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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Aug 01. 2023

0주 3일. 아내는 생리가 터졌고 난 눈물이 터졌다

주말 오전 근무를 하고 있는데, 아내가 카톡을 보냈다.


"나 생리 시작하는 듯."


"아. 그렇군."


오래된 부부가 그렇듯 카톡 대화는 간결했다. 그러나 맥락이 함축하고 있는 배경은 간단하지 않다. 매달 돌아오는 아내의 월경이지만, 몇 달 전부터는 새로운 의미가 하나 더 부여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실패'이다. 실패, 실패, 실패, 그리고 이번에도 또 실패였다.


지금보다 조금 더 젊었던 시절. 그래도 아직 20대와 큰 차이 없다고 생각했던 우리는 토론 끝에 이렇게 합의했었다.


"이 험난한 세상에 자녀를 낳아봤자 고통받는 존재를 하나 더 늘릴 뿐인 것 같아. 그러니 노예의 굴레는 우리 선에서 그만 정리하자."


아이가 없는 부부라면 의례 주변의 귀찮은 시선이나 참견을 받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런 건 별로 신경 쓸 필요 없는 거라 문제는 아니다. 다만 하루하루 나이가 드는 게 체감되자 조금씩 불안과 미련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불안은 결국 나 자신에게서 기원한다. 남과 비교하는 것도 사실 내가 불안해서 그런 게 아닌가. 주변을 보면 의대 졸업과 동시에 결혼해 벌써 애가 셋인 친구도 있고, 남들 결혼할 때 해서 적당히 애 하나둘 가진 친구도 있다. 그러나 '나도 뒤처질 순 (?) 없지'라고 생각하기엔 아직 싱글 라이프를 즐기면서 사는 친구도 많다. 결혼하든 안 하든 애가 있든 없든 다들 행복하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며 알아서 살 것이다.


하지만, 딩크족을 선언하고 둘이서만 살 거라던 지인들의 카톡 프로필에 결국 아기 사진이 걸리자, 난 '믿고 있었는데 역시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는 것인가'라는 불안이 생겼다. 이야기를 나눠보면 아내도 생각은 나와 비슷했던 것 같다. '모든 건 다 때가 있다'라는 어른들의 말에 우리도 결국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 이제 시작이야~'라는 식으로 임신을 시도하는 건 뭔가 좀 어색했다. 일단 처음은 몸풀기처럼 피임을 하지 말아 보기로 했다. 임신이 되면 되는대로 두는 거고, 안 된다고 스트레스받진 말자고.


"이게 과연 될까?"


아내의 물음에 나는 대답했다.


"안 되면 뭐 어쩔 수 없지. 생리하면 맥주나 한 캔 하자."


그런데 막상 피임을 안 한다고 뭐 거창한 걸 하는 건 아니었다. 왜냐면 피임이고 자시고 간에 우린 평소 하루하루가 너무 피곤했기 때문이다. 특히 난 퇴근하면 겨우 씻을 힘만 남아서 누우면 그대로 잠들어 버리곤 했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든지 할 텐데, 그건 정말 노력이 많이 필요한 일이었다.


따라서 첫째 달의 생리는 '예상했던 결과'였다고 할 수 있었다. 둘째 달의 생리는 '바빠서 그래'였으며, 셋째 달의 생리는 '타이밍이 안 맞았네'였고, 넷째 달의 생리는 '회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술 마시고 임신하는 게 찜찜했는데, 차라리 잘 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다섯째 달은 '솔직히 이 정도면 이번엔 임신이 되지 않았을까?'라고 나도 모르게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또 생리라니... 난 지금 상황에서 이것보다 더 열심히 못 하겠는데, 그래도 안 된다고? 맙소사! 그동안 진료했던 수많은 난임 부부들이 떠올랐다.


아내가 생리한다고 카톡을 보낸 주말. 마침 나도 오전 근무만 하고 퇴근하므로 우린 오랜만에 외식하기로 했다. '생리 기념일'로 맛있는 거 먹기. 피임을 안 하기로 한 뒤로 우리 부부가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던 의식 같은 거였다.


그날은 유독 눈이 부실 만큼 날씨가 좋았다. 아내를 보니 나도 모르게 갑자기 눈물이 나올 만큼.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던 중이어서 내가 아내보다 앞에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 눈물이 보이지 않도록 얼른 훔쳤다. 눈곱을 떼는 것처럼. 그런데 아내가 날 뒤에서 끌어안았다.


"야 울 거면 내가 울어야 하는 상황인데, 왜 네가 울고 그래?"


그러게나 말이다. 늙으니 주책맞아지는 게 한둘이 아니다. 아내도 우는 걸까 봐 차마 뒤돌아볼 수 없었다. 난 아내의 팔을 토닥이며 혼잣말하듯 대답했다.


"하아... 세상 사는 게 참 쉽지 않군요.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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