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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Oct 10. 2023

2주 2일. 이젠 별것이 다 눈물이 나네


앞에서 임신 최적의 시기는 배란 5일 전부터 배란일까지이므로 이론상으론 그 시기에 매일 관계를 시도하는 게 좋다고 말한 바 있다. 간혹 매일 사정하면 정자가 바닥나는 게 아닐지 걱정하는 분도 있는데, 놀랍게도 매일 사정한다고 해서 정액의 질은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10일 이상으로 너무 묵히면 정액검사의 결과 수치가 감소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론상 가임기에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 임신에 약간 더 도움이 된다. 배란 유도 등 병원에서 날짜를 받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론은 어디까지나 이론이고 실제 병원에선 부부에게 매일 '숙제'하라고 권유하지 않는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난임 부부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일단 아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 여기에 배란 시기를 예측하기 위한 노력 (배란 테스트기, 초음파 등), 그리고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어쩔 수 없이 (?) 해야 하는 부부관계까지 합치면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 이러한 스트레스가 성적 자부심이나 만족도를 매우 떨어지게 만든다. 그래서 차마 매일 부부관계를 하라고 권유할 수가 없다. 가장 좋은 건 역시 부부가 상의하여 '할 수 있는 만큼만 적당히' 하는 것이다.


한 부부가 난임 치료 상담을 위해 내원했다. 남편은 40세, 아내는 35세였다. 비록 아내는 남편보단 어렸지만, 고령 임신에 접어든지라 마음이 급했다. 아내는 남편이 문제가 있어 임신이 안 되는 것 같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관계할 때 남편이 사정을 못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미 검사는 다른 병원에서 다 해봤고 이상은 없다고 했다. 즉, 남편이 정액 채취가 되므로 혼자서 할 때는 사정이 된다는 거였다. 그러나 막상 중요한 순간엔 안 되니 아내로선 답답할 노릇이었다. 아내 생각엔 사정만 되면 자연 임신할 것 같은데, 그게 안 되니 인공수정을 상담하러 온 것이다.


모든 상담은 아내가 혼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남편의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모든 걸 대변하니 같이 온 남편의 목소리는 들을 수조차 없었다. 남편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그러져 조금만 더 있다간 의자에서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같은 수컷으로서 남 일 같지 않아 듣는 내내 내 마음이 아릿했다. 아내의 얘기가 끝나고 난 내 경험담을 말해주었다.


결혼 생활과 관련된 농담으로 남편이 아내가 씻는 걸 두려워하는 상황을 종종 묘사하곤 한다. 부부관계를 흔히 '의무 방어전'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남자들이 뭔가 보편적으로 공감하는 게 있으니 웃긴 건데, 한편으로는 자신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며 울적해지는 면도 있다. 남자가 30~40대가 되면 때로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 경우가 종종 발생하게 된다.


우리 부부는 평소 그다지 욕구가 없는 편이었다 (라고 나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늘 피로를 달고 살기도 하고. 난 아내 옆에 붙어 포근함을 느끼며 잠드는 게 마음이 안정되고 좋았다. 그런데 임신 시도를 하면서 약간 무리해서 '노력'을 해야 했다. 그래도 나름 스트레스 관리를 하면서 가임기에 집중적으로 관계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병원 근무 일정 때문에 쉽지 않았고 난 약간 쫓기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직 때문에 오늘 밤이 지나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 급히 관계를 시도했는데, 이런! 도저히 안 되는 것이었다. '오늘 못 하면 기회를 놓치게 되는데 어떡해'라는 생각으로 초조해지니 더 안 되고 미칠 노릇이었다. 내가 울상을 짓고 있으니, 아내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직이 말했다.


"괜찮아. 오늘은 어쩔 수 없는 날인 거지."


결국, 포기하고 누웠지만, 충격으로 잠이 오지 않았다. 내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 믿고 싶었는데, '결국 나도 여느 '나이 든' 남자들처럼 올 게 오고야 말았구나'라는 생각? '아니 될 것 같은데, 왜 안 되지?' 하던 내 모습이 뭔가 애처로움? 아내는 뭐라고 생각했을까? 실망했으면 어쩌지? 도움이 안 된다고 느꼈을까? 오늘 일로 다음에 '예기 불안'이 생기면 어떡하지? 아 나도 이제 비아그라 먹게 되는 건가? 전에 동창이 비아그라 먹는다고 했을 땐 농담인 줄 알았는데! 농담이 아니고 우리 나이가 그런 나이였어?


숨죽이고 누워 있었으나, 머릿속엔 여러 가지 생각이 어지러이 날아다녔다. 동공을 열고 어두컴컴한 천장이 내려오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두렵고 슬픈 생각이 두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날 밤은 엉뚱하게도 베개를 적시고 말았다.


아무튼, 그런 경험담 같은 걸 말해주면서 상담 부부 같은 경우가 종종 있는 일이므로 행여 남편이 자책하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격려해 주었다. 뭐 그래도 의학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신체적인 원인이 있으면 비뇨기과의 치료를 받고, 정신적인 원인이 있다면 정신건강의학과의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만, 나도 비슷하게 늙어가는 처지인지라 남편의 기운을 좀 북돋아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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