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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Oct 08. 2023

2주 0일. 배란기, 그리고 돌아온 과제 기간


공식 '난임' 부부가 되는 건 별로 원하지 않았으나, 결국 따지고 보면 우리 부부도 남들이 하는 것과 비슷한 준비는 한 셈이다.


· 배란 요인 - 평소 규칙적인 생리 양상과 큰 문제 없는 호르몬 검사
· 자궁/난관 요인 - 과거력을 보아 아마 괜찮을 거라고 믿음
· 남성 요인 - 그럭저럭 쓸만함을 확인


물론 병원에서 하는 정식 검사와 비교하면 뭔가 대충 넘어가고 빼먹은 게 많지만, 부족한 부분은 '의사인 남편이 판단한 거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안 된다고 생각하기엔 아직 마지막 기회가 남았기도 하니까.


하지만, 난임 검사에서 이상이 없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안 될 이유가 딱히 없다'일 뿐이다. 이건 본심 전 서류 심사 혹은 경기 전 준비운동 같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당연하지만, 임신은 검사 결과만 가지고 알아서 되는 게 아니다. 귀가 후 침대에 누워 '그래 역시 난 이상이 없었어. 후후후...'하고 만족한 얼굴로 잠들고 말 거면 검사를 한 의미가 없다.


혹시 뭐 잊은 건 없나요? 생리 예정일로부터 2주 전인데? 그렇다면 배란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잠이 옵니까?


그렇다. 과제 기간(?)이 돌아온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임기간'은 '정자는 사정 후 3일 살고 난자는 배란 후 1일 사니까...'라는 식으로 배란 전 3일부터 후 1일까지 총 4일로 알려져 있는데, 난임병원에서 생각하는 가임기간은 약간 다르다. 난자는 배란 후 12시간 지나면 생식능력을 잃기 때문에, 병원에선 배란 후엔 기회가 떠났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생리주기 중 언제 하는 것이 가장 좋은가? 이를 연구한 논문에 따르면 임신 가능성은 배란 5일 전부터 증가하여 배란일에 최고치에 다다른다고 한다. 이론상 배란 직전에 하는 것이 가장 성공률이 높고 이때 임신 확률은 대략 50% 내외(나이에 따른 변동이 있음)라고 한다. 정확한 타이밍을 잡아도 반반이라니, 임신을 간절히 원하는 부부에겐 너무나 아쉽다.


따라서 '병원에서 배란일을 받아서 한 번으로 성공해야지!'라고 생각하면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교과서는 남편의 정액검사가 정상이라면 배란 5일 전부터 배란일까지 집중적으로 관계하도록 권장한다. 모든 확률을 끌어모아 조금이라도 임신 성공률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다. 매일 사정을 하면 물론 정자 농도가 감소하지만, 감소 폭이 미미하여 임신 성공률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오랫동안 임신이 안 되는 부부는 배란일을 정확하게 맞추는 것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한다. 그 절박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우리 부부도 임신 시도를 해보니 자연스럽게 그리될 수밖에 없겠다는 걸 느꼈다. 다만, 문제는 '배란이 언제 되는가?'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내의 규칙적인 생리가 임신 시도에서 굉장히 유리한 요소인 이유가 바로 배란 시점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내는 가끔 배란통도 느끼곤 했다. '뭔가 아랫배에서 오지끈 하는 느낌'이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그걸로 생리 며칠 차쯤 배란할지 가늠할 수 있었다. 이론상 생리 2주 전이 배란일이지만, 사람마다 다소 변동이 있으니 임신 시도를 해보며 '이날이 아닌가 봐...'하고 보정해 가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우린 흔히 사용하는 배란 테스트기도 사용하지 않았다. 도움이 된다는 건 의사인 내가 더 잘 알지만, 아내가 매일 그걸 확인하며 스트레스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앞서 몇 번의 시도가 실패하니 슬슬 불안함이 싹트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럴수록 냉정하게 생각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서 난 몇 가지 원칙을 정해놓았다.


① 배란 시점을 딱 맞춰도 확률은 100%가 아니니 실패에 스트레스받지 말 것 (까짓거 노력했는데 안 되면 애 없이 둘이 살지 뭐)

② 배란 예상일 전에 가급적 매일 시도

③ 배란일 이후는 거의 의미 없지만, 배란일을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혹시 모르니까'라고 부담 없이 몇 번 더 시도

④ 중요한 건 스트레스받지 않는 것! 배란 시점을 정확히 맞출 수 없어도 정자는 먼저 가서 3일 정도 기다려 줄 수 있으므로, 배란일 같은 건 '대충 맞춰도 되니까'라고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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