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원하는 사랑은 어떤 형태인가?
나는 누가 뭘 먹여줄 때 깊은 행복감을 느꼈다.
밥 사 주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밥은 내가 사더라도 아기에게 밥 먹이듯 음식을 내 입에 쏙~ 넣어주면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고 만다.
밥숟가락에 반찬 올려주는 것, 내 음식에 특별히 고기 많이 넣어주는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업어주면 거의 환장한다.
둥가 둥가 하듯이 위아래로 흔들어주면
나도 모르는 새에 침이 흐른다.
너무 좋아서....
으흐흐흐흐 하는 바보 웃음소리는 덤이다.
창피하니까 날 엎지는 마시길...
나는 유아기 때 애정을 충족하지 못한 사람이다.
우리 엄마는 출산 후 내가 3살이 될 때까지 우울증으로 고생하셨다. 남동생을 낳고 우울증은 좋아졌으나 나는 둘째에게 밀려 살뜰한 보살핌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밥 먹여주고 업어주는 유년기의 사랑이 고픈 것이다.
엄마가 바빠서 식사를 제대로 챙김 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누군가 자신을 위해 정성 들여 밥상을 차려주면 그렇게 행복하다고 한다. 나는 밥상은 꼬박꼬박 받았기 때문에 그런 결핍은 없다. 오히려 입에 맞지 않아도 남김없이 먹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문제다.
이렇게 사람마다 결핍된 부분이 다르기에 받고 싶은 사랑도 다르다.
그런데 남자 친구, 남편들은 내가 어느 부분이 결핍되었는지 모르기에 자신이 줄 수 있는 사랑만 준다. 사실 나조차 내 결핍을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상대방이 내 결핍을 어찌 알겠는가?
함께할 시간을 원하는데 돈을 죽어라고 벌어온다.
따뜻한 밥상을 차려줬으면 하는데 이 녀석은 맛있게 처먹기만 한다.
어떤 이는 내가 차린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며 칭찬해주기를 바라는데
남편은 자기가 요리 솜씨를 뽐내며 불쇼를 하고 앉아있다.
네가 요리왕 비룡이니?
나는 별 모양의 결핍이 있는데 그는 세모의 사랑을 준다.
저 인간이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달라서 불행하다.
+ 즉 엄마에게 받지 못한 사랑에 집착할 때 우리는 상대방이 주는 사랑을 온전히 받을 수가 없다.
별 모양의 사랑을 줄 사람이 어디 있지 않겠냐고?
(자랑은 아니지만) 내가 20년간 정말 열심히! 꾸준히! 쉬지 않고! 연애를 해봤는데 딱 맞는 사랑을 주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내 별 모양이 너~무 커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어지간한 세모로는 커버가 안되니까.
이 사실을 모를 때는 상대방만 쳐다보며 왜 내게 사랑을 주지 않냐고 화를 냈다. 이건 내가 원한 것이 아니라며 주는 사랑을 바닥에 던져버린 적도 많다.
"누가 이까짓 돈 벌어오래!!!"
그때 우리 남편은 사직서를 거의 쓸뻔했다.(휴~)
내 아픔을 들여다보니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어린 시절의 깊은 공허가 보인다.
무뚝뚝한 엄마 옆의 외로운 어린아이가 보인다.
그 아이는 엄마가 먹여주고 자기만 바라봐주고 엎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건 받아서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엄마가 되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연애를 하고 싶지 육아를 하고 싶은 남자는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함께할 남자가 필요하지 3살짜리 아기는 부담스럽다.
난 받아야 할 것을 못 받고 이만큼 커버렸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도 이제 그런 사랑은 받을 수가 없다.
이 집착을 내려놓는데 한동안 눈물이 참 많이 났다.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그 눈물을 흘리는 동안 나의 한이 많이 내려놓아진 것 같다.
그 뒤로는 오히려 스스로 챙기는 것도 가능해지고 남편이 주는 사랑도 좀 더 기쁘게 받을 수 있게 됐다.
나를 아기 취급해주면 건달이라도 만날 판이었는데 집착을 내려놓으니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기분이다. 이제는 함께 있어주는 것보다 밖에 나가서 돈을 많이 벌어 오는 게 조금 더 좋다!
여보! 당신은 벌어와!
당신은 돈 많이 벌어올 때가 제일 멋져!!
그리고 나 이제 혼자서도 쇼핑 잘해!
당신의 결핍은 어떤 모양인가?
그 결핍은 혹시 어린 시절 받지 못한 사랑에 기인한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을 포기해보라.
아픈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당신에게 더 큰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고 장담한다.
물론 무지 아프고 억울하다.
그럼에도 한번 꼭 도전해보기 바란다.
당신의 상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