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어른이 운영하는 이상한 가게
"아~ 귀찮아! 바닥 닦지 말라고!! 내버려 두라니까?"
사장님은 온갖 짜증을 부리며 의자 위로 다리를 올렸다. 그의 둔탁한 무게를 감당하기 힘든 의자가 위태롭게 휘청거린다.
"어휴~ 사장님! 바닥에 떨어진 술 안 닦으면 끈적거려요! 나오세요"
아르바이트가 청소하겠다는데 귀찮다고 짜증내는 사장님이라니.. 놀랍지만 실화다.
2008년, 21살 파릇파릇한 대학생이었을 때다. 한참 부족한 용돈에 허덕이던 나는 주말 알바를 구하기 위해 구인 사이트를 뒤적이다가 더럽게 성의 없는 공고를 발견했다.
<알바 구함>
외국인 bar, 칵테일 제조, 그 외 간단한 청소, 다른 업무 없음
"발로 써도 이거보다 길게 쓰겠네"
워낙 내용이 없어 혹여나 이상한 곳이 아닌가 의심이 되었지만 비교적 소박한 시급을 보니 그럴 리는 없을 것 같았다.
면접을 보기 위해 가게 앞에 도착했는데 막상 검은색 시트지로 도배되어 있는 다크한 외관을 보니 선뜻 문을 열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였다.
"뭐야 이상한데 아니야? 들어가기 좀 무서운데..."
심호흡을 하고 언제 망설였냐는 듯 당차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부영화에서나 보던 컨트리바 같이 허름한 곳이었다. 벽에는 나름 인테리어 용도라고 추정되는 하키 유니폼과 낡은 다트판 위로 촌스러운 전구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면접 보신다고.. 좀 전에 통화했었던.."
"아~ 예 여기 앉으세요"
가게 분위기만 보면 화려한 자수로 수놓인 웨스턴 부츠와 카우보이 모자를 쓴 장발의 남자가 사장님일 것 같았는데 의외로 회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야근에 찌든 듯한 차장급 정도 느낌의 배 나오고 안경 쓴 아저씨가 사장님이셨다.
사장님은 세상만사 귀찮다는 표정으로 내 이름과 나이만 듣고 바로 채용하셨다.
"이번 주 금요일부터 출근하세요"
"네? 아...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첫 출근을 하던 날, 면접을 보느라 경황이 없어 제대로 보지 못했던 가게 인테리어를 다시 마주하니 생각보다 더 참담했다.
"어휴 이 촌스러운 조명은 뭐람.. 아이스하키 유니폼은 대체 왜 걸어 둔 거야.. 캐네디언 전용 바인가?" 가게를 둘러보며 고개를 절레절레하는데 뒤에서 소리도 없이 다가온 사장님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경기를 일으켰다.
"으악 깜짝이야!! 앗 죄송해요.. 뭐부터 하면 될까요?"
"그냥 앉아있어"
사장님은 바 의자를 하나 가져와 건네더니 그냥 앉아있으라고 했다. [그냥 앉아서 멍 때리기] 이게 내 첫 임무였다.
"여기 있는 술은 근무 중에 언제든지 마셔도 돼~ 뭐 마실래?"
첫 출근부터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리며 앉아있는 와중에 꽁짜 술 무한리필 직원 복지를 들으니 어안이 벙벙했다. 나열되어 있는 술 중에 달달한 베일리스 밀크가 땡겼지만 9시가 되도록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아 눈치껏 값싼 생맥주를 따라놓고 홀짝거렸다.
"뭐야? 대체 나를 왜 쓰는 거야? 이런데 손님이 오긴 오나..?" 마음이 불편해서 몇 시간 내내 눈치를 보고 있자니 가재미눈이 될 것 같았다. 내가 걱정하던 말던 사장님은 혼자 맘 편하게 부른 배를 두드리며 빔프로젝터에 좋아하는 뮤비를 틀어놓고 흥얼거렸다.
10시가 되어서야 기적 같은 문소리와 함께 외국인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들 여기 단골인 건지 내가 뉴페이스인 걸 단번에 알아보곤 외쿡 리액션으로 인사를 건넸다.
