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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Sep 30. 2023

1주 0일. 임신 가능성이라는 건 참 오묘하다

30대 후반 여성이 임테기가 두 줄이 나왔다며 내원하였다.


그녀는 결혼한 지 아직 2개월밖에 안 되었지만, 이미 임신 준비를 위한 혈액 검사를 받아서 가지고 왔다. '아직은' 30대이지만, 사실 '거의 마흔'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나이. 요즘 기준으로도 다소 늦게 결혼하였음을 그녀도 알기에 서둘러 임신을 준비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검사 결과지엔 항뮬러관호르몬(AMH) 수치가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그녀가 온 이유 중 하나도 AMH 수치 때문이었다. 아직 30대 후반인 그녀였지만, AMH 수치가 매우 낮아 '난소 나이'는 40대 후반의 평균이었다. 40대 후반이면 슬슬 갱년기에 접어드는 나이 아닌가! 결과지를 받았을 때 그녀가 얼마나 심란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 그녀의 표정은 희망찬 기대로 부풀어 있었다. 그녀가 병원에 온 또 다른 이유인 '임신 확인' 때문이었다. 딱히 시험관 시술을 받은 건 아니라고 했다. AMH 수치 때문에 난임 병원에 갈까 말까 하다가 우연히 자연 임신 된 거라고.


"그래요. AMH는 어디까지나 참고용일 뿐이에요. 난소 나이가 어떻게 나왔든 간에 임신이 되면 좋은 거죠. 그럼 바로 초음파를 보도록 할까요?"


일반적으로 의사는 환자에게 너무 감정을 이입하지 않도록 훈련받는다. 이것이 환자에게 공감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다만 의사도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때론 환자의 상황에서 자신을 보게 되고 이에 따른 영향을 받을 수도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되, 보이지 않는 선은 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도 임신을 준비하고 있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그녀의 상황에 나를 대입해 보게 된다. 초음파를 보면서도 '잘 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당연히 정상 임신일 거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에게 들키지 않도록 내색은 안 하지만, 평소보다는 좀 더 가슴 뭉클한 기분으로 초음파를 보았다. 그리고 '역시나' 그녀는 임신이 맞았다.


"지금 보시는 게 임신낭이에요! 아직 이른 시기 크기는 작지만, 위치는 잘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 임신낭도 커지고 안에 태아가 생기면서 심장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거예요.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녀는 내게 감사의 인사를 했지만, 사실 병원도 그녀에게 감사할 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AMH 수치가 그녀보다 높은 상황에서도 임신이 잘 안되어 절망했던 다른 난임 부부들을 떠올려 본다. 그 험난한 난임 시술 없이 이미 자연 임신이 된 상태로 온 것이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결국, 교과서 내용대로 난소 나이 검사도 어디까지나 '참고용'이라는 걸 새삼 체감하며 배운다. 비록 AMH가 우리에게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정보를 줄지라도, 그것이 미래를 결정한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


오늘 의사의 축하는 여러모로 평소보다 더 진한 감정이 묻어있음을 그녀는 아마 알 길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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