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by 안태현

저는 사람이 북적이는 카페에서 글을 쓰거나 읽는 걸 좋아합니다. 시끌벅적한 소음을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항상 이어폰을 귀에 낀 채로 크게 노래를 틀어둡니다. 외부의 소음이 제 귀로 들어오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가끔씩 눈을 감고 문장을 이어가기도 합니다. 그냥 노래와 키보드의 감촉, 지금의 기분에 따라 글을 써내려 갑니다. 그러면 어떤 물아일체의 경지에 오른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 책을 읽을 때 듣는 노래와 분위기가 맞아 떨어지면 정말 절정에 이릅니다. 아쉽게도 집에서는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합니다. 집에서 글을 쓰다보면 뭔가 답답한 기분도 들거니와, 책을 읽다가도 금방 다른 책을 집어내서 읽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아마도 집중력 결핍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지금도 오늘 할당량의 소설을 쓰고 왔습니다. 할당량을 넘겨 써버릴 경우, 그 후에 오는 후폭풍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꼭 지키려 합니다. 다 쓰고 난 뒤 주변을 살펴봤습니다. 다들 공부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사실 글쓰기에 가장 제격인 카페를 찾는다면 신림과 노량진에 많이 산재해 있습니다. 가장 애용하는 곳들이 있지만,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비밀에 부칩니다. 갑자기 이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이유는 정말 2시간 동안 주변에서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도 못 알아차렸다는 놀라움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니 들어올 때는 만석이었던 자리들 곳곳이 공석이 됐습니다. 어떤 것에 끊임없이 집중했다는 생각을 하니 뿌듯합니다. 어쩌면 집중력 과잉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늘 저는 저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지킬 앤 하이드 박사가 현실에 존재한다면 내가 아닐까 착각도 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상상은 자유입니다. 사실 이 글을 쓸 처음의 목적은 ‘위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첫 문장을 저렇게 써버렸으니 처음의 목적과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항상 살다보면 이렇게 처음의 목적을 망각하고 기분에 따라 변화하는 게 많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도 사실은 모두 완성했다고 생각했지만, 기분에 따라서 다 뜯어고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처음 이 소설을 쓴 목적도 변했습니다. 목적은 늘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갑니다.


감정 역시 늘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면서 영원할 것만 같지만 순식간에 휘발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분노, 좌절 등입니다. 하지만 화석처럼 영원히 굳어버리는 감정들도 많습니다. 사랑과 희망 등입니다. 하지만 늘 감정과의 싸움에서는 부정적인 것들이 긍정적인 것들을 이겨버립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목적과는 달리 변해버린 상황 속에서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관심이 덜 해지거나, 처참히 상처 받아서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긍정적으로 안고 있었던 감정들을 가려버리고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쉽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내가 상처 받습니다. 이후에 부정적인 감정이 휘발되고 나서는 모든 게 늦어버린 것만 같습니다. 과연 내가 복구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계속해 좌절로만 향합니다.


그렇지만 화석처럼 단단해진 감정만 있으면 됩니다. 휘발된 감정에 대해서 뭐라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돌아본 사람에게 침을 뱉을 사람은, 나밖에 없습니다. 사과를 하면서 조금씩 복구하면 됩니다. 목적지를 잃어버린 것 같아도 결국 목적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만 있다면 어떻게든 그 목적지에 도착할 겁니다. 지금 그래서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사과를 합니다. 기분에 따라 글의 목적지를 잃어버리고, 돌고 돌아서 이렇게 글의 목적으로 다가가려 하고 있습니다. 글도 길을 잃었지만, 다시 ‘위로’라는 주제로 향하고 있는 걸 보니깐 괜찮지 않나요? 그러니깐, 다 괜찮습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건, 늘 존재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이고, 당신의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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