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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Oct 02. 2023

1주 2일. 자궁난관조영술과 방사선 괴담


앞서 난임의 원인 중 27%가 배란 요인이라고 했다. 배란 기능은 양호한지, 그렇지 않다면 원인은 무엇인지 대략 살펴보는 것이 생리 3~5일 차에 하는 호르몬 검사이다.


그럼, 다음은 무슨 검사를 하는가? 바로 생리 5~10일 차에 하는 자궁난관조영술이다. 환자에게는 편의상 생리 일주일 차에 검사한다고 안내해 드린다.


이 검사는 난임의 원인 중 자궁 및 난관 요인을 감별하기 위해 실시한다. 자궁 내부 기형이나 난관 막힘 등 임신을 방해할 만한 해부학적 구조 이상은 없는지 확인해 볼 수 있다. 자궁/난관 요인은 난임의 원인 중 22%를 차지하므로 매우 중요한 검사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난임 관련 검사를 했다'라고 하려면 패키지처럼 반드시 포함되는 검사이기도 하다.


자궁난관조영술 방법은 다음과 같다. 가느다란 카테터 관을 자궁 안까지 삽입한다. 그리고 조영제를 주입하면서 엑스레이 사진을 몇 장 찍는다. 주입한 조영제가 난관 끝까지 가서 복강 내로 빠져나오는 것까지 확인하면 끝이다. 양쪽 난관이 막히지 않았음을 보는 게 주목표이다. 난관을 보는 검사 방법이 꼭 자궁난관조영술만 있는 건 아니지만, 이 방법이 그나마 덜 침습적이고, 더 저렴하며, 비교적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으므로 가장 가성비가 좋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평소 이 검사를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았다. 물론 환자에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검사이다. 자궁 안으로 조영제를 쏠 때 생리통 같은 통증이 발생하긴 하지만, 그것 말고는 환자에게 큰 해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술자인 내가 쓸데없이 방사선을 계속 쐰다는 게 매우 찜찜한 문제이다.


자궁난관조영술 시 자궁에 카테터를 넣는 것과 조영제를 주입하면서 방사선사에게 촬영 타이밍을 알려주는 건 의사인 내가 한다(병원마다 이 역할을 맡는 이가 다를 수 있음). 특히 조영제를 주입하는 건 직접 주사기로 쏘는 거라 어쩔 수 없이 환자와 함께 방사선을 쐬게 된다. 환자는 검사할 때 한 번만 방사선을 쐬면 되고 그 정도 노출은 아무 문제 없다. 하지만, 나는 여러 환자를 검사할 때마다 계속 방사선을 쐬게 되니 이렇게 자주 방사선에 노출되어도 괜찮나 싶은 불안감이 들곤 했다. 물론 맨몸으로 방사선에 노출되는 건 아니고 납이 들어있는 차폐복을 입긴 하지만, 이것도 앞치마 모양으로 신체 주요 장기만 겨우 가리는 거라 이론상 괜찮다고 하는 게 정말 괜찮은 게 맞는지는 의문이다.


전공의 시절 선배에게 들었던 병원 괴담 중에 이런 게 있었다. '정형외과 선생님은 딸을 많이 낳는다'라는 이야기였다. 뼈를 다루는 특성상 정형외과 의사는 방사선에 많이 노출된다. 어느 정도냐면 수술 시 뼈를 투시하기 위해 실시간으로 엑스레이를 돌리는 수준이다. 물론 정형외과 의사도 다 차폐복을 입고 수술하지만, 그걸로 방사선 노출을 100% 다 막을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따라서 장기간 방사선에 노출된 정형외과 남자 의사는 뭔가 Y 염색체가 손상되어서 이로 인해 호르몬 변화가 어쩌고저쩌고... 그래서 결론은 딸을 많이 낳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전공의 시절엔 그냥 한국 병원만의 괴담이겠거니 했는데, 찾아보니 의외로 외국에서도 많이 나왔던 가설이었다. 방사선 노출이 많은 직업군 (정형외과, 영상의학과 의사, 방사선사 등) 남자의 자손이 상대적으로 아들보단 딸이 많았다는 보고가 나오자, 학자들은 이를 방사선 노출이 인체에 끼치는 영향으로 생각하여 연구를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실제론 자연 성비와 별 차이가 없었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따라서 지금에 와선 역시 진지하게 믿을 건 못 되는 '괴담'인 모양이다만...


아무튼, 임신 준비를 하는 중이니 계속 방사선을 쬐는 것이 찜찜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의사가 돈 많이 벌면 뭐하나, 불알 두 쪽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는데 말이야... '세상 모든 일은 정말 허투루 매겨진 가격이 없으며 절대로 공짜란 없는 법이다'라는 말이 생각나는 일이다.


만약 내 아이가 딸이라면 저 괴담이 다시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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