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죠앤 Sep 30. 2022

회사를 계속 다닐 마음은 없었지만

파트1. 이렇게 살아가게 될 줄이야


“너는 꼭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아. 너 하고 싶은 일 다해보면서.”


회사 신입 시절, 선배들의 신신당부를 들었어요. 회식자리에서 술이 얼큰하게 취한 뒤에는 

한참 위의 여자 선배들의 눈물 어린 속마음을 들을 수 있었죠. 

한창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20대 직장인이었으니 삶의 고충이 담긴 이야기가 마음 속에 남아있진 않았어요. 죄송하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었죠. 일과 육아, 그 모든 것을 해내기 위해 치열하게 보내는 그녀들의 노고를 제가 알 턱이 없었으니까요. 

그저 ‘결혼해서 아이 낳고 회사까지 다니는 일은 결코 쉬운 게 아니구나.’ 정도만 파악할 뿐이었죠. 


회의 중간에 걸려오는 어린이집 원장님의 전화에 한숨을 쉬고, 아이가 아픈 날에는 주저주저하며 어렵게 휴가 이야기를 꺼내는 그녀들의 속마음을 헤아릴 정도로 제가 철이 들진 않았었네요.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위로의 말과 따뜻한 커피 한잔이라도 건넸을 텐데 말입니다. 

철없던 저는 이렇게만 생각했어요. ‘아이를 낳으면 회사를 안 다니는 선택이 나을지도 몰라.’


그렇다고 아이에게 ‘올인’을 하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아이를 좋아하지도 아니었어요. 길가에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보고 귀엽다며 소리를 지르는 친구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오동통한 아기의 볼을 보고도 심드렁한 저였답니다. 그래서 제가 엄마가 된 모습은 전혀 생각해 보질 않았어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기 위해 결혼도, 출산도 택하지 않겠어!’ 라며 열정이 불타는 커리어 우먼도 아니었죠. 그저 하루하루 시간 가는 대로 살고 있었어요. 

미래를 계획하지 않았고 어떤 삶을 살면 좋을지 심도 있는 고민도 하지 않았죠. 주어진 회사 일을 하고, 상사에게 혼난 날은 술 한잔 마시고, 친구들과 맛집을 찾아 다니는 소소한 일상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떻게 든 살면 살아지는 게 삶’이라고만 생각했어요. 


딱히 회사에서 엄청난 경력을 쌓겠다는 목표가 없다 보니 칼퇴근과 착실히 나오는 월급이 최고였어요. 

하루하루 무탈하면 그게 잘 사는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연차가 쌓일수록 주위의 여러 변화를 더 많이 지켜보게 되었어요. 일찍 결혼한 동기들은 육아 휴직에 들어가고, 출산 후 일찌감치 복귀하는 선배들도 있었죠. 

신입 시절 ‘너 일만 하고 살아라’던 고참 선배들이 생각났어요. 결국 오래 지나지 않아 퇴사를 하게 된 분들이 많았죠. 혹은 프리랜서로 직종을 변경하시기도 했고요. 


이렇게 일과 육아 둘 다 챙기기 힘든데, 그녀들은 왜 다시 회사에 복직하는 것일까 의문이었어요. 


저는 육아 휴직에 들어간 동기들이 내심 부러웠고, 회사 복직을 서두르는 선배들이 사실 이해가 가진 않았거든요. 그 무렵 저도 결혼을 앞둔 시기라 그랬는지 좀더 생각이 많아졌어요. 

‘나는 결혼하면 어떻게 될까? 회사는 다니긴 할 텐데…만약 임신하고 아이를 낳게 된 이후에는? 그때도 나는 회사에 다니게 될까?’ 그럼에도 뚜렷한 답을 내리진 못했어요. 

아니, 사실은 ‘육아와 가정을 택하겠다’ 쪽으로 좀 더 마음이 기울여졌다는 게 맞겠네요. 회사를 오래 다니겠다는 마음은 크지 않았으니까요. 시간이 여유로워 보이는 주부의 삶을 내심 동경하기도 했고요. 


네, 아주 크나큰 착각이었음을 그때는 몰랐답니다. 

제가 은연 중에 하는 생각들을 우주가 들었나 봐요. 

온 몸과 마음을 다해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들어준다고 하죠? 저는 그토록 간절하진 않았는데 이상하게 우주가 제 사소한 생각을 알아차리고 말았네요.


“회사는 오래 다닐 생각 없고, 집에 있고 싶다고? 오케이. 접수 완료!” 


전혀 예상치 못한 시점에,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퇴사를 하고 말았어요. 아니, 할 수밖에 없었죠. 

한 번의 유산을 겪고 다시 임신을 했는데 초기부터 유산기가 보였거든요. 임신 5주차부터 침대와 한 몸이 되어야 했어요.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누워만 있어야하는 8개월의 임신 기간을 보내야 했답니다. 

대학병원 응급실을 수시로 드나들고 고위험 산모실에 수 차례 입원을 해야 했어요. 

그야말로 병원의 VIP 환자였죠. 

“아이고, 왜 또 오셨어요? “선생님들이 저를 보면 입을 모아 말씀하셨죠. 

그러게요. 저도 회사가 아닌 병원에 출퇴근을 하게 될 줄 알았나요 뭐. 


사직서를 내러 회사에 갈 수도 없었어요. 저의 모든 경력이 클릭 몇 번으로 쿨하게 끝나버렸죠. 

아이를 33주에 조산하면서 육아에 올인하게 되는 엄마의 삶으로 뒤바뀌게 되기도 했고요. 

이렇게 퇴사를 하고 이렇게 엄마가 될 줄은 상상도 하지를 못했어요. 

그저 일과 육아 중에 반드시 택해야 한다면 ‘육아가 낫겠지, 집에 여유롭게 있는 생활도 나쁘지 않겠지’라고 잠깐 생각해 본 건데 말입니다! 


그때서야 알았어요. 생각한대로 삶이 흘러갈 수 있다는 사실을. 

여유로운 시간 보내며 집에 있고 싶다는 철없던 생각이었죠. 이 생각을 생각치도 못한 시기에 현실로 이루어 주실 줄 누가 알았겠어요! 


‘여유 있겠다’는 말 백 번 천 번 취소합니다. 


임신 기간 내내 침대에 누워만 있다가 아이 낳고는 내 발로 드디어 ‘정상 보행’할 수 있나 싶었어요. 

아이는 인큐베이터에서 보름간 있었고, 퇴원하자마자 각종 병원 일정으로 꽉 잡혀버려서 자유롭게 다니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네요. 아무도 나에게 이 일 해라, 저 일 해라며 시간을 뺏진 않았지만, 

내 마음대로만 지낼 수 없는 시간만 부자인 엄마가 되었어요. 

왜 선배들이 기어코 다시 복직을 하려고 했는지 어렴풋이 알았어요. 돈을 벌어야 할 상황도 있었겠지만 회사에서는 그래도 ‘나’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요. 

‘여유로운 가정주부가 부럽다고? 으이그!’ 철없던 저에게 호통을 치고 싶었어요.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게 되니 잠깐 하는 생각도 조심해!’ 이 말도 꼭 해주고 싶네요. 

이전 01화 벼락부자를 꿈꾸다 철이 들었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