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8월21일_수요글방
비혼주의라던 여자에게 10년 넘게 묵묵히 지내던 남자가 작년 겨울 처음으로 운을 뗐습니다. 여자는 결혼하기 싫은 이유를 10가지나 늘어놓았습니다. 남자는 하나씩 답했고 여자는 조금씩 끄덕였습니다. 둘이 하나의 가정을 이루지만 서로를 서로 답게 지켜주겠다는 마음,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결혼식 초대 글의 맨 첫 단어로 ‘비혼주의’를 넣은 건 여자의 고집과 남자의 이해 덕분이었다. 대학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여자는 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좀 더 젊은 나이에 아이를 낳을수록 아이가 똑똑하다는 말을 어디선가 봤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웃기다. 여자가 본인의 결혼이나 출산, 육아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똑똑한 아이’라는 말에 이끌렸다는 게.
여자는 대학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한동안 그런 생각을 안고 살았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선 줄곧 ‘비혼’을 말하고 다녔다. 여자의 옆엔 오랜 남자친구가 있었고, 주변에선 다들 “남자친구가 안 됐다”며 “너가 비혼주의인 걸 남자친구도 알고 있냐”고 묻거나 “남자친구도 동의한 거냐”고 물었다. 여자가 결혼을 안 한다는 걸 왜 남자에게 동의를 구해야 하냐며 따져 묻고 싶었지만, 가까운 사람들과 담을 쌓고 싶진 않은 마음에, 입꼬리를 찌익- 양 옆으로 당기며 억지 미소를 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여자가 비혼, 정확히는 가정을 꾸리지 않겠다고 다짐한 건 아빠의 영향이 컸다. 여자는 아빠와 꽤 가까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빠가 돈을 잘 벌지 못했지만,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돈을 잘 벌어야만 아빠인 건 아니니까. 아빤 가족들에게 꽤 큰 돈을 가져오기도 했고, 때론 두 딸에게 50만원 30만원을 꾸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엔 여자에게 5만원을 빌려줄 수 있느냐고도 물었다.
아마 그쯤이었을 거다. 퇴근 길에 걸려온 전화. 아빠가 다니고 있는 신학대학원의 동기라고 했다. 모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을 하는데, 몇 달 전 아빠에게 거액의 돈을 줬다고 했다. 어디에 투자를 해서 수익을 낼 수 있으니 돈을 맡기라고 해서 맡긴 건데, 감감무소식이라고. 그 일로 지금 생활이 어렵다고 했다. 자기는 이렇게나 어려워졌는데, 당신네들은 그 동네에서 유명한 건물에 살지 않느냐며 따졌다. 자기 말고도 이런 사람이 대학원에 몇 명 더 있다고 했다.
몇 달 전 여자네 가족이 이사를 한 건 모르는 눈치였다. 잠자코 듣고 있던 여자는, 당신의 생활이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다 헤아릴 수 없지만, 몇 달 전 이사를 했다고 말했다. 원래 살던 데는 당신이 말한, 그 유명한 건물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 집이 월세로 계약된 곳이어서 마지막 몇 달치 월세를 밀리다 겨우 지불을 했다는 이야기를. 그 건물 한 달치 월세가 100만원인데, 대체 아빠는 무슨 생각으로 그 집을 계약한 건지 이해를 할래야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집에서 정작 아빠는 몇 달 살지도 않았고, 당시 월급을 받던 사람이 여자 하나뿐이라 그 여자의 월급이 고스란히 월세로 나갔다는 것을. 그러다 더는 그 곳에서 살 수 없어 엄마와 밤낮으로 살 곳을 찾다가 여자의 회사와 가까운 곳에 1.5룸을 찾아 이사를 왔다는 이야기를. 지금 이 집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라는 것을. 가스레인지 아래 옵션으로 달려있던 세탁기 탈수 기능이 고장났는데 고칠 돈이 없어 엄마가 일일이 빨래를 손으로 짜고 산다는 말을. 몇 달 전 아빠가 ‘선물’이라며 여자의 이름으로 경차를 하나 샀는데, 알고 보니 차 값은 여자의 이름으로 한 캐피탈사에서 60개월 할부로 결제되고 있다는 것을. 그걸 뒤늦게 안 여자는 노발대발했지만 방법이 없어 매달 30만원을 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당신이, 우리 아빠에게 얼마의 돈을 맡겼는진 몰라도 그 돈에서 단 100원도 우리에게 온 것이 없으니 너무 억울해하지 말라고. 아빠와 더는 연락을 하고 지내지 않으니, 혹시 당신이 먼저 연락을 하게 되거든 그냥 경찰에 신고를 해버리라고 말했다.
