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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Oct 01. 2023

1주 1일. 우리에겐 생각보다 시간이 없다

어쩌다 보니 태어나 아등바등 살고 있다. 그것이 나의 인생. 그렇게 보면 인생을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은 뗏목 배에 비유하는 것이 꽤 적절한 표현인 듯하다. 가끔은 밤하늘을 수놓는 은하수 같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경험을 하는 것이 인생의 매력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두려울 정도로 막막한 것 또한 인생이다.


다만 생물학적으로 보면 우리 인생엔 흐릿하지만, 대략적인 이정표가 정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젊을 땐 젊음을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인생을 시간순으로 흘러가듯이 살다 보면 오늘의 내가 어제와 같아 보이고 나도 늙는다는 게 실감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가끔은 인생을 뒤에서부터 세어볼 필요가 있다.


여성의 평균 폐경 나이는 51세이다. 51세가 되는 해에 마지막 월경을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1년 동안 생리가 없으면 1년 전의 그 월경을 마지막으로 폐경이 되었다고 진단할 수 있다. 이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난소 기능이 다했다는 것으로 아무리 현대의학이 발전한들 아직 이 시점을 더 뒤로 미룰 수 없다. 60세면 장수했다고 생각하던 옛날에도,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요즘도 폐경 시점은 51세로 크게 변함이 없다. 2023년 기준 한국 여성의 평균 수명은 87세이다. 막막하네...


어떤 과학자들은 '폐경' 그 자체에 의문을 품고 연구하기도 한다. 다른 장기보다 유독 생식기만 기능이 급격하게 퇴화하는 현상은 사실 인간을 비롯해 범고래, 들쇠고래 등 특정 종에서만 관찰되는 '특이한' 일이라고 한다. 인간과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유인원들도 수명이 다할 때까지 출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인간은 중년이 되면 생식능력을 포기하도록 진화하였는가?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로 이유를 설명하곤 한다.


첫째는 '어머니 (할머니) 가설'이다. 중년이 되면 본인이 직접 번식하는 것보다 자식이나 손주의 양육을 돕는 것이 집단의 유전자를 보전하는데 이득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생식 갈등 가설'이다. 딸과 어머니가 동시에 임신, 출산하면 경쟁 관계가 되므로 늙은 세대가 생식을 포기하는 쪽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출산이 멎는 시기(폐경)가 딸이 임신하는 시기와 비슷하다는 것이 가설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생물학적인 인생사에 따르면 50세엔 자신의 임신은 끝나고 손주를 볼 나이라는 것이다. 45세부턴 '폐경 이행기 (갱년기)'라고 해서 월경이 오락가락해지며 슬슬 폐경에 대비해야 한다. 37세부턴 임신 확률이 감소하기 시작하여 일반적으로 40세 이후는 임신이 매우 어렵다고 한다. 35세는 다운증후군과 같은 염색체 이상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나이라 흔히 말하는 '고령 임신'의 기준이 된다만, 요즘은 그 말이 무색할 정도로 산모의 임신 나이가 매우 많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평균 초산 연령이 33세이며, 결혼 연령은 31세이다! 남들보다 결혼을 조금만 늦게 하거나, 임신을 미뤄도 35세는 금방 된다.


100세 시대라고 하며 앞으로 살날만 늘어나고 상대적으로 젊음을 더 오래 유지할 것을 강요받는 요즘이다. 그런데, 자손 번식의 시기는 생물학적으로 정해져 있다니! 뭔가 억울한 느낌마저 들지만, 어디 하소연할 곳이 없다.


"임신, 출산, 육아는 다 때가 있단다. 적어도 환갑잔치하기 전에 자식이 대학 갈 수 있도록 하여라. 60세면 옛날엔 손주 보고 있을 나이였다는 걸 생각하렴. 난 다 늙었는데 아이를 이제 겨우 대학 보내는 것도 끔찍한 일 아니니? '모든 준비를 다 하고 난 뒤 아이를 가져야지' 같은 건 허상이란다. 우린 결코 다 준비할 수 없어. 그러니 먼저 지르고 나서 준비해야 한단다."


부모님, 교수님 등 여러 어른이 하는 말씀은 늘 비슷한 레퍼토리다. 그러나 난들 그걸 몰라서 임신을 미뤘겠는가. 나도 어떻게든 잘 살고 싶고, 내 아이는 좋은 환경에서 컸으면 하니까 그런 거지. 그러나 생물학적 시간이 우릴 기다려주지 않으니 그저 억울하기만 하다.


고령 임신은 젊음이 영원하지 않음을 처절하게 깨닫는 과정이다. 내가 아무리 겉으로는 어려 보여도 시간은 제 갈 길을 무심하게 가고 있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된다. 아니 이미 알긴 알지만, 그래도 좀 더 먼 일일 것 같은 '늙음'을 갑자기 눈앞에 들대는 것 같은 충격을 받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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