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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앤 Oct 06. 2022

17살, 나름 팬이있던 작가

파트2. 내 인생 되감기

파트2. 내 인생 되감기


되감기를 하면 얼마든지 지나쳐버린 구간을 볼 수 있죠.

제 인생도 그렇게 되감기를 해보기로 했어요

무심코 지나쳤던 시간 속에 원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좋아했던 일, 정말 하고 싶었던 일.

신나게 찍어온 내 점들을 의미 있게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17살, 나름 팬이있던 작가 


“나도 이야기 하나 써줘.” 


매일 같이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중고등학교 시절에 친구들과 우정을 쌓아가기에 서로 주고받는 편지만 한 게 없었죠. 지금이야 문자 보내고 전화하지만 저희 때는 그게 쉽지 않았거든요. 집 전화를 걸어야 했으니 다른 가족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죠. 오래오래 수다 떨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어요. 어린 아이들도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는 요즘 같은 시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장면이네요. 


하루의 수다를 마치지 못한 아쉬움을 편지로 달랬죠. 정성스럽게 편지지를 꾸미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라도 편지에 적게 되면 괜히 더 비밀스러워지잖아요. 친한 친구와는 가벼운 쪽지를 주고받았고 좀 더 친한, 그야 말로 ‘단짝 친구’와는 교환 일기를 썼었죠. 문방구에 가서 커플용 노트를 두 권 사서 각자 한 권씩 나눠 갖은 뒤 그 친구에게만 편지를 쓰는 거예요. 그 당시 단짝 친구들 사이에서는 교환일기가 제일 유행이었죠. 교환일기를 함께 쓰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답니다. 


어느 날은 쓸 말이 크게 없지 뭐에요. 그렇다고 빈 종이 달랑 보내면 나의 단짝 친구가 속상해 할테니… 어떤 내용을 적을까 하다가 친구가 좋아하는 연예인과의 러브 스토리를 써줬어요. 무슨 대단한 스토리 기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죠. 그 당시엔 다들 좋아하는 연예인과의 로맨스를 꿈 꿨잖아요? 

“난 나중에 토니오빠랑 결혼할 거야!” “난 은지원!” 


쉬는 시간이 되면 상상의 로맨스를 펼치는 게 그 시절의 낙이었죠. 단짝 친구는 HOT 토니안의 열혈팬이었어요. 자기 물건에 이름을 쓸 때는 늘 ‘토니부인 000’이라고 썼죠. 상상 속의 로맨스, 현실이 될 수는 없지만 교환일기에서라도 이루어지면 좋잖아요? 친구의 사랑을 이루어 주기 위해 꽤나 심혈을 기울여 썼죠. 


‘평범한 한 고등학생 소녀가 우연히 방송국에 갔다가 길을 잃어버렸고 우연히 토니 오빠를 만나서…’

아, 이렇게 다시 기억을 되살리는 것으로도 얼굴이 빨개지네요. 네, 그렇게 유치하고 유치한, 뻔하고 뻔한 러브스토리였어요. 뒷이야기도 궁금하시다고요? 그렇게 비밀리 연애하고 결혼까지 골인하는 거죠! 

그 시절엔 모든 로맨스의 종착역이 결혼이라고 생각했잖아요! 결혼부터는 사랑이 의리로 바뀌는 진짜 어른들의 현실을 알 턱이 없었던 17살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손가락이 오그라들 정도의 유치한 이야기였지만 쓰는 내내 너무 신이 났어요. 이 글을 읽고 좋아할 친구의 모습도 떠올랐죠. 역시나 친구는 교환일기 속 러브 스토리에 흠뻑 빠졌어요. 얼마나 좋아했는지 읽고 또 읽어서 너덜너덜해질 지경이 되었지 뭐에요. 친구의 기대에 힘입어 러브 스토리는 더 확장되어 나갔어요. 이왕 이렇게 된 거, 그 시대의 인기 연예인은 죄다 출연 하셔야죠! 제 친구와 전부 한 번씩 연애를 다 했네요. 뭐, 우리 둘만 읽었으니까요! 그렇게 비밀리 인기 러브스토리였지만 어느 덧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친구가 다른 반 친구에게 이야기를 했더라고요. 


