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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무스 Jul 28. 2023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서』<1>

프롤로그

프롤로그


   이 책의 목적은 내면적인 접근을 통해서 회복된 삶에 조금 더 다가서는 것이다. 이런 저자의 의도가 윤리적으로 충분히 정당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애초에 회복되고자 시도하지 않은 사람이 있기나 할까? 사실 사람들은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삶을 더 나은 무언가가 되도록 늘 애써오지 않았던가? 마치 우리가 환부가 덧나지 않도록 더디게 걷고, 완치를 목적으로 병원을 찾고, 또 환부의 재발을 막기 위해 운동을 하듯이 말이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인간은 늘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다고. 최선까지는 아니더라도 각자의 속도에 맞는 회복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의 말은 옳다. 우리는 잘하고 있다. 그 누구도 대신 져주지 않는 삶을 어떻게든 짊어지고 살다 보면, 실제로 우리에게 전혀 불필요했던 그런 과거란 하나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많다. 

   그렇지만 내가 이 책의 독자들에게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이런 맥락과 약간 차이가 있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처럼 전혀 다르다. 이 책은 혼자의 힘만으로는 절대로 풀 수 없는, 아니 오히려 방치할수록 우리의 삶을 더욱 조여들어 놓아주지 않는 어떤 마음의 덫과 매듭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이 풀리지 않는 매듭을 당신과 함께 풀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 종종 사람들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동안 혼자이고 싶어지다가, 또 혼자 남게 되면 금세 누군가와 함께이고 싶다는 마음의 ‘모순’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다. 한편 때때로 어떤 사람에게 이끌려 내가 먼저 구애를 했다가도, 막상 상대방이 나에게 빠져들고 또 어떤 기대를 요구받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마음이 식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이처럼 반복되는 관계와 그것이 주는 내비칠 수 없는 피로감은 그의 내면 아이가 뼈저리게 혼자임을, 또 당사자가 이미 마음을 잃어버렸음을 지시해주는 매우 분명한 증거다. 그러나 당사자의 분열된 마음 안에서는 이런 과정이 일상적으로 ‘자연스럽게’ 통합된다. 그래서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이런 마음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시시하고 고리타분한 주제가 아니라 아주 어렵고도 중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노력해도 좀처럼 손에 닿지 않는 어떤 마음의 회복, 특히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의 ‘최선’만으로는 절대로 닿을 수 없는 그런 치유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진정 새롭게 시작하고 또 존엄한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면 언젠가는 스스로 엮은 마음의 닻을 풀고 영혼에 박힌 가시를 빼내야 한다. 진정한 회복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우리의 내면은 강한 갈등을 일으킨다. 동요하는 영혼은 아직 익숙하지 않은 어떤 변화와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이와 같은 동요가 조금도 없는 마음의 평화란 단지 우리의 여러 삶의 단계들 가운데 어떤 소강상태,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깨지 않고 싶은 그런 일시적 균형이자 유예된 평온함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의 나에게도 적용되는 말이지만,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되찾는 여정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 아예 ‘마음’이나 ‘영혼’ 같은 단어를 사이비적인 표현으로 일축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물론 이상한 일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처한 상황이나 관계에서 어떤 형태로든 자기방식의 우위를 점하지 않으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비록 그가 고수해온 태도가 그의 삶 전반에서 어떤 부조리한 고통을 계속해서 감내하게끔 만든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대개 우리가 나름대로 ‘잘 해왔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통제하고 싶어한다. 시니컬한 영리함을 가졌거나 혹은 ‘어른스러운’ 독립심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오히려 번아웃, 우울감, 환멸감 등으로 고통받는 사례가 잦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억지로 지탱된 삶의 과정에서 비어버린 마음은 이내 여러 형태의 반복되는 욕망들로 대체되기 마련이다.

   이 책을 믿어보고 싶은 독자라면 정신의 자립을 강조하는 여러 철학서, 종교적인 지침서, 또는 심리학적인 저술들이 설파하는 신념은 잊어도 좋다. 솔직히 나는 그것들 대부분이 무책임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어째서 그런지는 읽는 동안에 점점 분명해질 것이다. 텅 비어버린 ‘자유’보다 우리의 삶에 더욱 필요한 것은 이미 가뭄처럼 트고 갈라진 우리의 영혼이 사랑으로 해갈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우리는 도움이 필요하다. 언뜻 쉬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그 진실을 인정하는 것이 여정의 진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어쩌면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에는 준비가 부족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어리기도 하고, 또 잃어버린 무엇을 되찾기 위해 이리저리 흘러 다니는 그런 방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곁에서 함께해주는 사람의 권유로 집필을 다짐하게 되었다. 미흡한 생각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는 일에 가치가 있으리라고 믿고 응원해준 연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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