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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Oct 04. 2023

1주 4일. 정액검사... 역시 해야겠지?


아내가 자궁난관조영술 검사까지 결심하는 마당에 남편으로서 나도 뭔가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 결국은 올 것이 온 것인가... 정액검사!


난임의 원인 중 27%가 배란 요인, 22%는 자궁/난관 요인이다. 그래서 난임 치료 시 이런저런 검사를 많이 하는 것은 아무래도 여자 쪽이다. '임신은 부부가 함께 준비하는 건데, 왜 여자만 더 고생해야 하는가?'라고 불만을 느끼는 분도 많다.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다른 방도가 있는 건 아니다. '차이'가 '차별'은 아님을 잘 구분해야 한다.


그렇다곤 해도 정액검사가 매우 좋은 가성비를 자랑하는 검사임은 분명하다. 난임의 원인 중 남성 요인은 25%. 일단 1/4 확률을 정액검사로 감별할 수 있는 것이다. 정액검사의 장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여성의 난임 검사처럼 특정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고 아무 때나 검사할 수 있다. 심지어 채혈이나 조영술 주입처럼 통증을 유발하지도 않고 검체 채취도 간편하다. 바지만 내리고 하면(?) 되니까. 고생하는 아내를 생각하면 못 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남자도 생각보단 복잡 미묘하단 말이지...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을 만났다. 많이 늙었지만, 아직 10대 시절 얼굴이 많이 남아있다. '교복을 입던 그때와 사실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몰라...'라고 잠깐 생각했으나, 먹고 사는 얘기를 주고받아 보니 역시 양심 없는 생각이라는 걸 깨닫는다. 우리도 별수 없이 늙는구나 하고.


그러던 중 친구 한 놈이 내 옆에 와서 앉았다. 뭔가 비밀스러운 얘기를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내가 산부인과 의사라는 걸 그도 알 테니 분명 관련 얘기일 것이다.


"야 나 뭐 좀 물어봐도 되냐?"


"응 뭔데?"


"사실 우리 와이프가 이번에 임신했거든."


"와! 정말? 축하한다! 몇 주야?"


"지난번에 5주 정도 된다고 하더라. 병원에서 다음에 심장 소리 들으러 오라고 했는데, 그때 가면 들을 수 있겠지?"


"그럼~ 당연히 괜찮을 거야! 잘됐네!"


친구를 축하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가 이미 난임 검사를 받았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시험관 시술까지 하지 않고 다행히 임신하였다고 하는데, 진지하게 고민은 했었다고 하였다. 솔직히 난 그 친구라면 어렵지 않게 임신에 성공했을 거로 생각했기에, 그마저 '난임'의 영역에 있었다는 것에 마음속으로 작은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내가 기억하는 그는 정력의 화신, 풍부한 남성성의 상징 같은 녀석이었으니까. 눈빛으로도 임신시킬 수 있을 것 같은 육체로 했다 하면 백발백중일 것 같은 녀석도 '난임'이라니. 뭔가 말이 안 된다. 난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어보았다.


"난임 검사를 다 받았다는 건 너도 정액검사 받았다는 거지?"


"응. 와 그거 기분이 참 미묘하고 착잡하더라.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지만. 아내도 별다른 이상이 없었어. 그래서 더 미치겠는 거지. 우리는 임신이 안 되는데, 검사에선 이상이 없다고 하니까."


"응 맞아 난임이 그래서 힘든 거지. 그래도 임신이 되었다니까 다행이다! 고생 많았어. 이젠 조심조심 키우면 되겠네."


친구들과 헤어져 귀가하는 길. 지하철을 기다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그 친구조차 고생해서 임신했는데, 난 임신 시도를 너무 안이하게 하고 있는 거 아닌가. 일단 정액부터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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