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불안한 인생 재미있게 살기로 했다.

by 손서율

일요일 저녁에 지인을 만나 사케 한잔 기울이며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강남에 있는 대형 성형외과 페이 닥터인데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그에게도 고충이 많았다.


밤 10시까지 수술 일정이 꽉 차있는 살인적인 스케줄에 주 6일 내내 좁은 수술실에서 종일 근무하며 본인의 몸을 혹사시켜 돈을 벌었다. 일주일에 하루뿐인 휴일은 밀린 집안일을 하거나 몸을 누이기 바빴다. 그러나 그의 이름으로 된 집은 아직 없고 무리해서 끌어 쓴 전세 대출을 상환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오직 주식만이 답이라면서 주식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내가 지금 그를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나처럼 전문직이 아닌 평범한 월급쟁이는 더욱이 불안한 인생이다. 바람에 후 불면 날아가는 작은 개미가 된 기분이었다. 이런 인생을 살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돌이켜 보면 10년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나는 잡지사 에디터가 되고 싶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이미 취업이 되어서 모 잡지사에서 인턴기자로 근무하였다. 퇴근시간은 곧 막차 시간이었다. 월급은 차비와 밥값을 겨우 해결할 수 있는 열정 페이였다. 종일 기사를 쓰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버스 안에서 내가 쓴 기사를 읽고 또 읽으며 수정했다.


"그땐 그게 너무 재밌어서 그랬다."


결국 난 열정 페이에 항복하고 내 꿈을 반납했다. 그리고 평범한 월급쟁이가 되어 돈을 벌기 위해 사무실에서 하루하루를 때웠다. 그렇게 살아도 특별히 부귀를 누린 것도 아니다. 매달 카드값 걱정에 내 집은 없고 불안한 건 똑같았다.


어떻게 살아도 불안한 인생, 재미마저 없는 건 억울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무실에서 몰래 글을 쓰기 시작했다. 때 되면 밥 나오고 아메리카노 무한 리필에 최신형 노트북, 넓은 데스크, 높은 파티션까지 집필 행위의 최적의 공간이 사무실이다. 요즘은 나만의 작업실이라 생각하며 신나게 출근한다.




재테크와 자식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그에게 뜬금없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고 했더니 그는 취미를 직업으로 삼게 되면 흥미를 잃게 된다고 했다.


아무렴 어떠한가 지금은 재미있지 않은가? 흥미를 잃는 날이 오면 그때 또 흥미로운 일을 찾으면 된다.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이 즐거운 행위가 어느 순간 밥벌이가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밥벌이가 되지 못한다면 고상한 취미 하나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어차피 불안한 인생

재미있게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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