여자는 1.5룸,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사는 집으로 들어갔다. 지난 여름 비가 꽤 온 뒤, 방 한 구석엔 곰팡이가 피었다. 벽에 딱 붙어 있던 옷장을 벽에서 좀 떼어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침대도 머리맡을 살짝 벽에서 뗐다. 엄마는 벽과 가구 사이, 손바닥 두 뼘 정도의 방바닥을 자주 쓸고 닦았다. 습기가 차면 곰팡이가 더 필까 싶어서였다. 그날 저녁도 어김없이 엄마는 쭈구려 앉아 바닥을 닦고 있었다. 여자는 조금 전 자신이 받은 전화 통화 내용을 대충, 아주 대충 설명했다. 그러다 괜히, 이 사람들이 혹시나 회사까지 찾아와서 떠들면 어떡하냐고, 아무 잘못 없는 엄마에게 투덜거렸다. 엄마는 긴 한숨을 쉬었다. 그 사람들이 여자의 회사에 찾아갈 일은 없을 거라고, 아빠에게 내일 아침 전화해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라고 하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여자와 엄마는 나이가 들수록, 서로에게 엄마가 되었고 때론 딸이 되었다. 때론 여자가 엄마의 엄마처럼 굴기도 했고, 어떤 날엔 엄마가 원래대로 여자의 엄마가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자가 엄마의 엄마가 되는 날들이 조금 더 많아졌다. 집을 알아보러 다니던 중에도 부동산에서 계약을 할 때에도. 가스나 수도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엄마는 여자에게 이런저런 걸 알아봐달라고 했다. 아마 돈을 내는 게 여자여서였을지, 엄마도 이제는 그런 일을 좀 덜 하고 싶어서였을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다가도 엄마는 어느 순간 아주 단호하게, 자신이 더 큰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겠다는 굳은 표정으로 강한 어조로 말하기도 한다.
그런 엄마를 보며, 엄마가 꿈꾸었을 가족, 가정이란 무엇이었을지 생각한다. 엄마가 그린 가정의 모습이 이런 것이었을까. 엄마는 어떤 가정을 꾸리고 싶었을까. 그래서 엄마는 지금 조금 후회할까, 아니면 여자와 여자의 동생을 보며 그래도 위안을 삼을까. 여자는 답을 안다. 엄마는 삶이 조금 힘들고 지치지만, 여자와 여자의 동생과 함께 힘들지만 즐겁게 살아가고 있으니 괜찮다고 말하겠지. 엄마를 정말 사랑하지만, 먼 훗날 엄마처럼 힘들게 살게 되는 건 아닐지 걱정이 앞섰다. 여자는 엄마처럼 단호하고 강인하게 살 자신이 없었다.
여자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사귄 남자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남자는 매번 “그랬구나”와 “괜찮다”를 반복했다. 만약 남자가 여자의 말에 “나는 너희 아버지와 달라”라고 답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여자와 남자가 서른 한살이 되던 해, 남자는 여자에게, 그 생각에 여전히 변함은 없는지, 어떻게 하면 마음이 나아질 수 있을지 물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가정을 꾸리는 데 비관적이었던, 아니 두려움이 컸던 여자는, 남자가 자신의 아빠와 같을 수도 있지만 다를 수도 있다는 아주 지극히 간단한 사실을. 여자의 엄마처럼 사는 것이 일반적이진 않지만, 그게 또 아주 이상해서 어디 숨겨야 할 건 아니라는 사실을. 그러니까, 가정을 꾸리다 보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데, 관건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일을 어떻게 헤쳐나가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남자와 평생을 살며 함께 대화하며 모든 일들을 풀어가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친구들은 하나 둘 정년퇴직 한 남편들과 함께 혹은 혼자 잔잔한 삶을 지내고 있는 엄마가, 남은 인생에선 여자와 남자를 울타리 삼아 여자의 딸처럼 구는 시간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여자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어차피 결혼할 거, 몇 년이라도 더 빨리할 걸 그랬나? 막상 하고 나니 별 거 아닌데, 너무 오랜 시간 ‘아빠’라는 커다란 벽을 스스로 쌓아왔던 것 같다고. 그러다 또 다시. 정말 그 벽 때문에 잃은 것들만 있는지 생각한다. 엄마가 조금 덜 힘들었으면 하는 마음, 엄마가 남들만큼은 아니어도 그래도 어디 가서 너무 초라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큰 결심으로 이룬 가정을 기왕이면 잘 다져가고 싶다는 마음, 누구나 실수를 할 순 있지만 그 실수를 숨기거나 피하지 않고 함께 마주하자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 생겼음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