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고 싶지 않아

by 남산

"아이참! 남자 선생님이 들어오니 은근히 번거롭네~"


날 데리고 다니며 인계하던 보미 선생님이 무심하게 투덜거렸다. 신입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라고 미리 설명했으나, 남자 의사의 참관을 거부하는 산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 산부인과 환자는 남자 의사에게 진료받는 것에 대해 크게 거부감을 표현하진 않는다. 아니, 민감한 사람이면 애당초 내게 오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남자 의사를 거부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고, 그저 내게 오는 사람에게 감사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가끔 이렇게 눈앞에서 거부당하면 꽤 오랫동안 가슴이 아렸다.


"그런 사람은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렴~ 예민 보스를 굳이 진료 보겠다고 시간 낭비, 감정 낭비해봤자 잘해야 본전이잖니. 그런 사람에겐 사명감 같은 거 가질 필요 없어. 물에 빠진 걸 건져놔도 성추행했다 할 사람이야~"


선생님이 그렇게 위로하지 않아도 그 정도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모든 사람이 날 좋아할 순 없다. 그건 환상일 뿐. 다만, 결국 직업 선택을 후회하게 될 것 같아 심히 걱정될 뿐이다. 지난번 대화에서 선생님이 여의사의 '유리 천장' 차별을 말한 적이 있는데, 나는 적어도 산부인과에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수요를 볼 때 남자 의사가 역차별당하는 유일한 과일 것 같다. 아니, 심지어 당직실은커녕 분만실에 남자 화장실조차 없는 걸 선생님은 알까? 사소하지만, 은근히 번거롭고 속상하다.


산부인과 업무에 어느 정도 적응하자 선생님과 난 당직을 나누어 서기로 했다. 그래도 바로 혼자만 있기엔 불안하니 당분간 선생님이 백업해주기로 했다.


"뭔 일 있으면 깨우렴. 안 깨우고 알아서 하면 더 좋겠지만... 깨운다고 화내지 않을 테니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지 마!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긴장되는 첫 당직이었으나 보미 선생님을 깨울 필요는 없었다. 자정까지 응급 환자가 없었으니까. 평소를 생각해보면 있을 수가 없는 여유였다. 와 오늘 밤은 내가 당직한다는 정보가 맘카페에 흘러 들어갔나? 나 의외로 당직 운은 좋은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니 역시나 환자가 왔다. 간호사의 호출을 받고 후다닥 나오니 간호사가 먼저 귀띔을 주었다.


"선생님... 환자분이 조금... 이상해요. 조심하세요."


뭐가 어떻게 이상하다는 거야. 간호사는 정작 중요한 걸 얘기하지 않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환자는 이제 막 5~6주 되었다고 하는 초기 임산부였다. 동네 병원에서 아직 임신 낭만 확인한 모양이다. 응급실에 온 건 질 출혈 때문이었다. 출혈이 있어서 왔으니 진찰해야 하는 게 당연하고 이 주 수엔 초음파도 질을 통해서 본다. 설명 후 진찰을 위해 바지를 치마로 갈아입으시라고 안내해 드렸는데, 환자는 가만히 있었다. 간호사의 말을 떠올리며 왜 그러시는지, 뭔가 불편하신 게 있는지 물어보았다.


"저기... 산부인과 선생님은 안 계세요?"


"제가 '산부인과 의사'입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여자 선생님은 없냐고요."


"아!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습니다만, 지금 시간에 근무하는 사람은 저예요."


"아니 대학 병원에 왜 여자 의사가 없어요!? 어떻게 좀 안 돼요? 저 오늘 온종일 안 좋은 날이라서 진료까지 그러면 안 돼요!"


대학병원 응급실까지 온 날이 일진이 좋을 리가 없지. 왜 이 환자는 가까이 다니던 병원을 놔두고 굳이 대학병원 응급실에 왔을까. 그건 밤에 당직하는 선생님이 남자이기 때문이라 그럴 것 같았다. 여자 선생님은 대부분 당직을 서지 않는 조건으로 근무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될 정도로 여자 선생님에 대한 수요가 남자보다 더 많다는 거다.


아무튼, 그래서 환자의 절박한 심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진료까지 그런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난 아무런 해코지도 안 했는데 말이다. 내 앞에서 그렇게 말하는 걸 들으니 나도 사람인지라 서운함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알겠습니다. 일단 기다리세요."


당직실로 온 나는 곤히 자는 보미 선생님을 깨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피곤해서 기분이 좋지 않은지 선생님이 짜증을 냈다.


"뭐 그런 거까지 오냐오냐 들어줘!? 넌 의사 아냐? 의사가 있는데 자기가 진료 안 보겠다 하는 거니 내버려 둬! 아직 찬밥 더운밥 가리는 걸 보니 전혀 응급하지도 않은 거 같구먼."


"그럼... 진료 거부 동의서 받고 보낼까요?"


선생님은 한숨을 내쉬면서 머리를 긁더니 말했다.


"하아... 네가 '알겠다'라고 해버렸잖아... 그럼 환자가 뭐라고 생각하겠어? '아 숨겨놓은 여자 의사가 있나 보다~' 하겠지. 그런 이상한 환자를 그렇게 보내면 후환이 찜찜하니깐 봐주긴 할게. 하지만 공식적으로 나는 오늘 휴일이라고."


선생님은 가운을 주섬주섬 입고 당직실 문을 '쾅!' 닫으며 나갔다. 야심한 밤, 적막하고 작은 방에 난 어색하게 홀로 남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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