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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퍼스타 May 26. 2023

07. 강철 인간

트레킹 일지 Chap.3 하늘을 향한 길, 안나푸르나 트레킹


 롯지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밀려오는 잠에 두어 시간 낮잠을 잤다. 자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눈을 뜨니 또다시 텅 비어버린 뱃속에 의아함을 느끼며 식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식당이야말로 무슨 사건이 난 것마냥 이곳저곳에 사람들이 늘어져 있었다. 가이드와 포터들, 주인아주머니까지 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에 깨우기도 미안하고 해서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텅 빈 뱃속에 멍하니 햇볕을 쬐고 있는데 사건 현장에서 살아난(?) 포터 친구 하나가 내게 다가와 말을 붙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한국인 특징인(나만 그런가?) 나이 묻기를 시전했다. 스물셋이라고 자신의 나이를 밝히는 포터 친구, 아니 동생에 순간 놀란 표정을 지을 뻔했지만 다행히 잠에서 덜 깬 정신과 배고픔에 쇠한 기력으로 인해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 

 

 히말라야의 강한 햇빛과 바람, 고된 일 때문인지 그의 얼굴은 솔직히 말해 제 나이를 훌쩍 앞질러 있었다. 그들의 일이 얼마나 고된가 하면, 히말라야를 걸으며 실로 경이로운 장관을 수없이 마주했지만 그중 최고는 그 무엇도 아닌 바로 커다란 짐을 이고 히말라야를 오르는 포터였다. 


 포터라 불리는 히말라야의 짐꾼들은 혼자만의 힘으로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기 힘든 이들을 위해 짐을 이고 산을 오른다. 이들을 보고 있자면 일상의 행동이 아닌 진귀함에 묘기를 하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맨몸으로도 오르기 버거운 산을 남의 짐까지 지고 올라야 하니 꽤나 힘들겠구나 싶겠지만 실제로 그들이 옮기는 짐은 ‘그냥 남에 가방 하나’가 아니다. 산을 오르기는커녕 그냥 들기조차 버거워 보이는 짐덩이는 곰 한 마리를 이고 가는 듯한 부피감을 선보인다. 일반 배낭 수준의 크기가 아니기에 어깨끈이 아닌 이마에 끈을 두른 채 이고 나아간다. 


 이런 압도적인 비주얼에 산을 오르다가 포터를 만나면 감탄 어린 시선과 함께 얼른 길을 비켜준다. 마치 도로에서 구급차를 마주할 때처럼 짐을 나르는 포터를 만나면 그들의 통행에 불편이 없도록 길 한편으로 가만히 물러난다. 이는 비단 나만의 행동이 아니다. 히말라야를 오르는 모두가 산행의 고됨을 잘 알며, 누구보다 고생하는 이들이 포터란 걸 알기에 모두가 한뜻으로 길을 비켜 주지 않나 싶다. 


 이처럼 그 누구보다 큰 짐을 이고 산을 오르면서도 산에서 마주할 때면 항상 밝게 웃으며 오히려 내게 괜찮냐고, 힘내라며 독려를 해준다. 그런 포터들을 볼 때면 조금만 힘든 일에도 투정을 부리며 포기했던 내 자신에 대한 회의와 부끄러움이 들기도 했다. 만약 내가 그동안 힘들다며 포기한 일들을 이들 앞에서 열거하면 “쯧쯧, 이 한국놈 배때지가 불렀구만!”라며 못난놈 취급을 받을 것만 같았다. 


 언젠가 삼삼오오 모여 롯지에서 노닥거리며 어울리다가 한 포터가 자신의 다리를 만져보라 해서 눌러본 적이 있었다. 난 순간 의족인가 싶었다. ‘설마 아무리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 해도 의족을 끼고 포터 일을 한단 말인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그의 다리는 단단했다. 흔히 말하는 바위 같은 다리, 아니 정말 무쇠 다리라 할 정도로 그의 다리에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있을 피부의 탄성이나 촉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솔직한 마음 같아서는 바지를 벗겨 진짜 다리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당장에 변태로 내몰려 히말라야의 눈에 매장당할 수 있었기에 꾹 참았다.  


 어쨌든 무쇠와 같은 다리처럼 단단한 그들의 의지는 내게 큰 귀감이 됨과 동시에 자극제가 됐다. 사실 산을 오르다 보면 알게 모르게 서열이 갈리는 걸 볼 수 있고, 가장 아래에는 포터들이 있었다. 학교를 나와 공부도 하고 영어도 잘 하게 되면 본인의 짐만 메고 산악인을 안내하는 가이드가 된다. 하지만 그런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은 포터가 된다(포터겸 가이드를 하는 이들도 있다). 포터 중에는 가이드를 목표로 하는 이들도 많았고, 가이드들은 은근히 자신은 포터와는 다르다는 걸 내비치며 자부심을 보였다. 


 이처럼 포터는 히말라야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는 히말라야를 떠받치고 있었 고 그 누구보다 큰 사람이라는 걸 의심치 않는다. 비록 그들이 타고난 환경은 열악할지라도, 그 역경을 뚫고 산을 오르는 사람 자체는 누구보다 강인하고 거대한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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