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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앤 Oct 03. 2022

여보, 당신이 알아서 좀 해주면 안돼?

파트1. 이렇게 살아가게 될 줄이야



"자기가 집안을 일으키는 사주래. 나보다 더 진취적이고 돈도 번다는데?"


결혼 전 어른들이 사주를 보셨어요. 사주가 100%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괜히 귀가 솔깃해지기 마련이죠. 나이 먹을수록 돈도 많이 벌고 평안하게 지낼 수 있다는 말을 내심 기대했었습니다. 사실 신랑이 사주가 좋길 바라는 마음이 컸음을 고백합니다. 

결과는 신랑보다 제가 더 나은 사주라네요!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어머! 내 사주가 그렇게 멋지다니!' 라며 좋아하지 않았어요. 

저도 모르게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뭐라고?!'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오더라고요. 

‘평생 고생해야 한다는 이야기 아니야?’ 고백하기 부끄럽지만 유유자적 편한 팔자는 아니라는 결과에 

혼자 얼마나 투덜댔는지 몰라요. 어쨌거나 결론적으로 보면 잘 산다는데 그 주체가 저라는 사실에 왜 부인하고 싶었는지요. 신랑이 알아서 다 해주기를 은연 중에 바라고 있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을까요. 

이후에 장난으로 신랑이 그 사주 언급을 할 때마다 슬그머니 약이 올랐어요. 


'내 사주 믿고 놀기만 하면 안 돼!' 라며 괜시리 으름장을 놓기도 했죠. 

아이를 낳고 난 이후에 신랑 혼자 생활비를 벌고 있는 게 미안하면서도 사주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싶은 아이러니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어요. 집안을 일으킨다는 운명을 지녔음에도 ‘어떻게든 살게 되겠지.’라며 생각없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찾아왔어요. 모든 것이 멈추어져 있는 줄만 알았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요. 

돈은 참 부지런히도 움직이더라고요. 

‘벼락거지’, ‘벼락부자’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자 우리 둘 다 초조해지기 시작했어요. 아니, 저만 너무 불안해졌죠. 좀 더 상황을 보자는 신랑의 침착한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어요. 

‘이러다가 정말 벼락거지가 되겠다.’라는 위기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날, 당장 동네 부동산부터 가보기 시작했어요. 지금이 마지막 기회 일거라는 부동산 사장님 말에 얼마나 심장이 뛰었는지 모릅니다. 


“이 집이 제일 저렴하게 나오긴 했는데, 사람들이 다들 보여 달라고 하니 가격을 자꾸 올리려고 하네. 

빨리 잡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지금이라도 당장 계약서를 써야 할 것 같았어요. 어찌어찌 무리하면 살 수도 있을 것 같았죠. 바로 집에 오자마자 말했어요. 


“나, 집 사야겠어. 사자.” 

앞 뒤 상황 설명도 없이 대뜸 방에 뛰어들어와 집 사자고 하는 제 말에 신랑이 쉽게 동조했을 리 없죠. 

“갑자기 어떻게 집을 사? 대출은 어떻게 갚아? 지금 코로나로 모든 상황이 안 좋으니까 좀 더 두고 보자.” 

신랑은 늘 그랬듯 조곤조곤 말을 했어요. 이미 조급해진 저는 그 조곤조곤한 말에 폭발을 하고 말았죠. 

"이러다가 더 많이 오르겠다고! 그냥 좀 사자!" 집 모양 장난감 사는 것도 아닌데 무작정 사자면서 생떼를 부리고 있었죠. 


한 달간 의견이 부딪히고 곧 냉랭한 사이가 되었어요. 

본래 다툼이 잦지는 않았으나 한 번 틀어지면 

둘 다 예민해지고 입을 꾹 닫는 스타일이었거든요. 코로나로 인한 재택 근무와 등교 중지로 세 식구가 다 집에 있는 숨막히는 상황이었는데 여기에 냉랭함까지 더 해지다니. 함께 있는 공간이 살얼음판이었음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으려 했어요. 한 두 마디 건넨 사소한 말에 폭발하기도 했죠. 죄 없는 아이만 중간에 껴서 눈치를 보는 시간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민낯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누군가에게 기대기만 하고 잘못되면 상대방 탓으로 돌리는 속 좁은 사람이라는 사실을요. 

아무런 인생 준비도, 아무런 계획도 없었던 제 본래의 모습을 이렇게 알게 되었답니다.


