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산속 외딴집(1)

by 서퍼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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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키안 웨이에서 자발적 의지로 딱 두 번 차를 이용했다. 그중 한 번이 ‘칼칸(kalkan)’부터 ‘카쉬(Kaş)’까지 쭉 뻗은 해안도로에서였다. 지도를 살펴보니 리키안 웨이에서 거의 유일하게 해안에 바짝 붙어 나 있는 도로였고, 오랜만에 시원한 드라이브 감성을 느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카쉬에서 또 하루를 묵어갈 생각이었기에 사실상 오늘의 걷는 일정은 없는 셈. 그리하여 오랜만에 느긋한 아침을 보내고 느지막이 숙소를 나왔다. 그리고 돌무쉬(승합차를 이용한 대중교통)를 타고 칼칸부터 카쉬까지 쭉 뻗은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다.


하~ 오랜만에 느끼는 이 감성. 햇빛에 반짝반짝 빛을 내는 바다를 아무런 노동 없이 창문 너머로 바라보니 왠지 더 아름다워 보였다. 이래서 다들 차~ 차~ 하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오늘 묵기로 한 카쉬에 도착했고, 한적한 곳을 찾을 겸 해변을 슬슬 걸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정신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마을에서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이었다. 슬슬 걸었다 하기엔 꽤 먼 거리였는데, 이제 몇 킬로쯤 걷는 건 일도 아닌 게 돼버린 나였다. 다시 마을 쪽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또 막상 돌아가려니 걸어온 길이 아까운 건 뭘까? 애써 조립해 놓은 레고를 다시 해체하는 느낌이랄까?


뭔가 아쉬운 마음에 지도를 펼쳐보니 다음 마을까지는 9시간 45분이라고 나와 있었다.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당연히 되돌아가 카쉬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일찍이 출발해야 했다. 하지만 되돌아가면 왠지 모르게 손해를 보는 듯한 느낌과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막무가내 긍정파워가 뜬금없이 솟아올랐다. 그리하여 기어코 꾸역꾸역 나아간 길. 애초에 하루를 늦게 시작한 것도 모자라 땡볕에 달궈진 몸도 식힐 겸 수영도 한바탕 하니 해는 금세 기울기 시작했다. 해변을 지나 산길에 접어든 나는 이런 절벽에서 밤을 맞이할 수 없단 생각에 돌부리고 나뭇가지고 거칠게 헤쳐 나가며 길을 재촉했다.


하지만 마을이 나올 기미는 없었고 배낭을 확인해 보니 두 모금 정도의 물과 주먹 크기의 바게트만이 남아있었다. 하루 정도는 버티겠다 싶은 음식량에 안도감이 드는 순간 저 밑에 집과 같은 형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첩첩산중에 뜬금없이 나타난 집에 반신반의하며 마지막 힘을 쥐어짰다. 집에 가까워 짐에 따라 확신은커녕 오히려 의구심만 커졌는데, 과연 사람은 살고 있을까? 완공된 집인가? 짓다 만 것일까? 폐가인가? 나의 막무가내 긍정성도 극복하지 못할 정도의 상황이었지만 뭐가 됐든 이 산속에서 잠을 자는 것보다야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집에 어느 정도 다랐을 때 사람이 나타났다. 오!! 신 봤다! 그의 존재는 내게 정녕 신과 같았고, 난 팔을 좌우로 크게 흔들며 나의 존재를 피력했다. 그는 해안에 묶어 놓은 작은 통통배를 향해 가고 있었는데, 그가 그렇게 배를 타고 떠나버릴까 봐 덜컥 겁이 나 나는 더욱 크게 팔을 휘둘렀다. 나의 허우적거림은 효과가 있었고 그가 나를 바라보곤 걸음을 멈췄다. 나는 혹여나 ‘안 받아주면 어쩌지?’하는 불안감에 등을 잔뜩 웅크리고 두어 번 휘청거리며 최대한 불쌍한 모습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이름하여 동정심 유발 작전! 그렇게 마주 서게 된 남자는 내게 밝게 인사했다. “메르하바!” 실로 반가운 인사였다. 실로 반가운 사람이었고, 집이었다.


다행히 그곳은 남자가 사는 집이자 펜션이었다. 하지만 흔히 떠올리는 그런 펜션은 아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남자가 직접 지었다는 집은 그래도 꽤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전기도, 수도도 없는 그야말로 산속 외딴집이었다. 산을 헤치며 온갖 더러움을 몸에 뒤집어쓴 나는 샤워가 간절했는데 다행히도 지하수가 흐르는 부분을 찾아 해안가에 콘크리트로 막아 욕조처럼 만들어놨다. 남자는 내게 여기서 씻고 잠시 쉬고 있으라 하며 본인은 통통배를 타고 바다로 떠났다.


첩첩산중에 발가벗고 바닷가와 맞닿은 웅덩이에서 몸을 씻었다. 콘크리트 벽이 완고하지 않아 바닷물이 넘실거리며 안으로 흘러들었지만, 물에 몸을 씻는 것만으로도 오늘날의 피로와 멍청했던 나의 판단이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샤워를 마치고 의자에 앉아 지는 해를 감상하고 있을 때 그가 돌아왔다. 움직일 때마다 휘청이는 배에서 내리는데 손에는 팔뚝, 아니 다리통만 한 물고기가 들려있었다. 고기를 보고 놀라는 내게 오늘 저녁이라며 잠시 후 노릇노릇하게 구워 주었다.


이럴 수가! 처음부터 요리 과정을 지켜본 나로서는 그저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정말 아무런 양념이나 간 없이 그냥 손질 후 굽기만 했을 뿐인데 이런 맛이 나다니! 이것이 바다 본연의 맛인가 하는 황홀경에 식사 내내 나의 엄지는 내려갈 줄 몰랐다. 이곳을 직접 만들고 운영하는 ‘오즈칸.’ 주인은 따로 있으며 본인은 이곳을 맡아 모든 걸 하고 있다고 했다. ‘아이퐈’라는 이름의 개 한 마리와 무려 7년간 이곳에서 지내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수시로 “아이퐈!”하며 개를 찾았고, 밥을 먹을 때도, 간식을 먹을 때도, 본인이 먹기 전에 꼭 아이퐈부터 챙겼다. 해가 지고 우리는 파도 소리와 밤하늘을 배경 삼아 맥주를 마셨다. 본인은 학교를 안 나왔지만, 인생이라는 대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그리고 자기에게 여자를 소개해 달라는 오즈칸.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 평화롭고도 외로운 것.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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