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앤지 Sep 22. 2021

프롤로그

어느 '과몰입 인간'의 고백

나는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기가 어렵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나는 드라마를 보다 인물들이 어려움에 처하거나 오해를 받게 되면 그것이 해결될 때까지 신경이 쓰이고, 해결되고 나서도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갔겠지'하고 다양한 생각을  보게 된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여운이 오래가는 편으로, 영화 안에서는 비교적 짧게 다루어진 조연이나 엑스트라의 삶의  이야기를 상상해 보면서 이렇게 살았겠지, 그런 성장 배경을 가져서 그랬구나, 하고 혼자 납득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혼자 하는 '공상 놀이' 내지는 '내용을 소화하는 과정' 셈이다.

어렸을 때는 이런 공상 놀이가 대체로 즐거웠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러는 것이 시간과 감정의 낭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인물에 감정을 이입해 버린 경우에는 이러한 공상이 버겁기까지도 하기 때문에, 애초에 드라마나 영화에 잘 손을 대지 않는 편이다.


대신 어쩌다 빠지게 된 것은 몇 번이고 보고, 처음 봤을 때는 그냥 넘어갔던 디테일을 찾아보기도 한다. 내용이 잊힐 때쯤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을 하는 것도 좋아하고, 일부 장면들을 돌려 보면서 인물의 대사나 행동으로 '그는 어떤 사람인가', '왜 이런 선택을 했나'를 해석해 보기도 한다.

내가 빠진 콘텐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시각이 궁금해서 유*브나 네*버 블로그에 올라오는 분석을 보기도 하지만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콘텐츠 곳곳에 제작진이 심어놓은 배경이나 소품의 의미에 대한 분석이라기보다는 어떤 '인물'에 대한 해석, 특히 인물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과 소품이 암시하는 바가 이러하므로 앞으로 이야기가 이렇게 될 것이다'가 아니라, '그는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런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라는 쪽을 좋아하는 것이다. 극 중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는 이런 삶을 살았겠지, 이런 인생도 있었겠구나, 하는.

소설이나 만화책을 볼 때도 마찬가지여서, 한 번 읽은 작품을 몇 번씩 다시 읽는 것을 좋아하고 작품 내에서 비중이 적은 인물에까지 감정 이입을 하고 여러 가지로 해석해 보곤 한다.

이런 탓에 소위 '오타쿠'가 아니냐는 말도 가끔 듣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콘텐츠 속의 배경이나 소품이 의미하는 바에는 대체로 무신경한지라, 진정한 '오타쿠' 분들께 비할 바는 아니고 나는 그저 '과몰입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이 과몰입 인간의 지극히 주관적인 콘텐츠 감상기를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중요한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