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색무취의 산부인과 의사

by 남산

산부인과 의사가 된 뒤론 몸가짐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도덕적 책임감도 있지만, 사람이 무섭기 때문이다. 환자도 처음 보는 남자 의사가 마음이 편치 않겠지만, 나 또한 환자가 남자 의사라고 색안경을 끼고 오해하진 않을까 두렵다.


병원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혹시나 상스러운(?) 대화를 하진 않을까 조심한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 간혹 19금 농담이 나와도 멋쩍게 웃고 넘기곤 한다. 고등학교 동창 등 의료인이 아닌 친구들과 대화할 땐 특히 더 조심스럽다. 산부인과에 야릇한 관심이 많은 건 오히려 그들이다. 산부인과를 업으로 삼는 사람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는 궁금증을 '친구니까' 솔직하게 물어본다.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호응해주면 내 앞에선 웃겠지만, 내가 없는 곳에선 "역시 산부인과 의사는 완전 변태라니까?"라고 수군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자연스럽게 조용히 술만 마시는 재미없는 인간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조심한들 세상은 흉흉한 뉴스로 가득하다. 심심하다 싶으면 터져 나오는 의료인 성범죄 뉴스들. 사실 이것도 좀 웃긴 게 범인이 의사면 제목부터 대문짝만하게 '의.사.가... 충격적'라고 적힌다. 기사도 사람들 눈길을 끌려면 시각적 자극이 필요하겠지. 자기 몸을 맡겨야 하는 환자가 의사에게 가지고 있는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반영하는 거로 생각한다. 그만큼 사회가 의사에게 매우 높은 도덕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고.


언제부터인가 그런 뉴스가 나올 때면 나는 그 의사가 '산부인과' 의사인지 살펴보곤 했다. 사람들이 보기엔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겠지만. 그래도 산부인과 의사가 아니면 역시 그럼 그렇지 (?) 하며 안도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종류의 뉴스엔 어김없이 남자 의사와 산부인과에 대한 이야기가 댓글로 달려서 다소 울적해지곤 한다. 내가 보기엔 댓글 단 인간이 남자 산부인과 의사보다 더 음란한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하지만, 뭐... 어쩔 수 없다.


너무 어깨가 축 처진 채로 다녔던 걸까. 어느 날 보미 선생님이 한마디 했다.


"너 너무 기운 없게 다니는 거 아냐?"


"그런가요... 사는 게 재미가 영 없긴 하네요."


"왜 그래... 내가 뭐 재밌는 거 보여줄까? 마침 친구가 보내준 화끈한 동영상이 있는데. 흐흐흐 궁금하지?"


"... 네에... 선생님은 좋겠어요."


"응? 뭐가?"


"선생님은 여자 산부인과 의사라서 좋겠다고요... 어디 가서 야한 얘기를 해도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솔직한 언니'가 되고. 같은 내용을 남자 의사가 말하면 '혐오스러운 변태'가 될 텐데 말이에요."


저번에 선생님과 대화하다가 너튜브 이야기가 나왔는데, 선생님은 이미 너튜브 계획도 있었다. 병원 홍보도 되고, 자기가 하고 싶었던 얘기도 하고, 너튜브 자체의 광고 수익은 덤이다. 선생님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건 뭐니 뭐니 해도 '성'이라고 하며, 산부인과 의사가 '성의학'을 주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생님이라면 정말 잘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뭐 어쩌겠니~ 사람들은 원래 자기가 개변태인 걸 모르고 남을 변태라고 욕하는 걸 좋아하는걸. 있잖아. 모든 인간은 다 변태야!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변태가 아니고 범죄인 변태가 있을 뿐이지. 그러니 자기 허물도 모르는 사람 말에 신경 쓰지 말고 어깨 좀 펴고 살아! 나중에 나랑 같이 방송하던가~"


보미 선생님은 상쾌하게 웃으며 내 등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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