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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퍼스타 May 30. 2023

09. 귀한 친구

트레킹 일지 Chap.3 하늘을 향한 길, 안나푸르나 트레킹


 가파른 산 경사면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과 계곡 사이사이 흐르는 구름. 용 한 마리가 계곡을 따라 날아와도 너무도 자연스러울 히말리야의 풍경이다. 걷잡을 수 없이 굵어진 빗방울에 ‘타토파니(Tatopani)’에 숙소를 잡고 침대에 앉아 하염없이 창을 바라봤다. 좋다. 저 조그만 창으로 쉼 없이 쏟아지는 비와 흐르는 구름, 시시각각 조금씩 농도를 달리하며 들어오는 비 냄새. 이렇게 창을 바라보다 화석이 된 남자로 ‘세상에 이런 일이’에 출연할지도 몰랐지만 꼬르륵거리는 나의 배는 낭만보다 생존의 현실을 알려왔다. 


 그렇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오늘 하루의 마지막을 알리는 의식인 양치를 하는데 머리 위에서 초록의 빛이 떨어졌다. 초록빛? 형형색색의 간판이 즐비한 서울의 밤거리가 아닌, 히말라야에서는 보기 힘든 빛깔에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래도 번쩍이는 초록빛에 ‘누가 레이저로 장난을 치나?’하는 생각이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주위엔 아무도 없었고 다시 위를 올려다보는데, 아! 초록빛의 정체는 바로 반딧불이었다. 


 깜빡깜빡 빛을 밝히며 구불구불 밤하늘을 나는 반딧불. 반딧불이 점점이 찍어내는 빛을 연결하며 경로를 쫓았다. 그리고 그 경로는 어느새 슬금슬금 내게로 날아들었고 나는 양치질하던 칫솔을 입에 물고 두 손으로 공손히 반딧불을 감싸 안았다. 그렇게 반딧불을 감싸자 나의 손틈새로 초록의 빛이 반짝반짝 흘러나오는데, 마치 영생의 구슬을 손에 쥔 듯 신비로운 기운이 흘렀다. 용을 대신해 내게 여의주를 건네주러 온 것일까? 반딧불이 내는 빛은 부드러우면서도 손에 묻어날 정도로 진했다. 그렇게 내 손 틈새로 번쩍이는 초록빛을 홀린 듯 쳐다보다가 이내 손을 열었다. 그러자 또다시 느릿느릿 이리저리 휘청이며 날아가는 반딧불. 


 반딧불의 그 느릿느릿한 날갯짓을 보고 있자니 마치 히말라야의 밤이 멈춘 듯 느리고도 고요하게 느껴졌다. 반딧불은 느리고 작디작은 생명이지만 그 신묘한 빛과 속도에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 반딧불을 처음 본건 G.O.P에서 군 생활을 하던 때였다. 철책 너머 북한을 바라보는데 초록빛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이때 역시 처음에는 눈에 섬광이 이나 싶었고, 이내 ‘북한에서 레이저를 쏘나?’ 싶었다. 하지만 곧 눈 앞에서 반짝이는 존재가 반딧불임을 알고서는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희미하지만 진하게 반짝이는 초록빛.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그 불빛은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155마일의 휴전선에 켜진 가로등보다 더한 존재감을 보였다. 


 그때 이후로 처음 보는 반딧불에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한 반가움이 들었다. 몽환적이었던 오늘의 산을 반딧불의 빛이 완성 시켰다. 잘 가~ 나의 귀한 친구야. 앞으로도 나의 친구가 그 작고도 따스한 빛을 잃지 않고 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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