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라(Patara)’에 도착해 유적을 찾았다. 이곳저곳 발 가는 데로 둘러보고 어디가 길인지도 모르고 마구 헤집고 다니다 다 부서지고 밑동만 남은 건축물 앞에 당도했다. 건축물 앞에는 세계 최초의 등대일 수도 있다는 설명이 쓰인 안내판이 있었다. 최초면 최초지, 최초일지도 모르는 이라니. 어디서 요상한 말장난으로 관심을 유도하나 싶었는데, 너도나도 “내가 원조다!”라고 외치는 우리네 음식점들을 생각하니 꽤나 양심적인 수식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초나 최고일지라도 이렇게 다 부서져서는 등대인지 알아보기도 힘들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문득 “이 황량한 모래밭에 웬 등대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등대라 하면 자고로 바닷가에 있는 게 아닌가? 그렇게 주위에 바다가 있을 거란 생각에 무작정 모래밭을 걸었다. 그렇게 모래언덕을 넘으며 걷기 10여 분. 탁 트인 바다와 끝없이 펼쳐진 해변이 나타났다. 그렇게 갑자기 뚱하니 서게 된 해변의 어느 한 지점. 주 윌 둘러보니 군데군데 축축 쓰러질 듯 늘어진 덤불이 있었고, 띄엄띄엄 홀로 있는 사람들 몇이 눈에 띄었다.
난 파도가 밀려오는 바로 앞까지 가 배낭을 벗고 주저앉았다. 그렇게 앉아 쉬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기에 심심한데 잘됐다 싶었다. 더위에 익은 몸을 식히고자 수영을 한바탕하고 나오니 저쪽 덤불에 자기 짐이 있다며 가서 과자랑 콜라도 먹으며 쉬다 가라는 친구. 어렸을 적 맛있는 거 사준다는 아저씨 따라가는 모양새였지만 수영까지해서 허기가 바짝 오른 내게 달달한 과자와 콜라의 유혹은 실로 치명적이었다.
친구를 따라가니 축 늘어진 나뭇가지가 근사한 텐트를 만들고 있었다. 그 밑에 수건을 깔고 나란히 누워 남자가 가져온 과자와 과일, 콜라 등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옆 덤불에 50대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가 와 자리를 잡더니 옷을 하나둘 벗기 시작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는 거겠거니 하고 있는데, 어? 어어? 잠깐만! 어디까지 벗는 거야? 우리의 소중이를 가려야 할 최소한의 옷까지 몽땅 벗어버린 아저씨의 모습에 놀라고 웃기기도 해 옆의 친구에게 옆에 아저씨를 보라며 눈짓했다. 그런데 “저게 왜?”라는 듯한 덤덤한 그의 표정에 오히려 당황한 나. 그리고 그 친구는 내가 당황한 걸 눈치챘는지 이곳은 누드 비치라고 설명을 해줬다. “아!”하고 놀라는데, 플러스 게이비치라는 추가 설명이 뒤따랐다.
“오어어어?!” 친구의 설명에 나는 더욱 당황하며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눴던 대화에서 미묘하게 어긋났던 부분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처음 만난 사이치고는 꽤 수위 높은 얘기를 하던 것도, 그의 애인 얘기를 하는데 자꾸 ‘She’가 아니라 ‘He’라고 들렸던 이유도(난 나의 부족한 영어 실력 탓에 잘못 듣고 있는 것인 줄만 알았다), 모든 미스터리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런 나의 반응에 또한 당황해하는 친구. 그는 내가 게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당황했다가 이내 실망하는 기색을 보였다(미안한데 실망하지 말라고).
친구는 당연히 나 역시 게이고, 상대(?)를 찾아 해변을 찾은 것으로 오해했던 것. 오, 마이 갓! 친구의 추가 설명을 들어보니 해변의 초입부는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해변이란다. 하지만 초입으로부터 꽤 멀리 떨어진 이곳은 아까의 설명처럼 게이들을 위한 곳이었는데, 나는 모래언덕을 질러왔기 때문에 얼떨결에 이곳에 당도한 것이었다. 모든 오해가 풀리자 우리는 한바탕 웃어 재꼈다. 비록 성적 취향은 달랐지만 재밌고 유쾌한 친구였는데, 내가 게이가 아니란 사실을 알고 나자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가 하면 슬쩍슬쩍 간지럽히기도 하면서 나를 놀렸는데 나의 찰진 반응이 그의 장난을 더욱 돋웠다. 여자나 남자나 다 똑같다며 경험을 권하는 녀석. 참나, 술, 담배도 아니고 남자를 권하는 친구를 만날 줄이야. 하하. 오해로 인한 만남이었지만 유쾌한 친구 덕분에 예기치 못한 즐거운 해프닝을 만든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