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만난 변태는 어떤 놈이었는가?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고?
헐! 당신은 럭키걸이구만!
나는 영 운이 없었는지 변태를 접할 버라이어티한?기회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한놈이야기를 해보겠다.
고딩시절 하교하는 버스였다.
별로 붐비지도 않는데 등 뒤에 어떤 사람이 바짝 붙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곧 엉덩이 쪽에서 기분 나쁜 뭔가가 느껴졌다.
(으힉 소오름~!)
보나마나 남자였다.
보지않고도 어떻게 알았는지는.. 설명하지 않겠다.
떨어지고 싶어 몸을 앞쪽으로 쭉 내밀어봤지만 자석으로 붙인것 마냥 엉덩이의 붙은 그 놈은 떨쳐내 지지가 않았다.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닿았다 떨어졌다 하는 것이 더 끔찍했다!
(소오오오오오오오오름!!)
보기에 정말 이상했을 것 같은데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겨우 용기 내 자리를 옮겨봤지만 그 놈도 나를 따라왔다.
찰거머리같은 놈!
너 혹시 내 꼬리니?
무서워서 차마 뒤를 돌아보진 못했다.
헤비메탈을 듣고 교복을 줄여 입으며 쎈척을 하고 다녔지만 사실 나는 겁 많은 학생일 뿐이었다.
얼굴 확인도 못하고 그렇게 10여분을 견디고서야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샤~워!! 샤워가 필요해!!!!
하지만 엄마에게는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왠지 내가 혼날 것 같았다.
우리 엄마는 늘 화가 나있었고
그땐 뭔 말만 하면 혼났었으니까
그래서 그 일은 그냥 기억 속 가장 깊은 곳에 꾹꾹 처박아놨다.
아무일도 없었던듯이 말이다.
혼자 견뎌내는 방법을 그것밖에 몰랐다.
오래 묵어 잔뜩 숙성된 상처들은
남편이 뒤에서 안을 때, 아이가 "엄마~" 하며 나를 만질 때 문득문득 떠오르기 시작했다.
머리에서 떠올랐다기보다는 몸이 기억해냈다는 것이 맞겠다.
추행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은 잊고 싶은 기억을 몸이 기억하며 살아간다.
이걸 몰랐을 때는 아이와 남편에게 짜증을 많이 냈다.
변태시키한테 내야할 화를 가족에게 내고 있는 꼴이었다.
그 시절에는 변태도 참 많았는데
아줌마가 되고 보니 그 많던 변태들이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걸리기만 하면 40년 세월의 분노를 끌어모아 아작 낼 자신이 있는데.
이제 내 엉덩이가 너무 처져서라고?
허허..
이거 엉덩이를 깔 수도 없고~
아마도 변태들은 약자를 찾아다니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뒤도 돌아보지 못하는 겁 많은 약자 말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니 아직 작고 여린 내 딸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이 아이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마음 같아서는 결혼식장 들어갈 때까지 차로 모셔다 주고 모셔오고 24시간 보초를 서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을 안다.
아이의 삶은 아이가 스스로 살아가야 하니까..
나는 그저 이곳에서 아이가 언제든지 위로받을 수 있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다정한 엄마로 있어주는 것...
그것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징징거리는 아이에게 다시 한번 웃어본다.
엄마는 네 편이라고.
엄마에게 많이 많이 기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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