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죠앤 Oct 04. 2022

백마 탄 강사님이 나를 구원해줄 거야

파트1. 이렇게 살아가게 될줄이야


두 주먹 불끈 쥐었습니다. 이를 악물었죠. 


그런데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여전히 막막했죠. 

영화 같으면 이럴 때 주인공에게 멋진 멘토가 나타나지 않던 가요? 

성공을 도와주거나 엄청난 공모전이나 

이벤트에 당첨되면서 인생 꽃 길이 열리기도 하던데 말입니다. 주변을 두리번거려도 행운의 요정이 올 기미가 안보이네요. 경력 단절 여성 재취업 프로그램 안내문만 보일 뿐. 

역시나 현실은 영화가 아니었어요 쩝. 


‘일을 해봐야겠다’, ‘돈을 벌어야겠다’라고 생각하니 신기하게 그런 광고만 눈에 띄는 거 있죠? 

와, 어쩜 강의 모집 문구들도 이렇게 근사한가요.

‘잠자는 동안에도 돈을 버는 법’, 

‘몇 개월만에 월천만원 수익’, ‘당신의 모든 이야기가 돈 버는 아이템’


10여년을 마케터, 기획자로 일했다 보니 ‘저거 과장 문구인데’ 싶은 글이 잘 보이는 편이에요. 

그런데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에 혼자 있는 기분이다 보니 ‘낚는’ 글에 그냥 ‘낚이고’싶었어요. 

환하게 웃는 강사분들과 착실히 배운 대로 했더니 돈을 벌었다는 수많은 후기 글이 제 심장을 뛰게 했어요. 

그 분들이 사막에 혼자 서있는 저를 살리려고 온 구조대처럼 보였죠. 

0이 많이 붙은 강의비가 아깝지 않아 보였어요. 이렇게 사람 심리를 잘 건드리면 지갑도 잘 열리게 된답니다.


곧 제 장바구니는 다양한 강의로 묵직해지고 통장잔고는 가벼워졌어요. 

배움엔 아낌없이 투자하기로 마음먹었죠. 블로그 광고수익, 상위노출,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스마트스토어, 퍼스널 브랜딩 등등. 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강의들을 찾아다녔죠. 

그 무엇보다 저를 흔든 이야기는 ‘아이를 키우면서 내 능력으로도 집에서 여유롭게 돈을 번답니다.’ 였어요. 외벌이 남편의 월급 눈치 안 보게 될 수 있다, 육아하면서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바닥에 팽개쳐 있었던 자존감마저 끌어올려줄 것처럼 보였어요. 

지속적으로 함께 ‘연대’한다는 말도 매력적이었죠. 인증샷의 그녀들은 얼마나 다들 예쁘던지! 곱게 화장하고 근사한 카페에서 서로 환하게 웃으며 사진 찍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입을 헤 벌리고 있더라고요. 


미치도록 부러웠어요. 그 인증샷이 뭐라고. 지갑 속 카드를 만지작거렸어요. 

저를 강하게 흔들어 놓은 강의는 한달 식비와 맞먹는 금액이었죠. 고민하는 동안 신청 문의 글이 쏟아지는 겁니다. 나중 에서야 신청 덧글이 아닌 응원 덧글도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때는 하나도 몰랐죠. 그 모든 덧글이 제 자리를 빼앗는 듯해서 초조했어요. 망설일 시간이 없었어요. 

‘나의 능력을 찾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그렇게 또 한 차례 강의비가 결제되었습니다. 


강의 첫 날, 수많은 선배님들의 성공사례를 보며 감탄하는 시간을 마무리했어요. 

월 천만원이 이제는 월 만원의 단위로 들리게 되더라고요. 나도 보란 듯 잘난 사람이 될 수 있겠구나 싶어서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모두가 차례차례 과제용 노트를 받았죠. 향기를 머금은 핑크 빛 노트와 예쁘게 반짝이는 펜. 그 노트에 내 꿈을 기록하면 곧 그녀들처럼 다 이루어질 것만 같았어요. 


꿈을 백 번 쓰는 것부터 시작했죠. 매주 내어주는 과제에 맞게 내 능력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을 생각해보기도 했어요. 밤잠을 설쳐가며 열심히 매달렸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이상했어요. 

꿈을 백 번 쓰는데 절실하지 않고 손목만 아팠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으로 만든 저만의 돈 버는 방식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방식과 다를 바가 없었어요. 제가 만든 온라인 모임 이름조차도 영 마음에 안 들었죠. 

그런데도 다 괜찮다고 하네요? 잘 모르는 제가 봐도 여기저기 허점이 보이는데 너무 근사하다는 답변만 들었어요. 칭찬이 아니라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는데 말이죠. 


입금 전에는 상세하게 답변을 해주던 강사님은 본격적으로 강의가 시작되자 입이 무거워졌어요. 