대부분 근처 학원가에서 일하는 원어민 강사였다. 그들이 나에게 질문해봤자 이름 정도 묻겠거니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디테일한 질문 공격으로 영어 울렁증을 유발했다.
"나이가 몇 살이니?"
"대학생이니?"
"전공이 뭐니?"
"그 전공을 선택한 이유는 뭐니?"
"남자 친구는 있니?"
"여기서 어떻게 일하게 됐니?"
아니.. 외국인들은 남에게 관심도 없고 나이도 안 궁금해 한데며.. 누가 그런 소릴 한 거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 어택으로 갑자기 분위기 영어 듣기 평가였다.
내가 당황해서 어버버 하자 보다 못한 사장님이 통역으로 나섰는데 아까까지만 해도 세상만사 귀찮다는 표정으로 술만 들이키던 분의 입에서 유창한 영어가 술술 나왔다. 만사가 귀찮으신 분이 영어공부는 어떻게 한 건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통역을 하던 사장님은 갑자기 흥에 겨우신지 위스키를 꺼내와 연거푸 들이켰다. 그리고 얼마 뒤 스르르 일어나 바 밖으로 나가시더니 홀 테이블 소파에 누워 자리를 잡고 숙면을 취하시는 게 아닌가? 오늘 아르바이트 첫 출근인 나에게 가게를 통째로 맡기시고는 아주 편안하게 꿈나라로 떠나셨다.
레시피도 모르는 칵테일 주문이 들어와 어쩔 줄 몰라하는데 한쪽에서는 또 계산을 하겠다고 카운터에 서있고 이런 혼돈 속에서 모든 손님들이 나에게 영어로 이야기하니 미치고 팔딱 뛰겠는데 사장님은 대짜로 뻗어 코를 골고 있다. 음악이 꽤 시끄러운데도 포크레인이 온 건지 사장님 코 고는 소리는 음악소리에 결코 밀리지 않았다.
모르는 레시피의 칵테일은 맥주나 두 가지만 섞으면 되는 easy 칵테일로 모두 변경하여 주문을 받고 여차저차 마지막 팀 계산까지 해낼 동안 사장님의 진격의 포크레인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웃긴 건 손님들 모두 익숙한 일이라는 듯 신경도 안 쓰고 사장님 코 고는 소리를 BGM처럼 들으며 자연스럽게 술을 마시고 있다.
겨우겨우 마감을 끝내고 나서 사장님을 흔들어 깨웠지만 도통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가게 문을 잠그고 나가야 하는데 가게 키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한참을 뒤져봐도 찾을 수 없었다.
"사장님?? 사장님!! 일어나 보세요 마감 다 끝났어요 문 잠가야 하는데 키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아 좀... 졸려 죽겠네 그냥 가"
결국 첫 출근부터 만취한 사장님이 널브러져 있는 가게 문을 잠그지도 못한 채 사장님을 버리고(?) 퇴근했다.
이주 차 출근하고 나서야 사장님이 날 고용한 이유를 깨달았는데 본인이 근무시간에 술을 진탕 먹고 자기 위해서였다. 1시쯤 되면 스르르 나가 테이블 소파에 눕는 게 그의 패턴이었다.
문제는 사장님이 꿈나라로 떠나면 가게는 무법지대가 되었다. 가게를 지키는 건 쪼매난 동양인 여자애 한 명뿐이니 얼마나 만만했을까? 유교문화에 스쳐본 적도 없는 자유로운 서양인들의 취중 똘끼는 상상을 초월했다.
바 안으로 무단 침입해서 본인이 설거지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인간, 자기가 무슨 코요테 어글리인양 바 위로 올라가서 춤을 추는 인간, 다트 핀으로 서로 맞추겠다고 집어던지는 인간들..
그중에서 가장 베스트 오브 베스트 원탑 똘끼는 가게 밖으로 나가 50미터가량 떨어져 있는 화장실에 걸려있는 두루마리 휴지를 머리에 두르고 한 번도 끊기지 않게 조심조심 이어서 가게까지 들어온 인간이었다. 그는 자랑스럽게 자신의 대머리에 둘러진 두루마리 휴지로 만들어낸 50미터 거리의 길을 보여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캐나다인으로 기억함 / 진짜 찐이다 이놈은)
이렇게 자유분방한 똘끼를 가진 외쿡인들도 사장님이 깨어있는 시간에는 순한 양이 되어 얌전히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홀짝거릴 뿐이었는데 사장님이 처음으로 화를 내시던 날.. 보고 바로 이해했다.
