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신체증이란 심리적인 문제로 인해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또는 마음의 괴로움과 스트레스를 표현하지 못할 때 병이 생기는 현상을 의미한다. 간단히 예를 들면 기분 나쁜 상태에서 음식을 먹고 체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혹은 나에게 잘못한 누군가를 수년간 미워하고, 그 생각을 강박적으로 되풀이하면서 용서하지 못하면 정신신체증으로 큰 병을 유발할 확률이 높다.
글쓰기를 선택한 것은 내가 남들에게 하지 못하는 말들이나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대면하고 싶어서다.
내가 하는 일과 역할에 우리는 나의 본모습이 아니게 살 때가 많다. 엄마니까, 여자니까, 상사니까, 선생님이니까 등등 나에게 꼬리표처럼 붙어 있는 타이틀이 아닌 본연의 나를 느끼고 싶을 때 글을 쓰곤 한다. 우리는 늘 타인을 의식하면서 잘 보이고 싶고 좋은 말을 듣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나는 내 노트에 글을 쓸 때만큼은 남을 의식 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과 생각들을 적는다.
엄마로서 아이들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말을 하는 것은 꼭 엄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못된 엄마 같다. 가장으로써 가정을 책임지기가 너무 힘들고 어렵다는 말은 어른으로써, 또 이혼한 여자로서 누가 그런 선택을 하라 했냐는 비난이 쏟아질 것만 같다. 일하기 싫다고 쉬고 싶다고 한다면 뭐 먹고 살 것이냐고 타박할 것만 같다. 나는 늘 다 할 수 있을 것 마냥 별것 아닌 것처럼 여기는 척하면서 나의 힘들고 지침을 나 혼자 껴앉는 습관이 있다. 그래도 내 옆에는 내 말을 들어주고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나는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감정을 있는 그대로 공감받기는커녕 더 큰 상처가 되어 내 가슴에 한번 더 새겨질 것만 같다.
역할이 커지고 책임이 큰 자리에 있을수록 외롭다는 말은 아무래도 약한 모습을 마음 놓고 비출 곳이 없어서 일거다.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할 줄 아는 것이 많기에 그 안에서의 나약함은 있기 마련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기보단 더 나음을 기대한다. 그런 기대에 맞추기 위해서 사람은 또 사방을 보지 못한 채 앞만 보고 달려갈 때가 있다.
그러다 크게 육체적인 병이 닥치고 나면 그때야 정신을 차려본다. 그러면 나는 나를 돌보지 못하고 남을 돌보는 데에만 신경 썼다. 어제 의사를 만나서 이런저런 물음에 답해보고 맥박을 체크해보는데 큰 스트레스와 우울증세가 지금이상으로 더 심해지면 우울증이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왜 우울증세가 오냐 물어보니 불행하다고 느끼면 몸에서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서 육체적인 병이 온다고 한다. 의사가 그렇게 말하는데 내가 불행하다고 스스로 느끼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고, 힘겹다고 몸이 말을 하는데 나는 계속해서 그 반응을 무시하고 있었나 싶기도 했다.
마음에서 미움이나 서러움을 하나씩 내려놓고 감사함으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힘들고 아팠나 보다.
브런치를 통해 솔직하게 훌훌 털어내는 것을 이제는 나 혼자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공감을 통해 사랑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