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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무스 Jul 28. 2023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서』 제1부 <2>

1장. 현대인의 마음과 버거운 삶

(1) '나', 의미의 바다를 건너는 작은 뗏목


   1부에서는 먼저 우리의 성장 일반에 관한 기록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보고자 한다. 거기서 우리는 내가 ‘나’로 믿어왔던 것이 실제로는 어떻게 스스로의 마음에 족쇄를 채웠는지, 또 나를 둘러싼 타인들과 사회적 메세지를 쉽게 수용하는 일이 어째서 위험한지 자각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사는 게 멋진 인생인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동시대의 미덕이다. 과학기술로 인해 세계와 우주의 신비들은 파헤쳐졌고, 과거처럼 원시적 풍습이나 국가종교를 믿을 필요도 없다. 신분이나 직업적 숙명이 미리 정해져 있지도 않고, 외나무다리에서 장렬히 맞서 싸워야 할 원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일들의 가짓수는 이미 엄청나다. 그 선택의 다양성에는 공급 가능한 어떤 잠재적인 가능성과 여기에 대한 수요도 당연히 포함된다.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그런 정보와 지식 역시 무한하다. 시청률이 50%에 육박하는 프로그램이나 컨텐츠 채널, 미디어 플랫폼도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주의’ 내지 ‘MZ세대’ 같은 단어는 촌스럽게 느껴진다. 계획경제는 그것이 나름대로 가질 수 있는 장점과는 별개로 그 자신의 명확한 한계를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러저러하게 살아야만 한다’고, 또는 그런 ‘상식적인’ 방식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살 것이냐고 힐난하는 사람들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성장해왔다. 가족, 친구, 이성, 선생님은 물론이고 우리가 장기간 노출되는 교육 및 시청각 이미지들, 시사적인 이슈들, 조직문화들, 그리고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여러 전문분야 등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어떤 삶의 방향들을 직간접적으로 제시해온 셈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를 때, 우리를 둘러싼 타인들이 형성하는 말과 욕망은 우리의 목표설정에서 일차적인 동력원이 된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 존재가 타인에게 관여하는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혹은 내가 그들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고 있는가에 있어서 극도로 민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불안하다. 우리는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시의적절한’ 그 어떤 존재라도 되어가야만 한다고 느낀다. 그래서 우리는 없는 의미를 발명하기에 이른다. 설령 그것이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자기효능과 자기정체성을 확인해주는 것이라면 무슨 지푸라기든 혼신의 힘을 다해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상한 결합이지 않은가. 현대에 이르러서야 개인의 자유를 옥죄던 부당한 목적들이 겨우 사라졌는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발명된 임의의 목적들이 삶의 중요한 추동력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시대상을 토대로 현대인이 자유로부터 도피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을 펼 생각은 없다. 내가 볼 때 오늘날 몇몇 비판가들의 ‘인간은 자유를 두려워한다’는 발언은 그다지 적절한 용어선택이 아니다. 우리가 실제로 두려워하는 것, 그리하여 우리가 마음을 잃게끔 만드는 주요한 실체는 자유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이다(이때 시간은 분절, 측정된 통상적인 시간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달리 말해 시간을 두려워한다는 원인으로 인해서 의미에 관한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은 곧 부자유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스스로를 옭아매는 이 결과적 부자유의 다른 이름은 욕망이다.

   그렇다면 흐르는 시간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를테면 그 공포는 우리가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어떤 느낌, 사람 또는 세상과 진정으로 맞닿고 싶다는 극심한 결핍감, 우리로 하여금 어떤 대상을 혐오하게 만들거나 혹은 절실히 욕망하게 만드는 느낌 따위를 자극하는 그 무엇이다. 먼저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비용효율적인 교육은 항상 어떤 심리적인 권위효과에 의존하고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때 권위의 역할이란 따르지 않으면 뭔가 큰일이 날 것처럼 구는 것, 그리고 그 배후에 대단히 진지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구는 것이다. 사람은 탄생부터 사회적이다. 왜냐하면 인간 유아는 다른 어떤 포유류보다도 주변의 도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타인들로부터 압박을 받으면 우리는 곧잘 ‘미래는 언제든 나를 배반할 수 있다’는 염려를 품게 된다.

