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가고 싶다

by 서퍼스타

저녁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아니 컵라면이니까 익혀 먹었다고 해야 하나? 후텁지근한 날씨를 뚫고 집에 도착하니 나의 생체 베터리는 깜빡깜빡 방전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대로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장판과 물아일체가 되고 싶었으나 이 망할 습기는 그마저도 내키지 않는 기분 상태를 선사했다. 젖은 미역 줄기처럼 기분 나쁜 촉감으로 엉겨 붙는 바지와 상의를 벗어 던지고 전기포트에 물을 받아 전원을 올렸다. 지금 내 에너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요리였다. 그렇게 국물까지 비워내니 서서히 에어컨의 냉기가 집을 채우고 내 몸에 들러붙었던 끕끕함도 조금씩 덜어냈다. 그런데 컵라면으론 에너지를 채울 수 없던 것일까 아니면 탄수화물 섭취에 의한 혈당 스파이크가 온 것인지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덮쳤다. 아... 씻어야 하는데... 벌써 잠들면 안 되는데... 난 운동복을 입고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공원 한 바퀴 돌면 잠이 달아날 것이다. 아직 씻지 않은 더러운 몸뚱이를 다시 습한 세상에 내던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걸어도 걸어도 잠은 달아나지 않고 마치 야간 행군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처럼 끔뻑끔뻑 졸며 걷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도대체 컵라면에 수면제라도 탔단 말인가? 혈당 스파이크가 아니라 혈당 바주카포 아닌가? 이러다간 공원에서 잠들것만 같았다. 공원의 나무가 빽빽한 공간을 보니 포근해 보였다. 길을 벗어나 몇 걸음만 들어가면 마치 산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 것만 같았다. 해가 진 어둠 속에서 공원의 나무숲 사이는 마치 딴 세상과도 같았다. 몽롱한 잠기운에 공원의 나무숲을 바라보니 예전 군대에서 느꼈던 기분이 되살아났다. 난 산을 좋아했다. 특히 어두컴컴한 밤에 산속에서 훈련할 때면 묘한 신비감과 평온함이 들었다. 고양이처럼 태연히 나무 사이로 걸어 들어가고 싶었다. 그렇게 빽빽한 나무 사이에 누워 잠을 청하고 싶었다. 찌르르 우는 풀벌레 소리와 서걱서걱 나뭇잎 밑에서 움직이는 벌레의 기척, 한들한들 흔들리는 나뭇잎. 흙냄새와 풀냄새 그리고 습기가 만들어 내는 자연의 냄새까지. 다시 전투화를 신고 전투복을 입고 어두운 밤 산으로 걸어가고 싶다. 라면 한 그릇에 이런 생각까지 들 줄이야. 아무래도 숲의 기운이, 자연의 치유가 필요한가 보다. 나는 지쳐있는가...?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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