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가 끝인지 앞이 보이지 않아
10대 얼마나 해맑았는가
20대 얼마나 자기 잘난 맛에 도취되어 살았던가
30대 도대체 어디까지 끝장을 보여주려 하는가
난 아직 36세 여성이다.
삶에 대한 통찰을 하기 시작한 지 만 10년이 되었다. 내 삶에 대한 플랜도 없을 때, 겨우 부모님들이 잘 키워주신 덕에 잘 먹고 잘 입고 잘 배우게 도와주신 것에 보답하겠다고, 그나마 내가 조금 애쓴 것은 수능 공부가 첫 번째 내 인생의 첫 번째 관문일 뿐이었다. 그때 나는 수능 문제에 허덕이고 점수에 대한 집착으로 내 삶과 인간에 대한 성찰의 존재에 대한 여부는 알지 못한 채 그땐 그런 것이 똑똑하고 공부 잘한다고 여기고 살았다.
한국에서 그런 교육을 받고 잘난 듯이 대학에 들어가 이제는 어른이 되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고 선택한 것이 결혼이다. 20대 초 내가 배운 것을 가지고 사회에서 인정받고 돈도 벌어보니 웬걸, 이렇게 쉬운 것을.
그때부터 나는 돈을 버는 것도,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고, 싫으면 안 하면 그만이었다.
결혼부터 나의 30대의 하락선은 시작되었다. 결혼이 문제가 아니라 그 당시 나의 무지함과 어리석음과 어리숙함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고찰과 통찰이 없었기에 좋은 사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과 경험은 전혀 없었다. 문제의 나는 내가 성공하고 부족하지 않다고 여기는 나만의 허상 속에서 모든 것을 진행시켰다. 내 주변에는 모든 것이 허상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바로 진행되는 나의 작고 큰 성공의 경험들은 나에게 자만심과 허상이라는 허물을 남겨 나를 그 안에서 헤엄치게 도와주었다. 최고 따뜻한 헤엄은 이혼 후 혼자 초고속의 승진을 하고 10배가 띈 연봉이었다. 나는 그렇게 30대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내가 삶의 통찰을 어느 정도 이루었다 자만하면, 내 인생의 다음 경계선이 나타났다. 나는 이제 이 정도면 됐다. 성공했으니 이제 이대로 가면 되겠구나. 자만하고 멈추려는 순간 하늘은 절대 그것을 기쁘게 보지 않나 보다. 삶에 대한 통찰을 이제부터 시작하게 하려나 보다.
아직 나는 40대가 오지 않았지만 공자님이 말씀하신 불혹이 온다면 그때 나는 나의 30대를 어떻게 표현할는지 아직은 감이 안 오지만 지금 나는 낭떠러지로 낙하하고 있는 듯하게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올라간 사람은 내려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내려온 사람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고 하던데, 나는 분명 오르기 위해 박차를 다 할 것이다. 노력하고 이룬 것이 있기 때문에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의 멍청한 실패들과 어리석음으로 놓친 것을 그냥 보내지 않고 지식 삼아 다시 잡을 것이다. 또 다른 의지와 꿈을 만들었다.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내가 불편함을 주는 상황일 수 있지만 나는 그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나와 같이 모든 30대들은 아마도 속에서 말 못 할 고민들과 걱정들이 서로 얽혀 있을 것이다. 모든 것과 나와의 관계에서 나는 나의 뜻에 거리를 두고 떨어뜨려 놓기로 하였다. 내 머리의 힘이 아닌 외부의 힘의 작용에 따라 물 흐르듯 잠시 나의 삶을 맡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