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몰이 같은 운명

by 남산

"오빠... 아무리 그래도 산부인과는 좀 아니지 않아?"


"... 내가 남자라서 그래?"


"그게 아니라... 아니 그것도 그렇긴 한데, 돈도 안 되고 힘들고 소송도 많이 걸리고 너무 위험하잖아. 의사도 아닌 나도 잘 아는데 왜 굳이 산부인과를 하겠다는 거야?"


"..."


그것이 그녀와 함께했던 마지막 기억이다. 이별의 원인이 설마 산부인과 때문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건 자연스럽게 그녀가 내가 의사이니까 만났고 '산부인과 의사'가 되니 떠났다고 연관 짓게 만드니까.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건 쓰디쓴 자학이겠지. 하지만, 정말 타이밍도 절묘하게 그녀는 떠났다. 설령 우리가 정말 산부인과 때문에 이별했다고 해도 난 이해한다. 어머니조차 나의 상황이나 판단을 이해해보려는 노력 하나 해주지 않았으니까.


"얘야 뭔 뜬금없이 산부인과는 산부인과냐! 황당하게! 나는 가장 싫은 게 산부인과다! 너 낳을 때도 남자 산부인과 의사가 가장 별로였어! 그땐 죄다 남자 의사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진료 봤다만, 지금은 아니잖니? 그런 거 해서 어쩌려고 그래!"


"아! 몰라! 그런 얘기만 할 거면 전화 끊을게!"


전화기 너머로 뭐라 뭐라 어머니의 잡음이 들리는 걸 무시하고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어머니께 잔소리나 들으려고 전화한 게 아니다. 어머니는 내가 의사가 되는 것에 아무런 도움이 된 적이 없다. '낳고 키워준 은혜'를 충분히 고려해서 하는 말이다. 애당초 내가 어머니 말씀을 고분고분 들었으면 의사가 아니라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도 어머니는 집도 어려운데 의대에 가면 어떡하냐며 나를 막았다. 내가 울지 않았다면 아마 어머니의 바람대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난 어머니께 부채 의식이 있었고 의사가 된 후 월급을 전부 어머니께 드렸다. 정작 난 매달 대학생보다도 못한 용돈을 받고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너무나 당연하게 내게 이래라저래라하는 거 아닌가?


속상해서 전화기를 등 뒤로 던져버렸다. 걱정하지 마시라. 뒤에는 병원 숙소 침대가 있으니. 충동적인 행동을 하려고 해도 이리저리 따져보는 나다. 산부인과를 하기로 선택한 것도 인생을 반쯤 포기하고 막무가내로 한 건 아니다. 음... 아마도?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으므로 미래인 것이다. 나도 그걸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러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는 건 때론 너무 막막하여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특히 중요한 선택을 앞둔 시점은 더욱 그렇다. 대학병원 인턴은 전공의가 되면서 전공과목을 선택한다. '○○과 전문의'로 인생의 방향을 잡는 중요한 결정이다.


물론 모든 인턴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모든 의사가 돈 잘 벌고, 편하고(?), 우아하게 사는 길만 선택한다면 의료 시스템은 진즉 붕괴하였을 것이다. 좋든 싫든 의사들이 다양한 전공을 하며 살고 있어서 오늘도 사회는 비교적 무탈하게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사회의 행복과 의사 개인의 행복은 다를 것이다. 모든 직업이 그렇듯 사회는 의사가 필요하지만, 그의 인생까지 보장해주진 않는다.


동기와 마찬가지로 나도 전망, 현재 내 여러 상황, 개인 취향 등등 여러모로 따져서 무슨 과를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하였다. 가능한 경쟁은 피하고 싶었는데, 나름으로 인기가 있는 전공과목을 선택해서 최종적으론 경쟁이 되고 말았다. 그때 이미 뭔가 불안함을 느꼈는데, '설마 떨어지겠어?' 했더니 떨어졌다. 하... 이런 젠장.


