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탄생, 출산은 여자의 특권

나는 우주의 일부이고, 모든 것은 자연스럽다.

by 와일드 퍼플
대부분의 포유동물은 자궁에서 나올 때, 말하자면 유약 발라 구운 도자기 같은 상태로 나오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든 재 성형하려면 긁히거나 깨질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인간은 용광로에서 막 꺼낸 녹은 유리 덩어리 같은 상태로 자궁에서 나온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간의 탄생 모습을 동물과 비교한다. 인간을 유리 덩어리로 표현한 데에는 갓 태어난 태아의 감각적 느낌을 표현하는 그 이상으로 가변성을 대표하는 물질로써 성질을 꿰뚫어 짚은 부분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동물과 인간의 차이는 인류 자체가 스스로 진화 가능한 존재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삶이 존재하지 않고 생명과 번식만이 주 목적인 대상으로 포유류들을 구운 도자기라 말한다. 그중 인간은 번식의 목적 속에서도 다양한 창조 과정을 만들어내고 발전과 발명의 반복속에서 문명의 역사를 기록해온, 갓구운 유리덩어리로 보고있다.

나에게도 두 번의 출산과정이 있는데 수많은 인류들이 약 7만 년 전부터 수억만 번의 출산으로 이렇게 내가 지금 인공지능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나는 분명하게 탄생은 우주의 원리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믿었다. 본능적으로 나는 내가 인간으로서 주도적으로 출산의 경험을 만들어 내고 싶었고, 의사 시간과 컨디션과 근무 환경에 맞추어 내가 처음 경험하는 새 생명의 탄생을 결정 짖고 싶지 않음을 느꼈다. 물론 이렇게 가능하리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을 때에는 아무 의견과 생각 없이 엄마가 될 뻔했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생각하고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내가 조금만 집중하고 깨어 있으려 노력한다면 분명하게 기회는 내 것이 된다.

나는 아이 갖는 것을 내 나이 또래 여성들과 비교해서 이르게 고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쩌다 자연주의 출산을 한 여성의 책을 보게 되었고 그녀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세상에 존재하는 무지한 것들을 법규인 것 마냥 따라 할 뻔 한 수박껍질과 같은 오류의 껍질을 벗겨 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두 번의 자연주의 출산의 경험으로 지금도 많은 출산을 앞두거나 아이를 갓 기르는 여자들을 위해 솔직한 경험을 토대로 강의를 하기도 한다.


그중 많이 관심을 갖는 부분이 왜 자연출산의 결정을 하였느냐,

그럼 진짜로 자연출산을 하고 나서 아이가 뭐가 다른 거 같으냐,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이냐,

그렇게 하면 진짜 다른 것이 무엇이냐,

이러한 질문들이 생기곤 한다.


그럼 우선 내가 현재 평범한 출산이라 일 컸는 산부인과에서의 출산을 먼저 조밀하게 살펴본다.

내가 산부인과 병원에서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우선 적으로 '산모는 환자가 아니다'라는 관점이다. 아이를 낳은 고통은 질병으로 인한 아픔의 고통이 아니라 탄생을 앞둔 자연적인 생태적 고통일 뿐이다. 애초에 산모가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 아픈 고통을 참으면서 주사 바늘 꼽고 있을 이유가 없다.

출산의 고통을 느끼는 순간에도 나는 자유롭게 몸을 움직일 수 있어야 했고, 한 가족이 될 새 생명이 탄생할 때 함께 기다리는 사람들이 배제되는 규율은 그 아이와 가족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다음으로 신은 인간에게 태아가 세상에 나올 육체를 지닐 수 있도록 40주의 시간을 주었고 세상에 나오는 그 아이가 그것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아이의 몸무게와 두뇌의 크기를 기준으로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라고 출산 예정 날을 앞으로 결정지어 놓는 경우가 많다. 시간을 앞당겨 먼저 자궁에 신호를 보내 태아가 우주라고 느낀 전부인 엄마 뱃속의 자신만의 집을 위축을 시켜 압박의 반복을 통해 태아에게 자극을 주는 것은 너무나 무섭고 위협을 가하는 행위라 생각했다. 임신을 하고 10개월 후의 자연 출산을 준비를 해왔더라면 아이의 몸무게와 둘레도 함께 아이와 엄마는 호흡하고 같이 나란히 성장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예외적인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함께 16시간 이상 고통을 함께 해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아이와 나의 불안한 감정은 건강한 출산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최대한 마음을 편하게 서로 가지고 싶었다. 산모가 출산을 하기 위해 어디론가 이동을 하면 낯설기도 하고 불안할 수 있으니, 최대한 집에서 했던 대로 자연스러운 환경 속에서 매일 듣던 음악과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나는 나를 위한 하나의 존중이었다. 그렇게 따뜻한 분위기에서 가족들과 함께 출산의 경험을 함께 하고 싶었고, 의사의 재촉과 간호사의 불편한 시선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아이가 세상에 태어날 준비를 갖추고 길을 통해 자궁 밖으로 나오는 그 20분의 시간 동안 나는 아이의 두뇌의 크기만큼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주고 싶었다. 나는 아이의 본능적인 힘과 능력을 믿었고 높이 사고 싶었다. 그래서 먼저 조금이라도 아이가 나오는 문을 앞서서 째거나 찢는 행위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한 덕분에 나는 자연스럽게 회복이 빨랐고 또다시 병원에 가서 재 치료해야 하는 불편함도 겪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가 세상의 밖으로 나왔을 때 양수로 꽉 차 있던 호흡기관과 소화기관은 공기로 인해 타 들어가는 고통을 처음 겪는다고 한다. 그때 숨을 쉬면서 이 지구의 대기를 호흡기관으로 빨아들이는 그 순간에도 거꾸로 들어 엉덩이를 톡톡 아픔을 주며 숨을 쉬게 해야 할까?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태어나서 숨을 쉬는 그 순간에 울음이 아닌 목에서 성대가 울리는 소리뿐이지 아파서 불안해서 나오는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20시간 동안 출산 시 아픔이 올 때에도 그리고 탄생 그 이후에도 고요하고 잔잔하게 흘렀다.


자궁 속에서 아이는 산소와 영양분을 엄마의 탯줄로 공급을 받아왔는데 이제는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있고, 입을 통해 엄마의 젖을 물고 빨 수 있으니 가장 먼저 퇴화되는 것이 탯줄이다.

지금 탯줄은 분명히 아이가 두 가지의 능력을 겸비했을 때 자연스럽게 퇴화가 된다고 말한 것은 출산 후 바로 탯줄을 잘라야만 하는 산부인과의 문화가 나는 미덥지 못하였고 시간이 돈인 병원에서는 내가 불안했다. 여유 있게 나와 가족만을 위한 공간이 필요했고,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태어나자마자 내 가슴 위에서 아이는 20시간의 긴긴 여정을 달래는지 눈을 깜박깜박하며 나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꼼지락거렸다.

아기가 세상에 적응하는 동안 내가 함께 해주고 싶었고, 엄마의 심장소리가 갑자기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인간은 갓 구운 유리와도 같은 가변성을 띄고 진화를 하는 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리고 출산은 여성만의 특권이라 생각했기에 나는 자연주의 출산을 선택했다. 권리란 지켜야 하는 것이지,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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