   우리가 지켜야 했던 것들을 한 번 돌아보자. 거기에는 부모님이 가정에서 부여한 기초적인 규칙들부터 시작해서 개인적인 시간 및 공간 관리법, 나와 타인의 신체를 대하는 법(몸가짐, 말투, 청결도, 꾸미기, 시선 처리 등), 능률적인 학습법, 웃어른을 대하는 예절, 취미 및 종교생활과 문화적인 에티켓 등 개인마다 편차가 있는 모든 습관화 과정이 포함된다. 최초의 사회적 권위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겁을 주었다. ‘너는 뭔가 잘못하고 있어’, ‘그런 식으로는 사랑받을 수 없어’, ‘네 미래는 이제 곤란해 질 거야’, ‘너는 특별하거나 주목받는 사람이 될 수 없어’.

   이런 생각이 반(反)문화적인 태도를 조장한다고 오해할 필요는 없다. 내가 강조하려는 점은 세상 또는 세상의 ‘근거 있는’ 평가가 우리의 믿음에 비해 실제로는 훨씬 더 맹목적이고, 주먹구구식이며, 순전한 자기지탱의 목적으로 조성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세상이 무언가를 확고하게 믿고 또 그에 따른 정교한 주장을 펼치는 데는 분명 나름대로 어떤 투명한 이유가 있으리라고 추측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려서부터 저 외부 세계의 의미, 그것과 교섭하는 방법, 그에 따른 알 수 없는 책임과 신뢰관계 따위를 타인에게 의탁하는 방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능력 있는 타인(이를테면, 부모님)은 나를 대신해서 시간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그리고 저 타인들과 단절되지 않으려면 나는 이러저러하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타인에 대해 행동화된 기억은 미래와 관련된 우리의 불안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점점 더 우리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직접 나를 인식하는 것이 아닌, 내가 세상에 대해 행동하는 역할수행 속에서 나의 정체성과 가치를 확인하기 시작한다.

   간단한 사례를 들어 설명해보자. 외동딸이 하나 있는 어떤 어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평소 정갈한 몸가짐, 청결한 위생, 과하지 않은 식사량, 틈틈이 하는 독서 따위를 대단히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모습에 푹 빠져서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이 거의 평생에 걸쳐 고수해 온 청교도적인 생활습관을 어린 딸이 지키지 않을 때마다 틈틈이 충고를 해왔다. 아버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옆에서 한 번씩 거들곤 했다. 두 사람의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자라나는 딸은 ‘상식’과 ‘교양’에서 종종 어긋났지만, 그런 가르침을 결코 강요할 수는 없었다고 믿는다. 그들은 딸의 개인적인 성향을 ‘자율’에 맡겼다. 왜냐하면 자식이란 어차피 바라는 대로만 클 수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한편 딸은 집에서 항시 요구받는 뻣뻣한 규칙들이 갑갑하다고 느낀다. 그녀는 어느 정도는 그것을 따르는 양 굴어야만 집안에서 큰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득하게 된다. 부모와의 표면적인 갈등이 줄어드는 동안 서로 간의 관계는 조금씩 소원해진다. 나는 비밀이 많아지고, 점차 정신적으로 독립해나간다. 그런데 성년이 되면서 그녀는 주변 사람들이 대체로 품위 없이 행동한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비록 자신의 부모님이 유난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상당수 사람들의 경우 그 천박한 정도가 심하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성장하면서 사람들과 자연히 거리를 둔다. 학교생활이나 SNS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내게 친숙한 ‘최소한의’ 습관을 지탱하면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이야말로 ‘나’를 구성해주는 것이다. 동시에 나는 종종 내가 모순적인 존재라는 느낌을 받는다. 마음 한 켠에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것이 남아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다만 미래에 관한 막연한 염려와 모종의 흥밋거리를 좇아 부단히 살아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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