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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라토너 거북 맘 Dec 08. 2021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러닝 / 운동 이야기

2시간 이상 쉬지 않고 달리는 하프마라톤을 시작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장거리 러닝에는 쿠션 좋은 신발과 통기성 좋고 땀 배출이 용이한 복장 외에도

바셀린과 bandage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게 왜 필요하냐고?

장거리를 안 달려 보셨으면 말씀을 마시라.


특히, 무덥고 습한 기후 조건에서

어마 무시한 땀을 흘리는 마라톤 중반 이후에는

가쁜 호흡과 천근만근인 다리의 통증과는 다른 종류의 아픔이

겨드랑이와 가슴(정확히 말하면 '젖꼭지')에서 느껴지기 시작한다.


여자들은 타이트한 스포츠 브라를 입기 때문에

솔직히 가슴 부위의 통증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남자 선수들은

미처 바셀린과 밴드를 준비하지 못한 경우

결국 이런 모습으로 뛰게 된다. (아, 저 고통... 어쩔 것인가)


장거리 달리기를 하다 보면,

허벅지끼리도 마찰이 생겨서 사타구니 쓸림 현상으로 인한 상처가 생기고

팔과 겨드랑이도 살끼리 마찰이 발생해서 통증을 유발하게 된다.


그런데 초보 남자 러너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복병이

바로 젖꼭지의 통증인 것이다.

땀에 절어있는 선수들의 운동복 상의가

젖꼭지와 계속 마찰을 일으키면서 상처가 생기는 것인데

그래서 경험이 있는 러너들은 마라톤 시작 전에 미리

'니플 패치'라는 밴드를 붙이고 위의 사진과 같은 불상사를 방지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풀코스 골인 지점에서

셔츠가 피로 물든 채 들어오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에이, 너무 과장한 거 아닌가? 설마 피까지 날까?'

과장한 거 아니다.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풀코스 같은 장거리 마라톤에서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마찰로 인한 통증이 어느 정도냐 하면

마치 맨살을 사포로 문지르는 느낌이다(아, 지금도 겨드랑이 안쪽이 쓰라리다).


매주 토요일 새벽마다 2시간에서 3시간 정도를 달리는 나는

이미 겨드랑이 안쪽 피부색이 거무죽죽하게 변한 지 오래다.

바셀린을 바르기가 귀찮아서 그냥 달리러 나간 경우에는

어김없이 양쪽 겨드랑이와 팔 사이에 시뻘겋고 긴 상처를 안고 돌아온다.


샤워하면서부터 느끼는 이 통증은

신경이 예민해질 만큼 날카롭게 아프다.

그리고 제법 오래간다.

이젠 반복된 상처들로 얼룩진 곳이 되었다.


그래서 되도록, 멀리 오랫동안 뛰러 나갈 때는

항상 양쪽 허벅지와 겨드랑이 안쪽에 충분히 바셀린을 바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워낙에 땀을 많이 흘리게 되므로

그 마저도 중간에 땀에 지워지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전혀 바르지 않은 상태보다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


마라톤은 정말 여러 가지로 대단한 종목이다.

오랫동안 인내심과 끈기를 가지고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함은 물론이고

신체의 다양한 고통들도 참고 이겨내야 하는

한마디로 정신과 육체가 모두 강하지 않으면 해낼 수 없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마라톤으로 인해

나약하고 부정적이고 물러 터진 정신 상태가 단단한 바위처럼 강해지고

시들시들해진 화초처럼 맥을 못 추고 늘 피곤과 무기력함에 갇혀있던 육체가

생기 있고 에너지 넘치는 건강한 몸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정도 러닝에 익숙해진 분들이라면

꼭 한번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보길 추천한다.

처음엔 10킬로 정도로 시작하겠지만 점점 거리와 시간이 늘어나서

하프 코스와 풀코스에도 도전해 볼 욕심이 생길지도 모르니 말이다.


굳이 하프코스나 풀코스까지 달려야 할 필요는 없지만

중요한 건, 그런 대회와 거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과 마음이 엄청나게 달라지고 강해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한 번쯤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하고 쾌적한 마라톤을 위해서

준비물을 철저히 챙기는 것도 잊지 말자.

이를테면, 바셀린 바르기와 젖꼭지 테이핑 같은 것들 말이다.

조심하지 않으면 사라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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