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2. 내 인생 되감기
“같이 힘내요!” 엄마들의 끈끈한 온라인 연대
글을 쓰겠다고 네이버 블로그를 다시 열었어요. 예전처럼 수업 인증 포스팅이 아닌 있어 보이는 척하는 글이 아닌, 진짜 내 글을 써 보기로 결심했죠. 블로그를 오랜만에 접속하게 되니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 했어요.
블로그를 처음 만든 시기는 10여년 전이었어요. 그 당시 ‘파워블로거’ 분들을 모시고 일할 기회도 많았고 회사 블로그 컨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기도 했죠. 블로그를 통해 얼마든지 수익창출이 되고 중요하다는 걸 옆에서 보면서 제 블로그를 시작해보기도 했어요. 협찬 한번 받아보고 싶었죠! 하지만 정작 열심히 운영할 생각은 왜 안 했나 몰라요! 그때부터 했으면 벌써 10년차 블로거였을 텐데 말입니다! 꼭 뒤늦게 후회하며 배우게 되네요. 으이그!
몇 번의 체험단 기회가 주어지긴 했어요. 그런데 리뷰 포스팅도 잘 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꼼꼼하게 하나하나 분석하는 시간도, 장단점을 비교해보는 글도 도통 흥미가 생기지 않았어요. 본래 물건을 사더라도 마음에 들면 그냥 사지, 일일이 비교하는 성격도 아니었거든요. 가격 비교가 세상에서 제일 귀찮은 사람이에요 제가. 그러니 체험단 기회가 주어져도 심드렁했죠. 역시나 돈을 바라면서 써야하는 글은 저와 맞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상기하게 되네요.
제가 오래 전에 쓴 글을 하나씩 읽어보았어요. 소소한 일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어요.
신랑과 결혼준비를 하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임신, 유산, 재임신, 고위험 산모실 입원, 아이의 인큐베이터 시절… 제법 쌓여서 150여개에 달하는 포스팅이 모여 있었죠. 그냥 기록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꽤 많은 양이 쌓여 있었네요. 다시 제 시선을 오랫동안 붙잡은 글이 보였어요. 바로 처음 유산 이야기를 썼던 글이었죠. 지금까지도 10년 전 유산 글을 보고 질문주시는 분도 계시는 글이에요.
“유산 후 몸조리 벌써 3주차. 2012.9.21”
임신 13주차, 갑자기 유산이 되었어요.
하혈을 하며 대학병원에 긴급 입원을 하게 되었죠.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았어요.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고 저 때문에 유산된 게 아니라고는 하지만 마음이 공허했어요. 친구들이 비슷한 시기에 다 임신을 한 상황이라 거기서 저만 동 떨어진 기분이었어요. 짧은 기간이지만 내 뱃속에 생명이 있었는데 생명의 끈이 끊어진 기분은 저를 무척 외롭게 했죠. 아무도 오지 않는 외딴 섬에 고립된 기분이었어요.
그렇다고 매번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하소연하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차라리 내 얼굴도 신상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면 조금은 마음이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렇게 블로그에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죠. 누가 보든 상관하지 않았어요. 그 순간은 블로그가 저만의 대나무 숲이 되어주는 기분이었어요. 마음껏 속 마음을 쓸 수 있었죠. 어느 날은 울면서 쓰고, 어느 날은 마음이 차분해진 상태로 쓰기도 했어요.
“유산 증상. 유산 원인을 알아야 한다.” 2012.9.21
“저랑 비슷한 시기에 유산 겪으신 이웃분들 봐주세요.” 2012.9.24
제 포스팅에 덧글이 남겨지기 시작했어요.
'저도 얼마전 같은 증상으로 입원을 했어요. 아이를 살릴 가능성이 있을까요?' '전 유산한지 100일이 지났어요. 아이를 절실히 기다리고 있답니다. 같이 힘내요.' '저도 둘째 아이를 얼마전에 보냈어요. '
자신의 속이야기를 꺼내 놓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지금 몸은 어떻냐, 병원에서는 뭐라고 하느냐, 몸 회복엔 이런 게 좋더라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시간들이 이어졌어요. 긴 말이 필요 없었어요.
‘척 하면 착’ 하고 마음 속 기분도 헤아릴 수 있었죠. 몇 개월 후 재 임신 소식을 서로 전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어요. 고위험 산모실에 입원을 했을 때 응원을 받고 아이가 인큐베이터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는 같은 마음으로 아이의 퇴원을 빌어 주기도 했죠.
이른둥이 아이를 낳고 나니 같은 처지의 엄마들과 연대가 시작되었어요. 출산 축하를 받는 것조차 죄책감이었던 시기였거든요. 아이가 좀 더 제 뱃속에 있다가 건강히 나왔어야 했는데, 일찍 태어났으니 인큐베이터에 바로 가야 했어요. 출산 축하 인사를 받을 때마다 아이를 향한 미안함이 커졌어요. 내가 과연 축하를 받을 수나 있나 자책했죠.
“분명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는 제 옆에 없어요…”
아이는 병원에 있고 저는 집에서 홀로 몸조리를 하던 어느 날, 헛헛한 마음을 두서없이 적어 내려갔죠. 역시나 이른둥이 엄마들이 가장 많은 위로와 힘을 보내주었어요. “저도 그랬어요. 지금은 새근새근 제 옆에서 자고 있어요. 머지않아 밤잠 설치며 기쁘게 수유하는 날이 온답니다! 힘내요!” 특수 젖병으로 수유 연습을 하러 오라며 병원 연락을 받게 된 날, 어디서 사야 할지도 몰라 발을 동동 구를 때 아낌없이 젖병을 비롯한 아이용품을 보내주신 분들도 얼굴 한번 뵌 적 없는, 같은 상황을 겪는 엄마들이었어요.
꼭 얼굴을 알고 오래 알고 지내야만 관계가 이어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이름도 나이도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저와 아이의 무탈한 나날을 응원해 주셨답니다. 온라인에서 받은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의 퇴원을 덜 걱정하며 기다릴 수 있었어요. 한창 아이의 재활치료를 받을 때도 하루를 버티는 힘이 되어주었죠. 저 혼자 이 모든 상황을 오롯이 견뎌야만 했던 상황이라면… 정말 상상도 하고 싶지 않네요.
“그래, 내가 블로그를 했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용기 낼 수 있었잖아!”
다시한번 이렇게 마음의 온기를 담은 글을 쓰고 싶었어요. 무언가를 바라고 쓰는 글이 아닌 내 마음을 터놓고 사람들과 나누며 행복해하는 제가 되고 싶었죠. 친구들이 좋아하는 글을 쓰며 같이 행복했던 10대의 저로, 생각을 글로 풀어 쓰는 방법을 배웠던 20대의 저로, 글로 힘을 얻으며 살았던 30대의 저로 되돌아가보고 싶었어요.
“그래, 내 이야기를 쓰자!” 그렇게 다시 블로그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생각을 담은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About me. 왜 나는 글쓰기를 하는가. 2020.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