그날은 여느 때와 같이 포크레인이 된 사장님은 소파에 누워 코를 골고 있었고 가게는 무법지대가 되어 다들 바에 들어와 춤을 추고 있었는데 그날은 웬일인지 사장님이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셨다.
"게라웃!!!!!!!!!(나가!!!!!!!!)" 화통을 삶아 드셨는지 그렇게 큰 목청은 난생처음 들어보았다. 다들 빛의 속도로 후다다닥 뛰어나가 자기 자리로 돌아갔는데 이 또한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난생처음 해보는 이상한 아르바이트였지만 몇 달간 일을 하다 보니 차차 익숙해졌고 설거지 주사를 부리는 손님에게 접시를 깨지 않고 설거지하는 방법을 가르쳐서 일손을 보태는 경지에 이르렀다.
일이 익숙해지고 여유가 생기자 슬슬 사장님이 걱정되었다. 외국인들을 상대로 술장사를 하는 건 마진이 거의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야 음주가무의 민족답게 앉은자리에서 맥주 몇천cc는 우습게 마시지만 외국인들은 500cc짜리 생맥주 한 잔을 시켜서 몇 시간 내내 들고 다니면서 수다를 떨었다.
맥주가 아니래도 럼콕, 진토닉 같은 easy칵테일은 한 잔에 몇천 원 밖에 하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월급을 주느라 가게 세를 못 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되는 마음에 사장님에게 종종 잔소리를 했지만 사장님은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매번 귀찮다는 소리만 하셨다.
"사장님, 안주로 간단한 나쵸 같은 거라도 팔아보는 건 어때요?"
"아 귀찮아! 싫어!! 술만 팔 거야"
"나쵸가 뭐가 귀찮아요!! 접시에 담아서 소스만 내주면 되는데"
"아!! 진짜 싫어!!! 안주는 알아서 사 와서 먹으라 그래"
결국 나도 사장님을 포기했고 매번 술 먹고 뻗어있는 사장님을 버리고(?) 몇 달 동안 나 혼자 먼저 퇴근을 해왔는데 어느 날 웬일로 사장님이 오늘은 잠들지 않을 테니 끝나고 회식을 하자고 하셨다.
그날 약속대로 사장님은 술을 절제하셨고 멀쩡하게 함께 퇴근해서 회식을 갔다. 회식이라고 해봤자 조촐하게 오뎅바에 가서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게 전부였다.
그때 처음으로 사장님의 사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는 외국에서 잠깐 살았던 이력이 있고 몇 년 전에 이혼을 했으며 아내가 양육권을 가져가서 지금은 오롯이 혼자 지내고 있다고 했다.
21살이었던 내 눈에 비친 사장님은 신기한 어른이었다. 보통의 어른들처럼 어른스러운 면이 전혀 없었다.
귀찮으면 때려치우고, 졸리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마치 본능에 충실한 어린아이와 같았는데 그때는 나 또한 너무 어려서 그런 사장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13년이나 지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사장님은 그때 마음이 많이 아팠던 것 같다. 이혼으로 가족들을 모두 잃은 슬픔은 그를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점점 숨통을 조여오는 우울함에서 해방되는 방법은 술의 힘을 빌려 잠을 청하는 방법뿐이었겠지..
13년 전 겨울, 창문에 잔뜩 김이 서린 오뎅바에서 나는 사장님의 술잔에 소주를 기울이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사장님, 안주로 나쵸나 땅콩이라도 좀 팔아봐요 제가 다 할게요"
"사장님, 주무시지 좀 마세요!! 사장님 주무시면 혼자 하기 바빠서 단가 안 나오는 맥주랑 간단한 칵테일 밖에 못 판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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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지금의 내가 그 겨울 오뎅바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대신 그의 술잔에 소주를 기울이며 이런 이야기를 할 것 같다.
"사장님, 많이 힘드셨죠? 그동안 몰라줘서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