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내가 이곳 텍사스에 온 2018년 5월 무렵은 <블랙팬서>가 개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태권도장에서 만난 한인 언니 한 분과 아이들을 데리고 수영장에 갔는데,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흑인 아이들이 '와칸다 포에버'를 외치며 놀고 있었다. 언니의 아들은 고등학생이었는데, 언니 말씀을 들으니 고등학교는 더 난리였다고 한다. 여기 고등학생이면 키가 어지간한 한국 어른보다 큰데, 그러니까 덩치가 산만 한 아이들이 영화에 빠져 사방에서 '와칸다 포에버'를 외치고 다니니까 그게 너무 이상하고 귀엽고 우스웠다고. 나도 <블랙팬서>를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흑인' 히어로로 인종 하나 달라진 것이 그렇게까지 좋을 일인가, 하고 생각했었다.
나중에 마블 최초의 단독 '여성' 히어로 영화인 <캡틴 마블>을 보고, 쉽게 감정 이입할 수 있는 공통점을 가진 히어로가 주는 다소 유치하기까지 한 기쁨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알게 되기는 했지만, 그때까지도 내가 '아시안' 히어로를 필요로 할 줄은 몰랐었다.
최근 개봉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하 <샹치>)을 보면서 나에게 ‘아시안’이라는 정체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종 하나 달라진 것이 그렇게까지 좋을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는 중이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나 아시안 히어로 좋아했네. 인종적 동질감 나한테 중요했었네."
라고나 할까.
<샹치>의 주인공인 샹치와 케이티는 중국계 미국인들이다. 케이티는 중국어를 잘하지 못하고 인물들이 모두 영어에 능숙하다는 설정이지만, 극 중간중간 중국어로 된 대사가 등장한다. 특히 시작되자마자 약 10분도 넘게 중국어로 내레이션이 진행되며 영어로 자막이 깔린다.
아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영어권 화자들은 '자막'을 상상 이상으로 싫어한다. 누가 그랬던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바로 권력'이라고. 영어로 만들어지는 수많은 콘텐츠들이 그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어느 나라를 가든 그들은 당연하게 "영어로 된 안내지는요?", "여기 영어 하는 사람 없나요?"를 묻고 요구한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세상, 영어가 제1언어가 아닌 세상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물론 실제로 거의 없다는 점에서 더 약이 오르지만.)
중국어를 모르기는 나도 매한가지이므로 결국 나도 영어 자막을 보고 내용을 이해했지만, 나와 이 영화관에 있는 다른 이들의 이해의 깊이와 속도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만으로도 약간 통쾌함이랄까, 우월감까지는 아니고 '덜 열등한 기분'이 든 나는 다소 찌질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샹치>의 주인공들이 못 생겼다, 혹은 너무 평범하게 생겼다고 하기도 한다.
안와가 깊지 않은 눈에 동그랗고 넓은 얼굴을 가진 샹치와 케이티는 전형적인 '미남미녀’는 아니다. 하지만 "왜 하필 아시안 히어로로 미남미녀가 아닌 배우를 쓴 거냐”, 심지어 “아시안은 못 생겼다 이거냐”로 결론이 점프하기 전에, 요즘 미의 기준 자체가 '서구적'인 얼굴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소수자를 중심에 세우는 것은 언제나 처음에는 어렵다. 그간 충족되지 못한 다양한 기대가 한꺼번에 충족되기를 원하며 쏟아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눈이 작고 넓은 얼굴이라 아쉽다는 말을 듣고 있지만, 반대였다면 ‘일반적인 아시안의 외모가 아닌 서양인 기준의 미남미녀를 데려다 놨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을지 모른다.
보다 중요한 것은 <샹치>의 주조연급 출연진의 99%가 아시안이라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다르게 생겼다. 중국과 마카오, 그리고 고대 문명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특성상 중국계가 대부분이긴 하나 나는 노인 아시안, 중년 아시안, 젊은 아시안, 잘생긴 아시안, 못생긴 아시안, 날씬한 아시안, 풍채 좋은 아시안이 한 영화에 다 나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극 전체에서 소수 집단 출신인 캐릭터가 한두 명일 때, 그의 외모와 행동은 그 집단을 뭉뚱그려 대표하는 것이 되고 스테레오 타입 이외의 것을 담아내기 어려워지지만, 이렇게 ‘떼’로 나오면 그럴 가능성이 낮아진다.
