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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앤 Oct 01. 2022

당신의 직업은? ‘무직 혹은 기타’

파트1. 이렇게 살아가게 될 줄이야


그야말로 치열한 육아를 하며 지냈어요. 

24개월까지는 아이의 발달을 체크하러 재활의학과로, 발달치료센터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도 나질 않네요. 아이와 24시간을 48시간처럼 보내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어요. 세상의 모든 아이에게 심드렁하던 제가 하루 종일 아이 생각만 하는 엄마가 된 지 어느 덧 몇 년의 시간이 지나버렸어요. 

엄마가 되고 나니 시간이 왜 이렇게 훌쩍 지나갈까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사회적으로는 ‘경력 단절 여성’이 되었죠. 경력 단절이라는 말에 사실 큰 의미를 두진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자꾸 이 단어가 제 마음 속에 남더라고요. 


어느 날 한 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할 때였어요. 간혹 직업란을 체크해야만 가입이 완료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지금이야 SNS와 연동되어서 정말 간단하게 가입이 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세세한 사항을 기입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회원 가입할 때마다 저는 경력 단절이 된 상황을 매번 마주해야만 했어요. 

‘주부'가 직업 항목에 있는 경우는 복불복 이더라고요. 

그럴 때는 ‘무직’이나 ‘기타’에 체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이걸 만드신 분은 누군가가 이렇게 망설이고 있다는 걸 알았을까요. 


이런 경험이 몇 번 쌓이고 나니 괜한 오기가 생겼어요. 


망설이지 않고 직업란 체크를 하고 싶어 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새삼 경력 단절 여성을 위한다는 교육 프로그램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답니다. 네이버에 경력단절이라고 검색을 해보았어요. 

‘경력 단’까지만 타이핑했는데 친절하게 자동 완성 검색어가 그 다음 연관성 있는 단어들을 보여주었어요. ‘경력단절 여성 취업’,’경력단절여성 지원금’ 등. 


나를 이토록 신경 쓰이게 하는 경력단절의 뜻이 무엇인지 검색도 해보았어요.

 [근무 역량은 있으나 출산이나 육아 등의 사유로 직장을 그만둔 경험이 있는 여성, 경제활동을 중단하였거나 경제활동을 한 적이 없는 여성 중에서 취업을 희망하는 여성을 말한다. [네이버 어학 사전 중]]


그래요. 경력을 그만두게 될 수 있죠. 그런데 그 뒤에 단절이라는 말을 꼭 붙여야만 했을까요? 

‘단절’이라는 말도 너무 거슬렸어요. 

[단절 : 유대나 연관 관계를 끊음. 흐름이 연속되지 아니함. 네이버 어학사전] 


관계를 끊어 버리다니. 육아의 길을 택하게 되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회사를 오래 다닐 생각은 없었고, 

일과 육아 중에 굳이 택하라면 육아를 택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단절을 할 정도로 섬에 고립된 삶을 택한 건 아니란 말이죠. 


이렇게 궁시렁 해도 저는 이미 경력단절 여성으로 카테고리가 분류된 이후였네요. 

4대 보험은 이미 없어졌고, 신랑 밑으로 의료 보험이 들어가야만 병원에 가도 보험적용이 되었죠. 

이제 든든한 ‘보호자’없이는 안되는 신세가 되었어요. 

전 분명 한 아이의 엄마이자 어른인데, 마치 어른이 아닌 제 3의 인종이 되어버린 기분이었어요. 


일에 크게 미련이 안 생길 줄 알았죠.

 집에 있어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 저였으니까요. 

그런 제가 인터넷 검색을 하며 ‘어디 할 만한 일은 무엇이 있을까?’찾아보고 있지 멉니까. 

외벌이와 맞벌이의 비교, 일 안 하는 엄마를 향한 시선을 느낄 때면 더더욱 열심히 찾아보았어요. 

재취업 교육, 무료 국비교육 등등 많기도 하더라고요. 세상에 다시 ‘당당하게’ 나올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교육이었죠. 저는 또 ‘당당하게’라는 말이 거슬리기 시작했어요. 


육아하는 엄마가 어디 한 구석에 처박혀버린 신분은 아닌데 왜 프로그램의 컨셉은 다 비슷할까요? 

우울하고 어두운 모습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비교한 이미지도 ‘복붙’이었어요. 

일을 하러 어디에 나가게 되어야 저렇게 ‘당당하게’ 웃을 수 있는 것일까요? 

한 번 삐딱하게 보기 시작하니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투덜대기만 하는 일상이 지나가고 있었어요. 


어느 날, 동네 엄마가 파트타임으로 경리 일을 하게 되었다는 말을 했어요. 

몇 개월 재취업 프로그램을 듣는다고 하더니 작은 회사에 경리 업무를 하러 갔죠. "일은 할 만해요? 

원래 경력은 다르지 않아요?" 그녀는 사내교육담당 커리어가 있었어요. 

저와 비슷한 시기에 퇴사를 해서 아이 둘을 키우고 있었죠. 

전공과 경력을 다시 살려 취업을 하기엔 이미 시간이 오래 흐른 뒤이긴 했어요. 아무리 육아의 경험도 경력으로 인정해야한다고 여기저기 말이 나와도 현실은 조용했으니까요. 

신입으로 들어가기에도 경력직으로 들어가기에도 모든 것이 애매했죠. 


"아이들 어린이집 가는 동안 잠깐 하는 일이니까 괜찮은데...계속 눈치 보게 되니 너무 힘들어요. 

나이 차이도 그렇고. 물어볼 게 많은데 그 나이에 모르냐는 핀잔도 스트레스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이를 악물고 나갔던 그녀는 반년도 되지 않아 일을 접었어요. 

다시 ‘무직’인 상태로 돌아갔어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나는 어떠한 일로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경력으로 재취업하긴 공백이 길고, 싫어도 참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봐도 도통 답을 찾지 못했어요. 


아니, 답을 내리기가 무서웠다는 말이 더 맞겠네요. 답을 찾으려면 문제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지금의 모습을 오롯이 인정하기 싫었어요. 비교하는 말은 싫으면서도 사실 스스로 

계속 저울질하며 주눅들고 있는 제 모습을요. 이 상황을 인정하기 싫지만 방법을 몰라서 

그 자리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어요. ‘아니야! 아니라고! 난 단절되지 않았다고!’ 외치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어요. 그렇다고 세상이 저를 달래주는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지금에 와서 보니 일 하고 싶은 열정보다는 어딘 가에 소속된 안도감을 느끼고 싶었던 마음이 컸네요. 

일하는 사람의 신분만 갖고 싶었던 거죠. 

남들의 이목에 주눅들지 않는 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1순위였어요. 

그럴싸한 껍데기만 자꾸 찾고 있으니 스트레스만 가득 받고 있었죠. 


이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어요. 코로나 태풍이 저의 껍데기 고민을 날려버리며 민낯을 마주하게 해주었어요. 아주 적나라하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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