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본질을 잃지 않는 현명한 "마음부자"가 되기로 했다.
서래마을에 멋진 테라스가 딸린 럭셔리한 저택을 소유한 과장님이 계셨다.
과장님의 아버지는 규모가 큰 중견기업의 사장님이었다. 그는 아버지 차를 모는 기사님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출근해서 팀원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과장님은 회식자리에 올 때마다 자신의 저택 테라스 사진을 보여주곤 했는데 몇 년 내내 보았던 똑같은 사진을 보며 우리는 항상 똑같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야 끝내준다~~~ 이런 데서 한번 살아보고 싶네"
이미 여러 번 봤던 사진이지만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머리를 모으고 그의 핸드폰 사진첩을 들여다보았는데 그럴 때마다 과장님의 입꼬리는 신이 나서 주체하지 못하고 씰룩 씰룩거렸다.
그러나 감탄하던 머리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면 과장님에 대한 뒷담화가 시작되곤 했다.
"그놈의 서래마을 집이라도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그러게나 말이야 돈 많아도 하는 짓이 찌질한데 하나도 안 부러워"
"집 없이 살아도 내 인생 살련다"
입사 초에는 과장님의 뒷담화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원인을 알아낼 수 있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이 돼서 남자 사원 둘과 점심을 먹으러 가고 있었다. 그날은 내가 쏘는 날이었는데 오랜만에 또래 사원들끼리 모인 자리라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그러나 얼마 못가 평화로운 점심시간의 여유는 깨져버렸다. 길에서 방황하고 있던 과장님을 마주치게 되었는데 점심 약속을 바람맞아서 혼자 밥을 먹게 되었으니 껴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다들 싫다는 소리를 차마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대다 어느새 식사 테이블에 함께 앉게 되었다.
반갑지 않은 과장님과 함께 있으니 내키지 않는 대화들로 기나긴 한 시간을 때워야 했는데.. 게다가 당황스러운 상황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계산할 때가 되니 과장님은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만 하는 게 아닌가? 지켜보던 남자 사원들이 당황해서 본인들이 낸다는 걸 말리고 내가 계산했다.
서래마을에 럭셔리한 저택을 소유하고 중견기업 사장 아버지를 둔 과장님은 일개 여사원의 코 묻은 돈으로 점심 식사를 때우고 그런 식으로 한 푼 두 푼 모아 해외여행을 자주 가셨다.
과장님의 특기는 앓는 소리였다.
이번 달에는 지출이 많아서 쪼들린다.
아이들한테 들어가는 돈이 너무 많다.
요즘은 커피값도 너무 비싸다. 등등
버튼을 누르면 자동 응답기처럼 앓는 소리가 나왔는데 그는 자신이 뱉어둔 앓는 소리들을 뒤돌아 서면 잊어버리는 건지 잦은 해외여행으로 두둑하게 쌓인 항공사 마일리지를 자랑하거나 자신의 멋진 테라스 사진을 보여주는 게 그의 삶의 낙이었다.
그가 팀을 떠나는 날 형식적으로 해야 하는 송별회는 팀원 모두에게 골칫거리가 되었다. 그 누구도 참석하고 싶지 않아 했기 때문이었다.
"네가 가면 안 되냐?"
"어휴 싫어요~ 차장님"
"다들 가위바위보 해 그럼"
부유한 삶을 누려도 마음이 가난해서 타인에게 베풀 줄 모르는 과장님 곁에는 남아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자신이 쓰지 못하는 물건조차 썩히는 한이 있더라도 남들과 나누지 못한다.
내가 봤던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 있었는데
한때 잠시 만났던 남자가 있었다. 그는 훤칠한 키와 반반한 얼굴에 직업도 변호사였다.
한여름의 어느 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께서 보내주신 포도가 집에 한가득 쌓여 있어 포도주스를 만드는 걸 도와 달라는 그의 부탁에 그의 집에 함께 들어섰다가 입이 떡 벌어졌다.
거실에 커다란 포도 박스 20개가 천장까지 쌓여있었는데 그 더운 여름날 포도를 실온에 방치하니 날파리 때가 시커멓게 몰려와 날아다녔다. 마치 날파리 양봉장 같았다.
"아니 이걸 어떻게 혼자 다 먹어? 옆집 사시는 분들이나 직장 동료분들께 나눠 드리지 그랬어..?"
"두 박스는 너 가져갈래? 나머지는 혼자 먹을 수 있어~ 정 못 먹으면 주스로 만들어서 먹지 뭐"
그 많은 포도를 남들과 나누기 싫었던 그는 커다란 곰탕용 솥 냄비를 가져오더니 포도를 넣고 짓이기며 끓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굵은 알이 빽빽하게 달린 커다란 포도송이들로 가득 찬 20박스의 포도 양은 어마어마했고 더운 날 하루 종일 불 앞에서 씨름해도 주스로 다 만들 수 없었다. 게다가 그의 집 냉장고는 사이즈가 작아서 주스로 만들어 병에 담아도 너무 많아 냉장고에 다 넣을 수 없었다.
"어휴 못하겠어 나 갈게"
"포도 두 박스 가져가"
"싫어 오빠 다 먹어"
날파리들을 헤치며 포도 지옥에서 탈출하니 살 것 같았다.
며칠 뒤 그에게 전화를 걸어 포도 20박스의 근황을 물어보니 절반 이상은 못 먹고 결국 버렸다고 했다. 싱싱한 포도였을 때 이웃들과 직장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맛있는 포도를 양껏 먹을 수 있었는데 그의 어리석은 욕심으로 인해 맛없는 포도주스로 가득 채운 냉장고와 주스로 차마 만들지 못한 포도들이 썩어가며 그의 집은 날파리 양봉장이 되었다.
이렇게 마음이 가난하면 가진 게 썩어 들어가도 남들에게 나눠주지 못한다.
가진 게 많아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고작 돈 몇 푼과 쓰지도 않는 물건 따위에도 벌벌 떤다.
마음은 내키지 않는데 어쩔 수 없이 베풀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끊임없이 머리로 셈하느라 안절부절못하며 행동이 부자연스럽다. 그들은 인간관계보다 당장 손에 쥐는 돈 몇 푼이 더 중요하다.
나는 이런 돈 많은 찌질이가 되기 싫다. 차라리 가진 게 덜해도 마음이 넓고 부유한 사람이 되고 싶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눠 먹으며 서로의 얼굴에서 드러나는 진실의 미간을 확인하고 "이거 진짜 맛있지 않아?"라며 함께 감탄하고 싶다.
또한 내가 가진 것들 중에서 여유 있는 부분은 간절하게 필요한 사람들에게 선뜻 내어 줄 수 있는
그런 부자의 마음을 가지고 싶다.
돈은 서로에게 진심을 표현하는 나눔의 수단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돈 벌기 위해 지구로 온 것이 아니라 서로를 사랑하기 위해 지구에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현명한 사람들만 내 곁에 두고 싶다.
이런 생각으로 살다 보니 내 주변에는 따스한 온기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