“계속 더 고민하세요.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건 충분히 고민을 안 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제가 그 답을 그렇게 잘 찾았으면 이 수업을 들었겠습니까. 

설레임으로 시작한 수업은 의문과 허탈함으로 종료가 되었어요. 


한달동안 손목 아프게 쓴 꿈은 나중에 읽어보니 너무나 저와 거리가 먼 우주같은 꿈이었어요. 

남들이 써 놓은 꿈이 멋져서 베낀 기록에 불과했죠. 이게 정말 내 꿈이 맞나 싶더라고요. 아니었어요. 

내가 잘할 수 있겠다 싶어서 호기롭게 기획해본 온라인모임 역시 제가 해낼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어요. 

충분한 고민을 할 시간 없이 한달동안 주어진 과제만 그럴싸하게 마무리 짓다가 끝나버렸어요. 

껍데기만 있던 제 기록은 강사님의 수업 후기에는 꿈 찾은 엄마 후기로도 올라간 적도 있었고요. 

전 여전히 꿈을 찾는 중인데 말입니다. 

서로의 성장을 함께 한다는 단톡방은 광고 글만 난무해서 피로도만 높아졌어요. 

다 끝나고 나니 돈이 너무 아까워서 화가 났어요. 그럴싸한 문구로 사람을 낚은 강사를 탓했죠. 

도대체 무엇을 알려준 건지 알 수 없어서 두고두고 원망했어요. 


네, 저는 수업을 들으면서도 그냥 입만 벌리고 있었더라고요. 알아서 다 떠먹여 주기를.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으나 아니었어요. 

역시나 누군가에게 기대고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어디 안 갔더라고요. 이 수업만 들으면 미운오리새끼에서 우아한 백조가 되리라 착각하고 있었어요.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알고 보니, 월 천만원 수익 냈다는 강사님 경험도 딱 한 번이었더라고요. 그것도 순 이익이 아니라 총 매출. 마치 매달 월 천만원의 금액이 통장에 따박따박 들어온다고 여겼는데 말이죠. 네, 그렇게 의심해볼 생각도 없이 다 믿었어요. 그 많은 강사들이 저를 구원해준다고 착각했죠.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살린다고 말이죠! 


이후 수업 인증 포스팅을 하나하나 다시 읽어보았어요. ‘어떻게 하면 나를 감추고 예쁘게 보이게 할까’ 라는 마음만 담긴 글이 쌓여 있었어요. 좋지도 않은 피부에 비싼 화장으로 바르기만 했으니 누가 봐도 멋져 보일 수 없죠. 포스팅과 단톡방을 전부 삭제하면서 비로소 홀가분해졌어요. 


정신을 차린 후 또 다시 저를 마주하게 됩니다. 정신 차려보겠다고 굳게 다짐했는데 성공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네요. 그런데 이상하게 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여기서 멈추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에게 자책하듯 묻고 또 물었어요. 

‘누가 너를 위해 다 퍼주겠어? 너 답게 사는 방법을 정말 스스로 찾을 수는 없어? 다 큰 어른이면서!’ 


그저 빨리 낮아진 자존감을 감추고 싶었어요. 남들처럼 보여지는 일을 하고 있어야만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생각했어요. 무언가를 계속 배우고 있기라도 해야 초라해지지 않을 거라 여겼어요. 그러니 또 뻔한 수업일 것을 알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계속해서 카드를 긁었던 거죠. 본질이 아닌 허상만 계속 찾아다녔어요. 

‘너도 잘 할 수 있어.’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해 주지 못하고 유명한 누군가에게 듣고 싶어서 열심히 기웃거리고 있었네요. 


세상에 백마 탄 강사님은 없었어요. 

눈물을 닦아주며 꽃 길을 만들어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더라고요. 백마는 내 스스로 타야 했어요. 아니, 백마가 어디에 있는 지 찾고 말을 잘 길들이는 것부터 제 손으로 해야 했죠. 비싼 수업료를 몇 차례 치른 후에 제 자신을 돌아볼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 속 소리에 귀 기울여 보기로 했어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기로 했죠.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거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일까?”


[나에게 질문던지기]


지금 현실은 어때?: 집없음, 경력없음, 돈없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뭐야? : 아무 것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뭘까? : 모르겠어.
예전의 나는 어땠지? : 다양한 일에 흥미를 가지고 했었지. 사람 만나기도 좋아했고.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 : 과거의 나부터 돌아보자. 내가 몰입해서 했던 일을 찾아보자.

내가 찍어온 점을 찾고 이어보기!


“열심히 살다 보면 인생에 어떤 점들이 뿌려질 것이고 
 의미 없어 보이던 그 점들이 어느 순간 연결돼서 별이 되는 거예요.
 우리에겐 오직 각자의 점과 각자의 별이 있을 뿐입니다.”

여덟단어/p33/박웅현/북하우스 



이전 04화 여보, 당신이 알아서 좀 해주면 안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