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병원 산부인과엔 유명한 마녀가 있대."
산부인과의 유일한 전공의인 김보미 선생님을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그렇게 불렀다.
솔직히 보미 선생님을 만나본 적은 없어도, 대단한 분이라는 건 인정할 만했다. 원래 산부인과 전공의의 적정 인원은 각 연차 당 2명, 1년 차부터 4년 차까지 총 8명이다. 산부인과의 전체 업무를 8명으로 분배한 것이 적정 업무량인데, 과가 인기가 없어 한두 명씩 빈자리가 생기다 보면 남아 있는 전공의의 개별 업무량은 그만큼 증가한다. 애석하게도 교수님만 있으면 환자는 오므로 병원에 전공의가 없다고 업무량이 줄어들지 않는다. 인턴이 전공과목을 지원할 땐 그런 것도 본다. 따라서 비인기 전공과는 안 그래도 전망이 나쁜데, 사람도 없어 개고생까지 하게 되므로 인턴이 더 지원을 안 하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결국, 보미 선생님이 인턴이었을 때 산부인과는 전공의가 하나도 없었다. 선생님은 그런 곳을 홀로 당당히 지원한 것이다. 그 기개는 높게 살 만했다.
"그런데 왜 마녀야? 좋은 소리는 아닌 것 같다만."
남자 동기와 산부인과 얘기를 하다 보니 보미 선생님 얘기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소문이란 게 늘 그렇듯 막상 별것도 아닌 얘기가 사람들 입을 거쳐 부풀려지기 마련이다. 김보미 선생님은 산부인과 전공의 8명분의 일을 혼자서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당연히 몸뚱이는 하나 시간은 24시간밖에 없으므로 물리적인 한계를 초월할 수는 없다. 육체를 다 태워도 모자라니 남은 건 영혼을 태우는 수밖에. 그러니 성격이 좋을 수가 있을까? 어쨌든 지랄 맞은 성격에 사람들이 혀를 내두르며 마녀라는 것에 한 표.
그냥 성격만 괴팍한 여자라면 안 엮이면 그만이다. 그런데 보미 선생님이 또 묘한 매력이 있긴 했나 보다. 나는 몰랐지만, 알고 보니 여러 남자들이 보미 선생님과 어떻게 한번 잘해볼까 이리저리 딴생각도 품곤 했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호되게 까이고 역시나 마녀 같은 여자라고 술자리 안주로 삼는 것이다. 이쯤 되니 도대체 어떤 여자인가 궁금했다. 이성으로서의 호기심도 있지만, 그보단 동경에 가깝다. 난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사람이 궁금했고 또한 부러웠다.
"뭐 얘기 들어보니 대단한 사람이긴 한 것 같네. 그런 사람을 도화살(桃花煞)이 있다고 하던가? 예쁜가?"
"뭐야. 너 산부인과 한다는 것도 보미 선생님에게 유혹당한 거 아니었어? 솔직히 말해봐. 둘이서 어디까지 갔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거로 네 인생을 결정하면 안 된다~ 자고로 여자는 한순간이고, 전공과는 영원한 거야."
"뭐라는 거니. 한 대 맞고 싶냐? 난 아직 보미 선생님 뵌 적도 없거든?"
"내가 지난달에 산부인과 인턴이었잖니. 보미 선생님이 회식 때 얼마나 날 유혹하던지~ 내가 여자 친구 생각하면서 참는다고 혼났다!"
"'산부인과 하라고' 꼬신 거겠지. 바보냐 너..."
"아 이것 참~ 내가 이런 얘기는 안 하려고 했는데, 나 회식 끝나고 보미 선생님 자취하는 집에도 가봤어. 나 그때 무슨 일이 생기는 줄 알았다. 내가 여자 친구만 아니었으면... 어휴!"
"헐! 그랬어? 아무리 봐도 너 혼자 착각한 거 같은데."
보미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동기의 헛소리가 떠올랐다. 그게 왜 생각이 났을까. 선생님은 산부인과 전공의 당직실에 있었다. 산부인과 전공의 당직실 겸 숙소는 분만실 안에 있다. 응급 상황에 조금이라도 빨리 대처하기 위함이다. 산부인과의 마녀가 혼자 지내고 있는 방. 침을 꼴깍 삼키곤 문을 두드렸다.
"네 들어오세요!"
조심스럽게 문을 빼꼼 여는데, 안에서 문이 확 열렸다. 화들짝 놀라서 보니 강해 보이는 인상의 여자가 날 맞이했다. 아마도 보미 선생님인 듯하다. 가운 가슴에 달린 이름표를 흘긋 살펴보았다.
'아, 이분이 소문으로만 듣던 김보미 선생님이시구나.'
"산이야!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어! 대충 저기 앉아."
보미 선생님이 쾌활하게 웃으며 자리를 안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