사실 신랑이 듬직하게 알아서 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보니, 괜시리 원망만 커지고 있었어요. 

이렇게 전전긍긍하는 상황이 되어버려서 너무 화가 났어요. 

‘그때 살 걸 그랬어…’ 이른바 ‘껄무새’가 되어버렸죠. 

분명 누구 한 사람만의 잘못이 아닌 데도 원망의 화살을 신랑에게만 집중적으로 쏘고 있었어요. 

그렇게라도 떼를 써야 이 상황에서 벗어날 줄 착각했나 봐요.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죠. 


원망과 화를 마구 던져보아도 상황이 전혀 달라지지 않자, 

비로소 저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얼마나 떼쟁이 아이처럼 있었는지를. 

이렇게 가시가 돋친 상태에서 무슨 문제가 해결이 되겠어요.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서로 터져버릴 듯한 상황인데 말이죠. 제가 먼저 말을 할 필요가 있었어요. 

가시를 내리고 솔직한 마음을 말해봤습니다. 


"여보, 나는 10살때 집이 어려워졌잖아. 그 때의 기억이 너무나 생생해. 2년 뒤 우리 아이도 10살이고 

이 집 전세 만기이기도 해. 2년 뒤를 생각해보는데 너무 무서운 거야. 나랑 똑같은 열살을 보내게 하고 싶지 않아. 그리고 부동산 상황이 계속 바뀌는 것도 너무 불안했어." 마음 속 이야기를 말하자 

그때서야 신랑도 내가 왜 그렇게 사자고 부르짖었는지에 대해 이해를 해주었어요.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지. 사실 나도 그래.” 


우리는 의기투합해 보기로 했어요. 함께 공부를 해보기로 했죠. 

이후 청약과 부동산 시장에 대해 같이 알아보기 시작했고 스터디 모임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공부를 할수록 집을 사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죠. 하지만 저희가 정신차린 만큼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집 사기 전쟁에 뛰어든 뒤였습니다. 겉잡을 수 없이 매일 신고가 뉴스가 쏟아졌죠. 이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던 날, 감사하게도 서울의 한 아파트에 청약 당첨이 되긴 했어요. 


그럼 이제 걱정할 게 없겠다고요? 하지만 세식구가 실질적으로 거주할 수 없는 초소형 평형인, 

무늬만 우리집이었어요. ‘나중에 나이 들어 우리 둘이 작게 살면 되지.’라는 아쉬움만 쌓인 내 집이 생기게 되었네요. 서울에 방 한 칸 마련했다는 것으로 왠지 모를 위안이 되긴 했지만 요. 

그래도 청약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죠. 돈 앞에서 전전긍긍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잘 살면 좋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나누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부부가 한 방향을 바라보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그런 마음으로 좋은 시기를 놓친 것을 애써 달래보기도 했죠. 지난 시간을 매번 아까워하는 저에게 신랑은 '우리가 같이 노력하고 있으니 더 좋아질 거야'는 핑크 빛 위로를 자주 해주었어요. 

“회사 다니느라 힘들 텐데 까칠한 와이프 다독이느라 고생이 많아.” 

그때서야 신랑에게 기대고 살았던 10년의 세월에 고마움과 미안함이 몰려오게 되었죠.    


그러고 보니10년간 신랑은 군소리 한번 없었네요. 친구들 와이프가 워킹맘으로 가정 경제를 나누는 것을 보면서도 저에게 '이제 일 좀 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보통 결혼 생활이 어느 정도 지나면 남편들의 불만이 터져 나온다는데, 아직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재택 아르바이트를 해서 작은 수익이라도 벌게 되면 고마워했고, 여러가지 일을 벌리면 실행력 있다며 대단하다고 해주었어요.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녀야 하는 저에게 ‘늘 건강이 최고’라며 다독여 주기도 했고요. 


이런 속 넓은 신랑에게 그깟 사주 결과로 마음 속으로 투덜대고 있었다니! 

우리 보금자리 준비 못한 게 당신 탓이라며 떼쓰고 있었다니! 아, 저는 언제쯤 철이 들게 되려나요. 


부끄러운 제 민 낯을 마주하고 나서 결심했어요. 정신 바짝 차려 보기로 했어요. 

사주팔자도 한번 믿어 보기로 했습니다! 

내가 집안을 일으킨다고? 이제 내가 알아서 한번 해볼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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