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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Jul 31. 2023

0주 2일. 아마도 괜찮을 거야

노산의 기준이 되는 나이를 이미 넘겼지만, 솔직히 우리 부부는 그다지 위기의식이라는 게 없었다. 일단 자녀를 갖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아내는 '자식을 낳고 싶지 않다'라는 주의였고 난 '아무 생각이 없다'에 가까웠다. 난 그저 아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시키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한편 우린 각자 믿는 구석이 하나씩 있었다. 아내는 집안 어른 중 마흔 넘어서도 임신하신 분이 많다며 '순산 가족력'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 '혹시나 좀 더 나이가 들었을 때 아쉬워지면 어떡해?'라는 불안감을 '난 그때 가서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스스로 달래는 듯했다. 수많은 난임 부부들을 봐왔던 난 아내의 말이 다소 어이없게 느껴졌다. 너무 안이한 생각 아닌가. 그러나 아내의 말에 굳이 정색하고 비판하는 건 자기 손해이다.


"그래. 여보가 원하는 대로 해요."


난 아내를 토닥이며 생각해 보았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판단하건대, 아내의 장점은 다름 아닌 '규칙적인 월경'이다.


호르몬 균형이 양호하고 난소에서 원활하게 배란이 되면, 규칙적인 월경을 하게 된다. 다만 역으로 규칙적인 월경이 모든 기능이 다 정상임을 보장하진 않는다. 그래도 배란 기능이 썩 나쁘진 않을 거라고 짐작해 볼 순 있다. 또한 규칙적인 월경은 배란 시점을 짐작하기 편하다는 장점도 있다.


월경주기를 설명할 때 흔히 '28일'을 기준으로 하는 건 4주로 딱 떨어지는 편의상 이유도 있겠지만, 그게 평균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므로 월경주기도 개인마다 다른 게 정상이다. 그중 가장 흔한 것이 28일 주기이다. 그러나 사실 28일 월경주기를 가진 여성은 전체의 15%밖에 되지 않는다. 주로 24~38일 주기 안으로 다양하게 존재하고 이 범위를 벗어나는 건 드물기에 '비정상'으로 판단한다.


28일 월경주기 기준으로 배란은 생리 2주에 발생한다고 한다. 그러면 마치 배란이 '생리 시작 2주 뒤'나 '월경주기 중간'에 발생하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는데, '배란 후 2주 뒤 생리한다'고 보는 게 맞다. 일반적으로 월경주기가 28일보다 짧거나 긴 사람은 배란 전 기간이 다른 것이다.


월경 시작                     배란               다음 월경 예정일

↓                                  ↓                          ↓

├───16일───┼──14일──┤ 30일 주기

        ├──14일──┼──14일──┤ 28일 주기

                ├─12일─┼──14일──┤ 26일 주기


이러한 이론적 배경을 몰라도 요즘은 앱을 이용하면 된다. 생리 달력 앱을 보면 자신의 월경주기가 어떻든 간에 다음 월경 예정일로부터 2주 전이 '배란 예정일'로 표시되어 있을 것이다. 이게 다 상기된 이유 때문이다. 아무튼 월경주기가 규칙적인 여성은 비교적 배란 예상일을 알기 쉽다.


자세한 건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이것만으로도 임신의 어려움은 대폭 하락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걸 알고 만난 건 아니지만, 아내에게 참 감사한 점 중 하나였다. 아내가 믿는다는 '순산 집안 내력'도 결국 설명하자면 '규칙적인 월경주기'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어쨌든 이게 나의 '믿는 구석'이었다.


"그래 여보... 여유가 없으면 너무 무리하지 말자. 나는 '되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지'야. 다만, 나중에 혹시 괜히 아쉬울까 봐 불안하긴 해. 그렇지만 뭐 어찌어찌 되겠지."


그렇게 아내를 다독이며 말했지만, 나도 꽤 안이하게 생각한 건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 '어찌어찌 되는 것'도 실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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