어느 날 모르는 아이가 저에게 다가와서 말을 건넸어요. 

“나도 이야기 하나 써주면 안 돼? 난 장우혁.” 


이렇게 저는 ‘원고 의뢰’를 받게 되었어요. 못 쓸게 뭐 있나요. 그토록 좋아하는 우혁이 오빠와의 로맨스도 종이 속에서 얼마든지 피워봅니다. 제가 쓴 글이 누군가를 즐겁게 해주었어요. 그리고 상대방이 원하는 글을 쓰니 좋은 반응도 얻었죠. 그 시절 입소문 마케팅도 경험했네요.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 상품은 역시나 성공을 한다는 마케팅의 원리를 17살에 배우게 되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잘하고 좋아했을까?’ 생각하다 보니 17살, 교환일기를 쓰던 제 모습이 먼저 떠올랐어요. 

정말 신나게 이야기를 써 내려가던 제가 보이네요. 쓰는 재미를 알았던 시절이었어요. 그렇다고 거창한 작품을 썼던 것은 아니었지만 머리 속에 있는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정리하는 것도 즐거웠죠. 읽어볼 친구가 좋아할 모습을 상상하는 시간도 행복했죠. 그러고 보니 논술 시간도 힘들지 않았네요. 다들 낑낑 대며 긴 논술 답안지에 문장을 채워 넣을 때, 시간 부족함 없이 다 쓰고 여유롭게 제출했던 기억도 나요. 


그렇다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잠시 기자라는 직업이 멋져 보여서 장래희망으로 꿈꿔본 적은 있었죠. 하지만 어디까지나 텔레비전에 나온 멋진 모습만 봤을 뿐이었어요. 내가 글을 쓴다고 상상조차 안 했는데 마흔이 넘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다 보니 글쓰기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운명이었을까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까요?


이제 더 이상 좋아하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어졌다고 생각했어요. 경력이 단절되었으니 제 꿈마저 영영 단절되었다고 여겼죠. 어릴 적에 장래 희망을 1분도 고민하지 않고 쓰던 제 모습은 사라졌다고 생각했어요. 무슨 일을 하든 돈부터 생각했기에 꿈이고 희망이고 뭐고 없었어요. 


쉽게 돈 벌 수 있다는 방법을 뒤로 하고 정말 순수하게 내가 좋아했던 일을 떠올려 봤어요. 

그랬더니 가장 먼저 17살때의 기억이 생각났던 거죠. 나름의 팬이 있던 작가시절. 

그렇게 하나하나 예전 기억을 되짚어보니 쓰는 재미를 새록새록 알아가던 제 모습을 찾아가게 되었답니다. 그 이후도 생각해보니 미대에 입학은 했지만 필기 과목을 더 잘했던 기억도 나고, 수많은 기획서를 쓰면서 글이 보여주는 매력을 배웠던 회사 경험도 떠올랐어요. 


‘아, 그럼 나는 글쓰기를 다시 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글 쓰면서 재미있는 일도 해보고, 사람들도 만나보면 어떨까?’ 라는 꿈도 그려보게 됩니다. 아주 심플했네요. 예전의 제 모습에서 잘했던 일, 좋아했던 일을 찾으면 되었어요. 굳이 비싼 돈을 쓰며 다른 사람에게 내 꿈 찾아 달라고 할 게 아니었네요. 가만 보니 글 쓰는데 돈이 필요하지도 않네요? 

튼튼한 손가락과 무거운 엉덩이만 있으면 준비 끝! 안 움직이고 오래 앉아있기는 제가 또 자신 있죠.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쓰면 되었어요. 17살, 글 쓰면서 신이 나 웃었던 그 시절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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