날 떨어뜨린 ○○과에 불이라도 질러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어렵게 의사까지 되어 놓곤 인생을 포기하는 짓을 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솔직히 그럴 깡도 없고. 우울한 가운데 갈 곳을 새로 찾기 위해 헤매는 혼란스러운 시간이 이어졌다.


낙오자들에겐 '추가 모집'이라는 마지막 기회가 있다. 지원하는 인턴이 없어 미달이 난 전공과가 추가로 전공의를 모집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아무 과나 자리가 비었다고 모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전공의 충원율이 일정 기준 미만이어야 추가 모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인기과라고 해도 이런저런 이유로 100% 충원이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렇다고 내가 그 빈자리를 찾아 들어갈 수가 없다. 그렇게 한두 자리 비는 거론 추가 모집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추가 모집하는 전공과는 전국적으로 심각하게 미달이 날 정도로 의사에게 인기가 없다는 걸 인증하는 것이다.


그래서 추가 모집을 한 게 무슨 과들이었냐면, 어디 보자... 비뇨기과, 산부인과, 외과, 흉부외과였다. 당연하지만, 이전엔 전~혀 관심 없던 전공과였다. 그런데 사람의 심리란 정말 허술하며 모순적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난 이들 가운데 뭐가 가장 '최고'의 선택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최악들만 모아 놓고 그중에 최고라... 이게 바로 '토끼몰이 심리 속임수' 아닌가 싶어 실소가 나왔다. 하지만 어쩌겠나 속아줘야지. 그래서 그 4개 중엔 그나마 산부인과가 괜찮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내가 남자 의사라는 것만 아니면.


마침 숙소에 있던 인턴 동기 형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형. 난 아무래도 산부인과 하게 될 것 같아. 하... 괜찮을까?"


형은 푸핫- 비웃으며 대답했다.


"크크크. 산부인과? 뭐 그런 과를 하냐? 평생 여자 거시기만 보고 아주 좋옷~겠네!"


"뭐?!"


"아 농담이야 농담. 크크. 나는 말이야, 내가 여자라도 산부인과는 하고 싶지 않아. 내가 보기엔 여자들은 다 약간씩 정신병적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히스테리 (Hysterie)'라는 단어가 '자궁 (Hystera)'에서 기원한 건 알지? 그 옛날 선조들도 여자들이 뭔가 표현하기 어렵지만, 사람 짜증 나게 만드는 까다로움이 있다는 건 경험적으로 알았다는 거잖니! 너 앞으로 평~생 그런 까탈쟁이들만 만나고 실랑이하면서 산다고 생각해봐. 아니 그전에 일단 남자 의사라면 일단 꺼리는 여자도 많을걸? 그게 진짜 웃긴 게 외과 의사도 유방 보고 수술실에선 전신 탈의하는 경우가 많잖아. 근데 산부인과는 남자 의사가 싫다고 해. 난 그런 편견 같은 게 이해는 되면서도 일관적이지 않아서 웃긴다고 생각하거든. 그런데 싫다는 걸 어쩌겠어. 그래서 나라면 산부인과 안 해 그냥."


난 입술을 깨물었다. 산부인과를 모욕하는 말에 기분이 나빴지만, 뒷말은 나름의 일리가 있어 보였다. 그래도 '거시기'라는 말은 너무 심했잖아... 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일이 생겨 자리를 뜬다고 하고 나온 나는 병원 구석의 한적한 복도를 걸어가며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XX새끼... 네가 의사인데도 산부인과를 그런 식으로 모욕하니깐, 여자들이 남자 의사를 꺼리는 거야. 나중에 의사 성추행으로 뉴스에 나올 새끼 같으니!"


해 질 녘 쓸쓸한 자줏빛이 하얀 복도를 물들이고 내 가운도 물들인다. 혼잣말로 괜히 동기를 욕한들 공허하게 울릴 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허망한 화풀이밖에 없었다. 1지망으로 지원했던 전공과도, 한때의 연인도, 동기도, 심지어 어머니조차도 모두 내가 잘못했다고 한다. 어쩌면 난 그저 작은 지지 하나가 절실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반쯤 포기 상태로 난 눈물을 씻고 '산부인과의 마녀'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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