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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서율 Jun 29. 2023

라면 한 그릇 속의 철학

나를 괴롭게 만든 건 불은 라면이 아닌 나 자신이었다.


어젯밤에 유튜브로 라면 먹방을 보다가 라면이 너무 먹고 싶어졌다. 평소에 건강을 생각해서 자주 먹진 않는데 가끔 미친 듯이 땡길때가 있다.


라면은 웬만하면 밖에서 사 먹는다.

각종 파스타 조리법을 섭렵하고 한식까지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내가 라면을 직접 끓여 먹는 건 1년에 두세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가장 조리하기 쉬운 게 라면인데 굳이 나가서 사 먹는 이유는 이상하게 라면만큼은 남이 끓여주는 게 훨씬 맛있기 때문이다.


맛있는 라면을 먹기 위한 팁은 아무 분식집이나 들어가면 안 된다. 특히 피해야 할 곳은 각종 퓨전 메뉴가 즐비하고 인테리어가 깔끔한 분식집이다. 진짜 라면의 고수는 클래식 메뉴들만 고집하는 오래된 분식집에 상주하고 계신다.


다음날, 간판 불이 반쯤 나가있는 허름한 동네 분식집으로 향했다. 이곳이 나의 라면 전용 식당이다. 나는 이 집에서 근무하시는 아주머니들 중에 누가 라면의 고수인지 알고 있다.

빠글빠글하게 볶은 빠마 머리를 야무지게 쩜매고 두꺼운 금반지를 검지 손가락에 끼고 계신 아주머니가 이 구역의 라면 고수인데 이 분의 라면은 나만의 라면 미쉐린 기준 별 세 개짜리다.


이상하게 내가 끓일 때는 설명서의 정석대로 물을 계량하고 타이머로 시간까지 맞춰봐도 국물에서 무언가 2% 부족한 빈틈을 느낄 때가 많은데, 고수의 라면에서는 소금을 넣은 건지 미원을 넣은 건지 빈틈없이 꽉 차있는 맵짠의 향연은 "와... 미쳤다" 라는 탄식이 나올 정도다.


반쯤 녹아내린 슬라이스 치즈로 코팅된 꼬들하면서도 쫄깃 탱탱한 면발을 후루룩~ 면치기 하고 나서 끝내주는 국물을 들이켜면 단돈 4500원으로 극강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어서 오세요~"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아 벽에 붙어있는 메뉴판을 올려다보며 고민하는 척 시간을 끌었다. 라면의 고수가 홀에서 전화 주문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건 누가 냄비에 물을 올리느냐이다.


이윽고 라면의 고수는 전화를 끊더니 주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다급하게 주문을 했다.

"치즈라면 하나 주세요!"


그러자 홀에 앉아서 떡을 드시던 다른 아주머니가 라면의 고수에게 외쳤다.  

"언니~ 치즈라면 하나"


나의 바람대로 라면의 고수가 냄비에 물을 받아 올려놓았다. 라면이 가장 땡기는 최적의 타이밍에 고수가 끓여 낸 기가 막힌 라면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큼 행복한 게 있을까?  


그때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겼다. 홀에서 떡을 드시던 다른 아주머니가 라면의 고수에게 이렇게 외치는 게 아닌가...

"언니! 내가 할게~ 이리 나와서 인절미 좀 먹어봐 너무 맛있다!"  

"맛있어? 어디 한번 먹어보자"

"어 나와나와~ 내가 할게"


순식간에 어젯밤부터 고대해 온 나의 소중한 라면의 담당 요리사가 교체되었다. 안절부절못하며 주방을 주시하고 있는 내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아주머니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업소용 가스불에 라면 냄비를 무심하게 올려둔 채로 주방 밖으로 나와 이 인절미가 얼마나 끝내주는 인절미인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수다 삼매경이던 아주머니는 집에 켜둔 가스불이 생각나신 듯한 모션으로 황급히 주방에 들어가셨고 이윽고 내온 라면은 한눈에 봐도 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계란은 지저분하게 풀어져 있었고 면은 불어서 흐느적거렸으며 국물도 싱거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당장 배가 고프니 입으로 욱여넣을 수밖에.. 문제는 먹으면 먹을수록 기분이 나빠졌다.