일부러 무례하고자 한 건 아니었을지라도 그동안 나를 중국인이나 일본인, 아무튼 내가 보기엔 하나도 안 닮은 다른 사람과 엄청 헷갈려하던 사람들도 이런 영화가 많아지면, 눈동자와 머리 색깔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도 사람을 구분하는 방법을 익히려나,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케이티의 집에 들어갈 때 샹치는 신발을 얌전히 벗고 들어간다. 1초 남짓으로 휙 지나간 이 장면에서 나는 얼마나 속이 시원했는지 모른다.
우리 집도 들어올 때 신발을 벗는데, 아이들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나 집안 수리를 위해 누가 왔을 때 “신발을 벗어 주겠니?”, “신발 좀 벗어주시겠어요? 아니면 신발에 씌울 비닐봉지를 드릴게요.”라고 일일이 이야기하는 것이 은근히 스트레스이다. 아이들은 집 안팎을 오가며 놀다 들어올 때마다 잊어버리고 신발을 신은 채로 우다다다 들어오기 일쑤이고, 어른들도 별다르지 않다. 습관이니 어쩔 수 없을 거라고 이해는 되지만 그렇다고 신발을 계속 신고 있으라고 하기도 어렵고, 두세 번 말하기에는 혹시라도 상대방을 타박하는 것처럼 들릴까 싶어 걱정되기도 한다.
그런데 말하지 않아도 늘 해온 듯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얌전히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샹치. 영화 속 인물만 아니었다면 진짜 '궁디 팡팡'을 해주었을 것이다.
거기다 샹치가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중국인인 샹치에게 "(너네는 구분이 안 간다는 식으로) 한국인이냐?"라고 시비를 거는 학생이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장면, 케이티가 샹치의 영어 이름 Shaun은 잘 발음하지만 중국식 이름인 샹치는 아무리 해도 정확히 발음하지 못하는 장면 등, 미국에 살면서 나와 아이들도 겪은 일들과 비슷한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맞아. 저거 알지, 알지."
하며 그야말로 '빵빵 터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샹치>를 본 친구들 말로는 샹치가 케이티의 집에 들어갈 때 신을 벗는지 어쩌는지는 의식조차 하지 못했고, 주인공들이 중국계라 '우리(한국) 히어로가 아니기로는 스파이더맨이나 샹치나 별 차이 없게' 느껴졌다고 한다. 한 친구는 나에게 "미국에서 살더니 범(汎) 아시안 아이덴티티가 생겼나 봐."라며 웃었다.
하긴, 한국에서 살 때는 나도 내가 '아시안'이라는 자각을 평소 거의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사회의 주류, Major 그룹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별로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까.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비슷한 사람을 만났을 때 보다 큰 기쁨을 느끼는 쪽은 언제나 비주류, Minor들이다.
오래전 본 어떤 토크쇼에서 한국계 미국 배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샌드라 오 배우였던 것 같은데,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
"대본을 받으면, 아 내가 이 역할이겠구나, 하고 짐작하면서 감정 이입해서 쭉 읽어볼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 역할의 형제자매가 등장하면 내가 착각했다는 것을 알게 되죠. 한 프로그램에 아시안을 두 명 이상 등장시킬 리는 없으니까요."
나는 영화 <샹치>가 경제적으로 누가 보아도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성적을 거두면 좋겠다. 상업 영화 시장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수익성일 테고, 그래야 <샹치 2>, <샹치 3> 등이 무리 없이 계속 제작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러다 보면 아시안을 '감초처럼' 한 두 명 출연진에 끼워 넣어 스테레오 타입만 재생산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다양하게 등장시키는 작품도 더 많이 나올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