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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Aug 10. 2023

0주 6일. 남편이 설명해 주는 난소 나이 검사


아내가 보건소에서 임신준비지원 검사를 받았다. 여러 가지 검사 항목이 있고 그중 항뮬러관호르몬 (AMH) 검사도 있었다. 보건소 검사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무료라는 거다. 이것에 비하면 정말 작디작은 단점 하나는 결과에 대한 판단은 알아서 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도 대부분 검사는 결과지에 '참고치'라고 불리는 정상 범위가 별도로 표시되어 있어서 내가 정상인지 비정상인지는 알 수 있다. 그러나 AMH 검사 결과지는 좀 복잡하다.


"이게 그 난소 나이 검사 맞지? 결과가 나오긴 나왔는데... 그래서 이게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어."


아내가 AMH 결과지를 내게 보여주며 물었다.


"음 수치가 여보 또래 평균보다 낮은 편이긴 한데, 그래도 이 정도면 여보 나이랑 비슷하게 난소 나이가 나온 거니깐 정상이지."


"그렇구나... 그래서?"


"응?"


"그러니까 그거 확인하고 끝이야?"


"응 AMH 검사 자체는 그걸 확인하는 거야. 수치가 너무 높거나 낮으면 좀 골치 아플 텐데 다행인 거지. 그리고 정상이지만, 우리 나이가 적지 않은 만큼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인 건 변함 없어..."


난 아내와 검사 결과지를 찬찬히 읽어봤다. 첫 문단은 이렇다.


AMH 농도는 동일 나이군에서 30~50 percentile에 속하며, 약 ○○세의 평균 농도입니다.

난소반응 예측 결과 배란유도 또는 과배란유도시 정상반응군(normal responder)에 해당합니다.


우선 AMH가 왜 난소 나이를 반영한다고 말하는지 간략히 짚고 가자. 난소에 배란 난포 후보가 되는 '원시난포'라는 세포가 있다. 매달 원시난포 중 하나를 잘 키워서 그게 터지면서 배란된다. AMH는 주로 원시난포에서 많이 분비되므로 이를 측정하여 원시난포 잔여량을 가늠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난소를 계속 사용하면서 원시난포도 감소하므로, AMH가 감소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AMH가 내 나이 평균보다 적어도 문제이지만, 너무 많아도 비정상이다.


한편, 나이 외에도 AMH 수치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이 있다. 대표적인 건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은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발생하며 배란 장애가 생기는 대표적 질환이다. 이때 난소는 배란하지 못하는 수많은 작은 난포가 발생하는데, 이에 따라 AMH 분비도 많아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난소 나이는 실제 나이보다 매우 어리게 나오게 되는데, '내가 그래도 난소는 동안이구나'가 아니라 문제가 있는 것이다.


또한 경구 피임약을 복용 중인 여성은 AMH 수치가 낮게 나온다. 그래서 누군가는 "봤지? 피임약은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는 약이야!"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건 성급한 오해 또는 의도적 곡해이다. 경구 피임약 자체는 난소에서 분비하는 호르몬과 동일하며 이를 외부에서 공급해 주는 거다. 난소가 해야 하는 일을 대신하므로 난소는 쉬고 배란이 억제된다. 배란 억제로 피임 효과를 보기도 하고, 다양한 질환의 치료 약으로도 사용된다. 어쨌든 배란이 억제되므로 AMH도 감소하는데, 약을 중단하면 수개월 내 본래 몸 상태로 돌아온다.


따라서 AMH 검사 결과를 볼 때 수치만 놓고 기계적으로 해석하면 안 되고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50 percentile이 집단의 중간이므로 아내는 또래 평균에서 약간 수치가 낮은 정도였다. 이 정도면 정상 범위다. 그러나 표시된 난소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한 살 많이 나오니 아내는 영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난 얼른 다음 줄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배란유도하면 잘 될 거래. 아직 할지 안 할지 모르지만."


AMH 수치가 너무 낮으면 배란유도 약을 써도 잘 반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AMH가 매우 낮아도 임신이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무조건 불임이라 단정하면 안 된다. 따라서 어디까지나 AMH는 '참고용'이다. 그래서 난임 치료가 까다로운 것이기도 하고.


검사지 하단엔 추가 정보가 있었다.


귀하의 나이만을 고려하였을 때 난소에 남아 있는 난자는 약 ○○○○○개로 추정되며, 배란되는 난자 중 약 ○○%가 염색체 이상이 없는 건강한 난자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월 평균 임신 가능성은 ○○% 정도이고, 건강하게 분만할 가능성은 약 ○% 입니다.


이건 나이에 따른 임신 통계를 바탕으로 정보를 준 것이다. 'AMH 수치가 얼마니까 ○○세 평균이네? 어디보자... 예전 통계를 보니 ○○세는 임신 가능성이 이랬었지'라고 알려주는 거니 참고하면 된다. 솔직히 '지금 난자가 어쩌고저쩌고'는 무슨 소용인가 싶고 '월 평균 임신 가능성'이 가장 와닿는 정보였다. 새삼 다시 보니 매우 흥미롭다.


30세 이하의 여성이 한 달 중 임신이 될 가능성은 약 20%라고 한다. '어라? 생각보다 적은데?'라고 생각하는 청춘이 있다면 1년으로 한번 계산해 보자. 1년에 12번의 기회가 있다고 치면, 대충 '독립시행 확률'로 계산해서 그중 하나가 임신이 될 확률은 93%에 달한다. "10대, 20대는 스치기만 해도 임신이 되니까 조심해!"라는 말이 딱히 틀리지 않은 것 같다.


반면 40세 이상의 여성은 월 평균 임신 가능성이 약 5%라고 한다. 이걸로 1년 12번을 노력했다고 할 때 계산해 보면 대략 45%. 절반보다 낮으니 확실히 어려운 건 맞는데, '절대 불가능'은 또 아니니 그게 참 희망 고문 같고 힘들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부부도 이젠 그냥 스치는 정도로는 임신하기 어려운 나이임을 확률이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아내의 임신 확률에 동그라미를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


"여보, 그래도 이 정도 확률이면 나쁘진 않은 것 같아. 근데 너무 절실하게 임신을 바라진 말자. '되면 좋고 (근데 좋은 게 진짜 맞아?)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면 좋겠어."


"..."


"내가 그동안 많은 난임 부부들을 봤잖니. 의사로서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난 여보가 그렇게까지 고생하는 건 싫어."


"... 그래. 뭐, 알겠어! 너무 걱정하지 마. 잘 되겠지!"


운도 노력도 결국 모든 건 확률 아닐까. 그런데도 절실히 기도하기에 인간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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