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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Aug 04. 2023

0주 4일. 시간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아

일반적으로 '난임'의 기준은 부부가 피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년 이상' 자연임신이 되지 않은 경우로 정의한다. 내 생각엔 '피임하지 않음'은 점잖게 표현하는 거고 '진짜 매일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러나, 여성이 35세 이상이라면 자연임신 시도로부터 난임 진단까지 '6개월'밖에 기다려 주지 않는다. 왜냐면 남아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임신을 시도해 볼 거라면 짧은 기간만 해보고 안 되면 더 늦기 전에 적극적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병원이 초조해하는 이유는 난임 치료 성공률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인자가 나이이기 때문이다. 또한 슬프게도 시간은 약으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난임 치료가 어려운 이유이다.


내가 어렸을 땐 30대가 굉장히 나이 많아 보였다. 어릴 적 즐겨보았던 방송 프로 중 MBC에서 하던 '사랑의 스튜디오(1994~2001)'라는 게 있었다. 미혼 남녀가 나와 서로 사랑의 작대기를 쏴서 연결되면 커플이 되는 내용인데, 어린 내가 봐도 쫄깃한 눈치 싸움이 백미였다.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디즈니 만화동산(1992~2006, KBS)'을 본 뒤 이어서 '사랑의 스튜디오'를 보는 게 정해진 일과였다. 그땐 출연자들이 혼기가 꽉 차거나 넘긴 아저씨 아줌마라고 생각했는데, 나이 들어 다시 보니 고작 20대 중후반밖에 안 된 분들이었다는 게 충격적이다.


르신들은 "옛날 30대와 다르게 요즘 30대는 애 같다"는 말씀을 종종 하시곤 했다. 겉모습이야 확실히 '사랑의 스튜디오'만 봐도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30대가 정신적으로 퇴행한 건 아니다. 인간의 기대수명이 길어져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더 오래 '젊게' 살아야 하는 점이 크다. 옛날보다 더 오래 공부해야 하고, 더 많은 스펙을 쌓아야 좋은 직장을 얻으며, 더 오래 돈을 벌어야 집을 장만하게 되는데, 벌써 늙어버리면 안 되지 않은가. 이를 반영하는 것이 평균 초혼, 초산 연령이다. 2022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초혼 연령은 남자 33.7세, 여자 31.2세이다. 첫 아이를 출산하는 산모의 평균 연령은 33.0세라고 한다. 이 나이는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슬픈 점은 사회가 내게 늙지 말라고 강요하는데, 생물학적인 시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거다. 40세부턴 자연임신 확률이 매우 낮아지며, 45세부턴 슬슬 갱년기로 넘어가게 된다. 내가 아무리 젊게 산다 해도 난소의 마감 시점은 정해져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뒤에선 쫓기고 앞에선 가로막힌 현실에 부조리함을 느낀다. 갑갑하고 두려운 마음에 소리치고 싶다.


"내가 말이야! 이 정도면 누가 봐도 정말 치열하게 산 거 아냐? 여기에 아기까지 키우는 건 솔직히 지금도 엄두가 안 난단 말이야... 그런데 벌써 난임을 걱정해야 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어째서 기다려 주질 않는 거야."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도 우린 조금씩 늙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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