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이기주의의 구호가 되었다.

진정한 정의

by Paul

집단이기주의의 구호는 언제나 '정의구현'이다.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예나 지금이나 대다수의 공통된 의견을 정의라 일컫는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정의이기 때문에 적군에게는 비열하고 비인간적인 행동이 아군의 입장에서는 정의가 된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선과 악의 구분이라 할 수 있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정답이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정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정치, 사상에 따라 변하는 것이고 어느 사회나 다수의 보편타당한 의견이 정의가 될 수 있지만 어느 나라이건 힘 있는 권력이 언제나 정의로 귀결되었고 비록 모순과 죄악일지라도 권력이 막을 내리기 전에는 정의로 고착되었던 것을 역사는 증명한다.

세계 어느 곳이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의를 내세우는 집단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러나 다수의 의견이 언제나 합리적 일수는 없고 그 다수의 주장은 옳고 그름보다 정의라는 명분 뒤에는 추구하는 목적이 숨어 있기 마련이고 그 목적은 대부분 이익이라는 공통분모가 단지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뿐이다.
평등이 정의와 동일시되지만 평등과 정의는 결코 같은 개념이 될 수 없다.
평등이란 차별 없이 고르다는 뜻이고 요즘에는 공평한 분배의 의미가 공정으로 표현되지만 공정 이란 조화와 균형의 틀에서 차별 없는 기회의 제공을 뜻하는 것이므로 선하고 옳다는 의미의 정의는 공정하다는 뜻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흔히 정의구현이 평등을 위한 전제로 등장하는데 다양한 사회구조는 저마다 다른 위치에서 특화된 개체들의 역할로 세상은 움직이는 법이므로 평등한 개념이란 존재할 수 없고 정의가 평등한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염원 일 수밖에 없다.

소득의 가치가 일률적일 수는 없으며 차별 없는 기회의 결과는 개인의 몫이기 때문에 각자 다른 역할로 사회는 조직되는 것이고 사회의 필요한 구성원이 되기 위해 교육이 선행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력과 능력에 따라 소유의 가치는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며 순리이다.


요즘 화두로 등장하는 소득분배란 모든 사람들의 이익을 공평하게 나눠 갖는다는 뜻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지만 사회를 유지하는 동력은 노력과 능력의 결과로 만들어지고 그에 대한 이익은 개인과 분야에 따라 차별화될 수밖에 없으므로 소득분배란 자신의 능력에 따른 대가를 받는 것이 공정한 분배이며 남의 몫 나눠 갖겠다는 잘못된 오류가 결코 정의가 아니라는 명확한 인식이 규정되어야 한다.
선과 악이 존재하고 진실과 거짓에는 명백한 구분이 있듯이 모든 종교와 정치, 사상을 초월해 악을 규탄하고 선을 실천하는 것이 다름 아닌 정의이며 불의에 대항하는 올바른 자세가 정의이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정의이다.
역사를 왜곡하고 경제의 흐름을 억지로 바꾸려는 노력은 저항일 뿐이며 순리를 역행하고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동은 증오와 보복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는다.
인간을 위한 진실한 정의가 시대에 따라 편향된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와 혼돈해서는 안 되며 정의라는 명분으로 포장된 편협한 사상에 현혹되어서도 안 된다.
예나 지금이나 정의가 힘을 얻으면 그 힘은 부당한 이익을 발생하고 이익을 얻은 정의는 언제나 변질되고 부패되기 마련이며 또 다른 원수를 만드는 법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군사정권에 대항하는 민주화 운동의 중추였으며 1987년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인 학생들을 연행하러 온 경찰병력을 맨몸으로 막아서고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지나가시오.”라고 말하고 경찰병력을 끝까지 막아낸 유명한 일화가 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인지 독재정권의 총칼 앞에 온몸으로 대항하던 성직자들은 언제부터인가 편향된 정치색으로 퇴색되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사랑과 평화를 전교해야 할 사제들이 정치 집회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에서 풀려나자 노무현을 부활한 천주님으로 모시겠다는 망발을 하고 북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찬양하기도 했다.
국무총리를 지낸 이회창 총리는 당대표 시절 친북을 외치며 시위 현장에서 선동하는 사제들에게
“사제들이 정말로 하느님 말씀과 정의를 위해 순교할 용기가 있다면 안방에서 활개 치듯 안전한 서울광장 촛불시위에 앞장서지 말고 북한에 가서 정의를 구현하고 순교하라. “라고 비판했다.

그 이후 북한에서 활동하는 사제의 이야기는 한마디도 들은 바 없다.
연평해전에서 북한의 도발로 무고한 우리의 젊은 아들들이 사망하고 불구가 된 연평해전을 정당하다고 어떤 사제가 공식적으로 발표했고 여론의 목소리가 들끓어 오르자 시국 평화를 위한 행사를 한답시고 관련된 신부들이 모여 단체 미사를 집전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합리화하기 바빴고 거룩한 성전에서 편향된 정치 강론하다 임기 못 채우고 쫓겨나는 신부들이 늘어나도 그들의 ‘정의’를 위한 행보는 멈추지 않는다. 성범죄 혐의로 자살한 정치인의 장례식에는 친분이 있던 정치인들도 방문을 금지하는 와중에 한국 가톨릭 교회의 최고 수장은 서둘러 문상을 갔고 죽은 영혼을 위해 함께 기도하자고 공식적으로 얘기를 했다. 가톨릭 교리는 자살한 영혼은 구제받을 수 없으며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자기 스스로 끊는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라고 가르친다.
서로 다른 목소리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필연적인 원동력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고 정치적인 논리의 공박도 선진적인 정치를 위해서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서로 다른 주장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 합리적이어야 하고 공익을 무너트리는 상식을 벗어난 편향된 집단이기주의는 종식되어야 할 사회의 악이다.

시위 현장의 구호로 사용되는 ‘정의’
정치인들의 서두와 말미를 장식하는 ‘정의’
교회의 ‘정의’는 친북을 의미한지는 오래되었고 다음에 등장하는 ‘정의’는 어디에서 들려올지 궁금해진다.
오래전 TV광고에서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라는 카피가 유명했었다. 그 후 초등학교 시험에서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은 무엇인가?라는 시험문제에 한국 초등학생 40%가 ‘침대‘라고 답했다는 웃지 못할 통계가 있었다.
초등학교 시험문제에 ’ 정의‘가 무엇인가? 를 묻는 문제가 출제된다면 “거짓말”이라 답할 학생은 없을 것인지 큰 걱정이다.
제발 고귀하고 숭고한 우리말 단어 ‘정의’가 더 이상 왜곡되어 불리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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