'이건 내가 원했던 라면이 아니야'

'이랬으면 내가 끓이고 말지'

'아니 왜 이렇게 간을 못 맞췄데? 물 계량도 안 하나'

'꼬들면이 분식집 라면의 국룰 아니야?'

'나보다 못 끓이면 분식집 하면 안 되지'


그렇게 갖은 짜증이 뒤범벅된 라면을 꾸역꾸역 입에 욱여넣고는 냉수 한 잔 떠와서 마시다가 불현듯 이 불쾌함의 원인은 라면이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제의 본질은 라면 한 그릇 속에 있는 게 아니었다. 세상만사 모든 게 내 입맛에 딱 맞아야 한다는 나의 강박에 있었다. 사실 아주머니가 내온 라면은 앞전에 묘사한 것처럼 형편없지 않았다. 그냥 보통의 평범한 라면일 뿐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나만의 미쉐린 라면이 존재했고 그게 곧 정답이었다. 내가 만들어 놓았던 기준과 맞지 않으니 남들은 기분 좋게 먹고 일어날 수도 있었던 평범한 라면 한 그릇이 불쾌해진 것이다.


"사람은 원하는 게 생기면 예민해져요"

문득 어느 작가의 강연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의 말대로 사람은 원하는 게 생기면 몹시 예민해진다. 나는 매사 호불호가 명확하고 원하는 게 뚜렷한 사람이었는데 그건 비단 라면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언제나 합리적인 조직이어야만 했고, 내가 사는 공간은 깨끗하고 안전한 공간이어야만 했다. 내가 맺는 계약은 매사에 확실한 사람들끼리만 이루어져야 했으며, 내가 곁에 두는 지인들은 자존감이 높고 마인드가 건강한 사람들이어야만 했고, 내가 만나는 남자는 비겁함은 찾아볼 수 없는 남자답고 강단 있는 사람이어야만 했다.


나는 내 인생의 모든 분야에 정답을 만들어 놓고, 그에 어긋나면 매번 스트레스를 받았다. 심지어 옆머리를 살짝 커트하거나, 아주 간단한 피부 시술마저도 담당 헤어디자이너, 담당 피부과 의사가 아닌 사람에게 전혀 맡기지 못했다. 나에게는 이미 완벽한 결과물에 대한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가장 근접하게 뽑아낼 수 있는 최적의 사람들만 곁에 두고 있던 것이다. 그게 결국 4500원짜리 치즈라면 한 그릇에도 적용되었다.  


간판 불이 반쯤 나가있는 분식집에 들어가서

"오늘 12:30분에 뽀글 머리 담당 셰프님 앞으로 치즈라면 하나 예약한 손서율인데요 저번과 같은 국물의 염도와 면의 익힘으로 부탁드립니다" 라고 주문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상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게다가 그 흔한 라면 한 그릇을 먹어도 "와.. 미쳤다" 라는 감탄을 해야 하다니 그동안 얼마나 피곤한 인생을 살아왔는지 통감했다.


나의 친구 고서연이는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너처럼 악착같은 사람들은 결국 원하는 걸 이루어내더라"


고서연이 말대로 내 입맛에 꼭 맞는 걸 손에 넣기 위해서 나는 악착같이 산다. 어중간하고 애매한 기쁨으로는 도통 성에 차지 않았고, 얻는 순간 뛸 듯이 기쁘게 만들어 주는 나만의 정답에 완벽하게 부합해야만 비로소 만족이 되었다.


그 만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착같이 노력하다 보면 셀 수 없이 많은 시도 끝에 한두 개가 얻어걸리면서 성과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 잠깐의 환희에 중독될수록 점점 더 완벽에 대한 집착은 심해진다.


문제는 원하는 게 간절해질수록 감당해야 할 실망은 무수히 늘어난다는 것이다. 세상만사가 내 입맛대로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정작 세상은 라면 한 그릇조차 내 입맛에 맞추기 힘들었다.


결국 행복의 해답은 내 마음속에 있었다.


'나를 괴롭게 만든 건

불은 라면이 아닌, 나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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