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튀르키예하면 이스탄불, 세계 3대 요리, 유구한 역사와 문화의 나라 등 여러 수식어와 이미지가 따라 다니지만,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넘버1 수식어는 ‘형제의 나라’가 아닐까 한다. 사실 난 튀르키예하면 케밥과 깐죽~ 깐죽~ 사람 바보 만드는 쫀득이 아이스크림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것도 없을 정도로 무지했지만, ‘형제’라는 단어가 주는 힘에 왠지 모를 내적 친밀감이 형성된 상태였다. 그리고 실제로 여행 중 내가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면 튀르키예 사람들은 나를 ‘브라더’라 부르며 형제나 친구처럼 친근하게 맞이해줬다. 이처럼 친근감의 표시로 두 나라 간의 애칭과도 같은 호칭이었지만, 때론 형제의 의미를 좀 더 진중하게 사용하는 튀르키예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파타라(Patara)’에서 숙소를 구하고자 마을을 어슬렁거리고 있을 때였다. 어느 한 아저씨가 내게 정말 격하다고 할 정도로 손짓을 보내왔고, 난 아저씨의 필사적이고도 간절함이 새어 나오는 호객행위에 감동을 받아 숙소로 들어섰다. 숙소에 들어서자 한국 사람이냐고 묻는 아저씨에게 그렇다 대답하자 역시나 “브라더!”하며 반겨주었다. 나 역시 여느 때와 같이 으레 인사말처럼 “예~ 브라더~”하고 답했는데 나의 말투에서 뭔가 섭섭함을 느꼈는지 단호한 얼굴로 “노! 리얼 브라더!”라는 게 아닌가? 순간 아저씨의 단호한 얼굴에서 당혹스러움을 느꼈으나 자신의 아버지가 한국전 참전 용사라는 말에 절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맞다. 그동안 그저 친목도모 정도로 불렀던 형제라는 호칭은 튀르키예 윗세대 어른들의 목숨을 건 도움의 손길 때문이었단 걸 새삼 상기시켰고, 지금까지 숱하게 불렀던 형제란 호칭의 무게가 가볍지 않게 다가왔다. 주인아저씨는 내게 음식도 한 접시 내어주셨는데, 오히려 감사를 표해야 할 내 입장에서 또 하나의 은혜를 입은 셈이었다. 이처럼 튀르키예의 어른들에게 형제의 나라로써 친밀감을 느꼈다면, 젊은 친구들에게는 한류 파워로 인한 환대를 받았다.
리키안 웨이를 걷는 도중에도 한국을 좋아하는 젊은 친구를 만날 수 있었는데, 길을 가는 나를 불러 세우더니 괜찮으면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차 한잔하고 가라는 것이었 다. 조금 전 할아버지의 초대로 차를 마셨고 일반 가정집이 아닌 레스토랑 같은 곳을 가리켰기에 살짝 머뭇했지만 “그래! 최대한 튀르키예 사람들과의 만남을 즐기자!”란 생각으로 승낙했다. 친구를 따라 매장 안으로 들어가니 열댓 명 정도의 사람들이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다들 환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해주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에 살짝 긴장이 됐다. 하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그들이 따라주는 차를 마셨다.
그들은 Letoon 유적 발굴팀이었는데, 이곳 에 오랜 시간 머무르며 매일 같이 유적발굴을 하고 있단다. 그중 내게 말을 건 친구가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내가 지나가는 것을 보곤 한국사람이다 싶어 말을 걸었던 것. 난 그들의 일에 관심을 보였고, 원하면 견학을 오게 해준다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다음날이 일요일이어서 월요일에 가능하다고 했고, 이곳에서 삼일이나 머무를 순 없다 생각해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 하지만 난 이 못난 결정을 두고두고 후회한다.
한류의 위상은 사실 튀르키예에 도착한 첫날, 이스탄불에 들어서자마자 체감할 수 있었다. 이스탄불의 대표 명소인 아야소피아와 블루모스크 사이의 공원에는 ‘Ask me’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관광객을 대상으로 안내를 해주는 자원 봉사자 학생들이 있었다. 관광객들은 주로 가고자 하는 관광지의 길을 묻곤 했는데 인포메이션 센터 직원과 같은 사무적인 느낌보다는 친구나 동생과 같은 친근함으로 다가가기 더욱 쉬웠다. 그리고 이런 친근함과 호기심으로 이런저런 잡담도 나누곤 했는데 내가 한국인이란 걸 알자 마치 한류 아이돌 대하듯 격하게 반겨주었다.
급기야 공원 이곳저곳 돌아다니던 자원봉사자 친구들이 한데 모였고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한국의 드라마와 아이돌 그룹의 노래까지 줄줄 읊으며 한국 문화에 대한 지식을 뽐냈는데, 평소에 드라마 좀 봐둘 걸 하는 후회마저 들게 했다. 우리는 더 이상 관광객과 자원봉사자가 아닌 친구처럼 수다를 떨기 시작했고, 다른 관광객이 말을 걸어도 무시하며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튀르키예의 공원에서 ‘슈퍼주니어’와 ‘샤이니’의 춤을 추고 있었다. 나의 어설픈 춤사위에도 격한 반응으로 기뻐하는 친구들의 모습에 ‘이것이 인기의 맛인가?’하는 생각과 함께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마음을 조금이라도 실망시키면 안된다는 사명감을 안고서 친구들의 신청곡에 맞춰 춤을 췄다.
그렇게 마치 콘서트와 같았던 몸부림을 마치자 급격히 몰려오는 현타와 함께 실없는 웃음이 배실배실 새어 나왔다. 지금 생각해봐도 낯 뜨겁고, 오그라드는 모습이지만 한편으론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든 일이었다 생각한다. 외국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단박에 이해가 가며, 앞으로도 이처럼 서로 좋은 감정을 나누는 양국이 되었으면 한다. 브라더! 앞으로도 영원 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