을 근거로 게르만 민족 아리아인의 인종우월주의를 강조하며 고서에 묘사된 부분을 통해 고대부터 게르만족은 우월했다는 증거로 내세워 독일인을 통합하고 전쟁의 명분을 합리화했으며 세계 대전이라는 광란의 재앙을 일으켰다.
정권을 잡은 히틀러는 세상을 좋은 피와 나쁜 피로 구분하고 좋은 피는 보존해야 할 순수한 혈통이고 나쁜 피는 제거해야만 하는 더러운 것이라 정의했다.
나치와 나치 당 총수인 히틀러는 순수 독일 아리아인의 증가를 위해 우생학에 몰입했다.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그다음 해 1934년에 나치는 정신질환자와 장애자의 나쁜 피를 제거한다는 그들만의 명분으로 불임수술법을 제정했고 파란 눈, 금발머리, 흰 피부, 큰 체격의 특성을 순수 아리아인이라 규정했으며 급기아 레벤스보른(Lebensborn)이라는 '아기공장'을 설립한다.
레벤스보른(Lebensborn)은 독일어로 생명의 샘이라는 뜻이다.
레벤스보른은 금발, 푸른 눈, 흰 피부의 여성을 입소시켜 인종적으로 순수 아리아인이라고 규정되는 사람끼리 강제로 교배를 시켜 아이를 낳게 했다.
레벤스보른에 자발적으로 들어온 여성도 있었지만 강제로 끌려온 여성이 더 많았고 레벤스보른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사실 강간에 의해 태어난 사생아들이다.
아기를 낳은 생모는 아이를 포기해야 했으며 아기들은 나치 친위대에게 입양됐다.
노르웨이에 아리아인의 특징에 맞는 파란 눈에 금발, 흰 피부가 많다는 이유로 나치는 1941년 노르웨이에도 레벤스보른을 설치한다.
그러나 나치가 규정한 순수 아리아인의 파란 눈, 금발, 흰 피부는 유전적으로 색소가 부족하면 나타나는 특징으로 사실 나치가 규정하는 아리아인의 외형 조건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았지만 히틀러와 극단주의 나치의 자가당착은 그러한 논리가 곧 나치의 종교와도 같은  진리였다.
나치는 아리아인의 특성을 연구하기 위해 사람이 사망하기 전까지 혈액을 모두 채취하여 실험에 사용했고 쌍둥이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생체 실험에 사용한 쌍둥이만 1,500 명이 희생되었으며 심지어 샴쌍둥이를 만들려는 인체 실험도 감행했다.
그리고 레벤스보른에서 태어난 아기가 성장하면서 금발머리 색깔이 변하거나 피부색이 짙어져 아리아인 혈통이 아니라 판단되면 가차 없이 어린아이들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고 수많은 어린 생명이 레벤스보른에서 죽어나갔다.
또한 유전적으로 열등한 인간을 없애기 위해 8만 명이 넘는 장애자와 정신질환자들을 나쁜 피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가스실에서  살해했다.
히틀러와 나치는 아리아인은 원래 가장 뛰어난 민족이고 세계를 지배할 운명으로 태어났다는 망상에 잡혀있었으며 히틀러의 세계 제패의 야욕에는 독일인이 세상의 주인이어야 한다는 정신병적 집착이 강했다.
그러나 고대부터 로마가 세계의 패권을 장악했던 시대에 모든 유럽인이 게르만족을 가장 저속한 야만인으로 취급했고 노예로 잡혀온 아리아인은 체격이 크고 싸움을 잘해 검투사로 이용된 기록이 있다.
히틀러는 독일의 영토만으로는 다음 세대에 태날 아리아인들의 국토가 모자란다는 사유로 독일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고 오스트아를 병합했으며 폴란드와 소련을 침공해 다음 세대에도 아리아인이 살 수 있는 영토를 넓히는 전쟁에 광분했다.
독일에 거주하는 많은 유대인이 순수 아리아인의 피를 더럽힌다는 이유와 1차 세계대전의 패배 원인은 유대인 때문이었다는 중상설을 퍼트려 유대인을 수용하는 대규모 집단 수용소를 짓고 유대인을 가혹하게 박해하는 반인륜적 만행을 저질렀으며 결국 인종청소라는 홀로코스트를 감행한다.
그로 인해 1941년부터 1945년까지 60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이 나치에 의해 희생되었다.

히틀러가 일으킨 전쟁은 엄청난 피로 역사를 물들였고 연합군의 승리로 전쟁은  끝났지만 너무나 많은 희생이 있었기에 아무도 승리를 축하할 수 없었다.
2차 대전에 독일이 패배하자 레벤스보른에서 태어난 많은 아이들은 나치의 아들로 취급받아 차별을 받으며 살아야 했고 특히 노르웨이  레벤스보른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나치의 자식이라는 인종차별까지 받으며 살았다.

영국에서 시작된 우생학은 미국 사회의 기묘한 역사를 남겼고 1920년대 세계 공황이 몰아치면서 우생학의 열기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모든 사람이 고통을 겪으면서 유전적 조건보다 사회적 환경이 세상을 사는데 가장 절실한 것임을  미국을 비롯한 세계가 공감을 했고 사람은 타고나는 것이 인생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공황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생학은 세계 공황과 전쟁과 함께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잔인했던 생체실험의 데이터는 현대의학의 자료로 활용되고 있으며 현재에도 유전 공학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불치의 병을 없애고 소멸되지 말아야 할 인류의 식량 때문에 환경오염에도 사멸되지 않는 식물과 동물은 존재해야 한다.
우월한 인간을 개량하려던 우생학은 현대과학에 의해 밀려났으나 현대는 인위적으로 후천적인 우수한 인재를 만들기 위해 몰두하고 있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사람은 구분되고 부모를 잘 만난 사람들은 좋은 환경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지만 요즘 시대에는 돈이 없으면 최고의 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없으며 세계 각계각층에서 능력주의(meritocracy)만이 가동되는 세상이 되었다.
여유가 없어도 부모들은 빚을 내서라도 자식들을 능력주의에 필요한 인재를 만들기 위해 교육을 시키고 있지만 문제는 좋은 학력을 갖춰도 배경이 좋지 못하면 좋은 직장에 다닐 수 없는 시대이다.
사회의 구조가 빈익빈 부익부로 교체되어 구동되고 있으며 이러한 구조의 변화는 세계가 동일하다.
금수저는 결코 유전적 특징은 아니지만 요즘 시대의 금수저는 대를 잇는 형질이 되어 버렸다.
인간의 진화 과정에 현재와 같은 과학의 발전 속도가 추가된다면 머지않은 시일에 할리우드 영화처럼 유전자 개발을 통해 슈퍼 컴퓨터의 두뇌를 가진 인간을 만들 수 있고 1인 100명 이상을 맨몸으로 죽일 수 있는 무기형 인간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은 신의 뜻을 알지 못하는 법이고 과학으로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과학은 결코 재해나 재난을 막을 수는 없다.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일은 무모한 짓이다.

아인슈타인이 활동하던 시기에 미스 월드 출신의 미녀가 아인슈타인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의 내용은 우리가 결혼해서 2세를 낳으면 나와 같은 외모에 당신과 같은 천재가 태어날 것이니 우리가 만나 사궈보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받은 아인슈타인은 답장을 보냈다.
답장의 내용은 "만일 우리가 결혼해서 자식을 낳는다면 당신 같은 멍청한 두뇌를 갖은 나처럼 생긴 자식이 태어날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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