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하나 하겠다. 운동 후 마시는 맥주 한 잔의 맛은 어떠한가? 상상만으로 침이 꼴깍거리지 않은가? 자고로 운동 후 마시는 맥주 한 잔은 그 어떤 음료보다 시원한 짜릿함을 선사한다. 그렇다면 어깨가 짓눌릴 정도의 묵직한 배낭을 메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온몸의 육수를 뽑아내는 뙤약볕 아래서 수십 킬로미터를 걸은 후의 맥주맛은 과연 어떨까? 그렇다. 리얼 꿀맛이다! 순례길을 더욱 풍요롭고 즐겁게 만드는, 감초 같은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이 술이다.
도중도중 쉬어가는 마을에서 한 잔씩 걸치는 맥주는 수분 보충과 함께 피로회복제 역할을 한다. 게다가 어느 식당에 들어가든 전문점급의 생맥주를 제공하니 애주가들에겐 그야말로 ‘행복’ 그 자체! 물론 술이 맥주만 있는 게 아니다. 스페인에 드넓게 펼쳐진 포도밭에 대한 기대감은 훌륭한 와인으로 부응하니,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만 보던 오크통에서 바로 따라주는 와인 집부터,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순례자에게 안성맞춤인 단돈 2유로면 구입할 수 있는 마트표 와인까지, 원하면 언제든 맛 좋은 와인을 즐길 수 있다.
이렇듯 지천에 널린 고급술과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가득 쌓인 노동(?)의 피로가 있는데 어찌 밤을 그냥 보내겠는가? 이런 좋은 핑곗거리들을 구실삼아 매일같이 삼삼오오 모여 술 한잔하는 건 순례길 하루의 마지막 루틴이 되었다. 주로 알베르게 주방에서 직접 만든 저녁과 함께 술잔을 들곤 했는데, 그러다 보면 옆 테이블 사람들과도 한두 마디 말과 술을 주고받으며 동고동락하는 순례자끼리의 유대감을 쌓곤 했다. 이처럼 순례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음주. 스페인의 태양 아래 맥주 한 잔의 수혈과 달빛 아래 달콤한 자장가와 같은 와인이 없었더라면 결코 이 길을 완주하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