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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Aug 05. 2023

0주 5일. 난소 나이 검사해 볼래?


우리 부부는 아직 난임이라고 진단하기엔 일렀다. 내가 그동안 만났던 많은 난임 부부를 떠올려 보면 더욱 그렇다. 그들은 아이를 가지기 위해 우리보다 훨씬 더 절실하게 노력했었다. 그렇게까지 해도 안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 아내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그분들을 생각하면 우리가 벌써 '난임'이라고 좌절하는 건 다소 과잉 진단(?)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어쩌면 그저 내가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난임이 맞건 아니건 간에 우리도 나름의 노력은 해봤고, 그런데 안 되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


요즘은 내게 난임 진료를 받는 환자도 나보다 나이가 어린 경우가 점차 많아졌다. 이분들의 나이가 매우 젊다 해도 뭔가 잘 안 되니까 고민 끝에 병원에 오신 걸 테니, '벌써 병원에 온다고?'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환자의 나이를 보며 은근히 위기감을 느낀다. '내가 정말 나이를 먹긴 했구나... 이거 이대로 있어도 괜찮나?'하고.


난임의 원인 중 27%는 배란 요인이라고 한다. 즉 다양한 이유로 뭔가 배란이 잘 안 되는 것이다. 배란 요인은 또 다양한 원인이 있고 심지어 명확하게 알 수 없을 수도 있다. 호르몬이 불균형하면 배란이 안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병원에선 호르몬 검사를 한다. 호르몬 수치는 계속 일정하지 않고 주기적으로 변하므로 월경 주기 중 기준이 되는 시점을 정해서 검사한다. 그게 보통 생리 3~5일 차로 다시 말해 '생리 끝 무렵'이다. 만약 내가 생리가 너무 불규칙해서 거의 2~3달에 1번 할 정도라면? 기약 없는 생리를 기다리지 말고 병원에 온 당일에 검사하면 된다. 이미 그게 배란이 잘 안 되고 있다는 증거이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 한다.


다만 아내는 생리가 매우 규칙적이라 배란 요인은 괜찮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었다. 어차피 난임 검사를 본격적으로 하면 당연히 호르몬 검사도 하지만 말이다. 호르몬 검사는 여러 항목이 있지만, 우선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은 '항뮬러관호르몬(AMH)' 검사였다. 사람들이 흔히 '난소 나이 검사'라고 알고 있는 검사이다.


그런데 아내는 이미 AMH 검사를 했다. 우리도 슬슬 임신을 준비할까 말까 고민하던 몇 달 전, 아내는 지나가듯 말했다.


"AMH 검사 말인데, 그거 보건소에서 무료로 해주더라?"


"엥? 정말이야?"


"응. 임신 준비한다고 하면 이것저것 관련 혈액검사를 해주는데, 거기 AMH도 있어. 결혼 여부는 딱히 상관없는 것 같더라. 나이 제한은 적혀있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결국 여자라면 그냥 검사받을 수 있는 셈이긴 해."


"우와 보건소에서 무료로 혈액 검사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AMH까지 할 줄은 몰랐네. 그럼 난 뭐 먹고 사니."


농담 반 정도로 대답했지만, 나머지 반은 진담이다.


병원에서 처방 시 AMH 검사의 건강보험 적용 기준은 매우 깐깐하다.


- '난임'의 원인 규명 및 치료를 위하여 실시한 경우 연 1회 인정.

- 단, 난소기능의 변화가 의심되어 임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경우 (난소 수술 등) 연 2회 인정. 이는 전후를 비교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상황이 아니라면 AMH 검사는 비급여이다. 비싼 검사인 만큼 병원이 무분별하게 처방해서 건보재정을 낭비하지 말라고 통제하는 것이다. 비급여 대상인데, 환자가 원해서 급여로 처방해 싸게 검사하는 건 매우 위험한 행위이다. 나중에 병원 심사에서 걸리면 5배 환수 처리를 당하는데, AMH처럼 비싼 검사는 타격이 매우 크다고 한다. 따라서 병원에서는 AMH 검사를 가급적 보험이 되는 환자에게만 처방하는 편이다. '단순히 궁금해서' 검사하는 건 비급여다. 병원은 운영이 달린 문제라 꼼꼼하게 신경을 쓰는데, 정작 보건소에서는 AMH 검사를 거의 제한 없이 퍼주고 있다는 게 참 아이러니. 하긴 워낙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니 나라에서 이것저것 해보는 거 아니겠는가.


"좋아! 세금도 많이 내는데, 마누라 AMH 검사는 내 세금으로 쏠게!"


내가 손가락 하트를 날리며 말하자, 아내는 어이없어하며 대답했다.


"이 정도는 내 세금으로 해도 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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