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변태

by 남산

한 가지 다행스러운 (?) 점이라고 해야 할까. 김보미 선생님은 이성으로서 그다지 끌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앞으로 몇 년을 같이 동고동락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남녀 간의 정 같은 쓸데없는 거로 스트레스받는 건 사양이다. 물론 보미 선생님도 날 소 닭 쳐다보듯 하는 눈빛이다. 음... 땡큐.


그렇다고 그녀가 예쁘지 않다고 할 순 없을 것 같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긴 머리를 대충 묶고 있었지만, 또렷한 눈매와 오뚝한 코, 도톰한 입술, 늘씬하면서도 있을 건 있어 보이는 몸매. 가운 입고 적당히 예쁘면 '미모의 여의사' 칭호를 받을 수 있는 이 동네 생리를 고려하면, 확실히 보미 선생님에게 끌리는 남자가 한둘이 아니었을 것 같긴 하다. 다만, 전반적으로 보미 선생님의 첫인상은 '센 언니' 이미지이다. 나도 모르게 '어... 언니!'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주눅이 들었다.


'와... 나 앞으로 이 사람과 같이 일할 수 있을까?'


만감이 교차하여 얼어 있으니 보미 선생님이 먼저 말했다.


"그래. 산부인과 하겠다고 온 거지? 잘 생각했어! 야! 산부인과 엄청 괜찮아! 근데 사람들이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니깐?"


"음... 정말 그런가요?"


어쩜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바로 청산유수로 근거도 없이 산부인과 좋다고 말할 수 있는지!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신기했다. 작은 환대에 긴장이 다소 누그러진 난 보미 선생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사실 보미 선생님이 무슨 얘기를 하든 나의 결정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그녀의 입에선 산부인과에 대한 좋은 소리밖에 안 나올 것이므로. 그래서 거기에 대해선 전혀 긍정도 부정도 할 필요가 없다고 면담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다. 진실이야 어쨌든 작은 지지의 말이라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결국, 하고 싶은 얘기만 하고 듣고 싶은 얘기만 듣는 것일지라도. 그녀의 열정적인 이야기 혹은 설득 덕분일까? 작은 당직실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난 그런 온기가 그리웠다. 그건 그렇고 보미 선생님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혹시 이런 거 여쭤봐도 될지 모르겠는데요."


"응 뭔데? 뭔데?"


"음... 선생님은 왜 산부인과를 선택했어요?"


"나? 당연히 돈 많이 벌려고 산부인과 했는데?"


"아? 네 그렇군요. 선생님께서 제게 굳이 그런 말 안 하셔도 전 아마 산부인과 하게 될 것 같거든요. 전 그저 궁금할 뿐이에요. 선생님은 왜 산부인과 하기로 하셨는지. 사실 저 작년 선배들의 전공의 지망 조사표를 우연히 봤거든요. 선생님은 처음엔 □□과를 하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아 □□과! 맞아 나 □□과도 생각했었어. 앞으로도 꾸준히 환자가 많고 돈이 될 것 같았거든. 그런데 생각해보니 □□과는 평생 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재미가 없을 것 같더라고. 그것보단 산부인과를 하면 여성에 대해서 이것저것 할 것도 많고 여성 성형도 할 수 있으니 잘 되겠다 싶어서 한 거야!"


보미 선생님의 말씀이 진심인지 허풍인지 모르겠다. 냉정한 현실로 짐작해보면 □□과가 보미 선생님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사전에 정리한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런 건 물어보지 않는 게 예의일 것이다. 그렇지만 뭔가 참신한 수가 있나 했더니 결국 미용 성형이었나... 약간은 예상했던 대답이다. 분만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게 된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의 고육지책. 의사들이 미용에 쏠리는 현상은 산부인과만의 문제는 아니다. 내과를 해도 미용, 외과를 해도 결국 미용이라는 의료계의 냉혹한 현실. 확실히 정상은 아닌 건 둘째치고 너도나도 미용하니깐 시장도 이미 레드오션이 되어서 성공하기가 어렵다고 하던데... 무엇보다 이런 방식으로 돈을 벌어도 난 좀 서글플 것 같다. 그건 마치 '나중에 프랜차이즈 가게 차려서 성공하면 되니깐 □□ 대학 혹은 □□ 회사 좋아요'라고 하는 느낌이므로. 이 여자는 도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다.


"여성 성형이라... 질이랑 소음순 수술하시는 거죠? 확실히 선생님은 인기가 많으실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해당 사항이 아닐 것 같네요. 남자라서 별로 환자들이 안 올 것 같으니... 산부인과 한다고 해도 다른 길을 찾아야겠지요."


그러자 보미 선생님이 정색하며 말했다.


"아냐! 남자 산부인과 의사가 얼마나 잘 나가는데~ 유명한 선생님들 다 남자 의사인 거 몰라?"


"모르겠는데요."


"야! 네가 이쪽 업계가 얼마나 심오한지 잘 모르나 본데! 자고로 말이야. 여자들이 질 성형을 왜 하겠어! 결국, 남자를 만족시키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니겠니? 설령 자기만족이나 자신감을 위해 한다고 해도 이게 상호작용으로 생기는 거지! 아기 낳고 난 뒤 남편이 바람피울까 봐 걱정하는 여자들 은근 많다~"


"어차피 바람피울 남편이면 와이프 질에 뭘 해도 피워요. 그건 그냥 새 여자가 좋은..."


"어허! 너 산부인과 의사가 된다면서 여자들이 눈물겹게 노력하는데 그렇게 냉소적으로 상담할 거야? 남녀 관계가 그렇게 단순하니? 남자도 노력하려고 안쓰러운 고추에 구슬도 심어보고 하잖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그런데 어쩌다 우린 이런 대화를 하고 있게 된 걸까.


"아무튼, 여자가 질 성형하면 누가 보고 사용하니! 남자란 말이야. 자고로 남자가 어느 포인트에서 꼴리는지 그런 오묘하고 중요한 건 여자보단 남자가 잘 아는 법이지! 그런 장점을 광고하는 거야!"


보미 선생님은 검지와 엄지를 동그랗게 모아 가능한 작은 원을 만들며 말했다. 윙크하듯 한쪽 눈을 가늘게 뜨며 구멍을 통해 나를 보았다. 음... 이 여자 어쩌면 변태가 아닐까?


"아니 뭐. 그렇다 쳐요. 그럼 선생님은 뭐로 광고하시려고요?"


"나? 나는 '여자의 말 못 할 고민은 여자가 더 잘 압니다' 할 건데?"


와 어이가 없어 미소가 지어졌다. 보미 선생님은 미리 생각하고 있던 걸까. 나는 그녀의 말발에 놀랐다. 보미 선생님은 그냥 변태가 아니라 '사기꾼' 변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종류의 인간은 반은 사기꾼이고 반은 허풍쟁이이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 당찬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산부인과 전공해서 여성 성형 쪽으로 빠지는 경우가 아주 허황한 일도 아니고, 보미 선생님 정도라면 알아서 매우 잘하시겠지. 내 걱정이나 해야 할 일이다.


자신의 운명과 미래에 확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다. 마치 현재 자신이 계획한 인생의 단계를 차근차근 순조롭게 실현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것 같은. 그렇게 인생의 계단을 확신에 찬 걸음으로 오르는 사람을 볼 때마다 난 어떻게 저렇게 걸을 수 있는지 신기하면서도 부러웠다. 내가 보지 못하는 어딘가를 응시하는 옆 모습이 빛이 나는 것이다. 돌아가는 길에 난 그녀와 함께 일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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