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깐 그깟 게 뭐라고”
인도네시아 축구장 참사 기사에 달린 댓글 중 하나였습니다. “그깟 축구가 뭐라고”라는 말이었는데, 공감수가 꽤 높더라고요. 이처럼 세상 편한 말이 또 어디 있을까요. 이 말에는 어떤 위로도, 공감도 아닌 비하의 느낌만이 묻어있어서 퍽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사망자만 125명이 나온 상황에서, “그깟 축구가 뭐라고”라는 말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댓글 작성자는 그깟 댓글이 뭐라고 이런 글을 쓰냐며 혀를 끌끌 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깟’으로 채워진 머릿속이 어지러워 어떻게든 생각을 풀어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촌철살인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짧고 간결한 말로 허를 찌른다는 뜻이죠. 원래는 단순한 말로도 사람이 상처 입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이었는데, 지금은 앞의 뜻으로 많이들 쓰고 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팩트폭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 촌철살인을 애용하는 사람들은 늘 강인해보입니다. 마치 무림의 고수처럼 일격으로 적을 쓰러뜨릴 것만 같죠. 하지만 무림의 고수들은 함부로 힘을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뜨내기들만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무공을 사용합니다. 무협지의 많은 이야기들에는 이 뜨내기들의 힘 과시로 인해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무궁무진합니다.
저는 ‘촌철살인’, ‘팩트폭력’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닙니다. 타인을 쓰러뜨리겠다는 의지만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생각도 하지 않고, 일단 쓰러뜨리고 보겠다는 태도는 강인함 보다 악의만 가득 차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비평을 할 때도 작품의 못난 점을 지적하기보다 작품의 장점을 부각시키는데 집중합니다. 장점을 계속 살리다보면 언젠가는 부족한 점도 고쳐지기 마련입니다. 아픈 곳을 괜히 찔러서 상처를 내면, 피만 흐를 뿐 치유되기는 힘듭니다.
요즘은 다들 어떻게든 깎아내리기 바쁩니다. 인도네시아 축구장 참사 기사에서 가장 공감수가 높았던 댓글은 “미개국 수준”이었습니다. 열강이라는 신기루가 사라진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국가의 격을 평가하고 있네요. 희생자들을 기리는 댓글은 몇 없다는 게 조금 슬펐습니다. 공감이 사라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깟’이라는 단어도 그랬습니다. 누군가에게 가치 있는 것을, ‘그깟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타인보다 자신이 우위에 서 있다고 느끼는 겁니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자신의 책 ‘행복의 정복’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질투는 평범한 인간 본성이 가진 여러 가지 특징 중에서 가장 불행한 것이다. 질투가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불행을 안기고 싶어 하고, 또 처벌을 받지 않고 그렇게 할 수 있을 때는 반드시 행동으로 옮긴다.” 이 이야기 뒤에는 결국 질투 끝에 타인의 장점을 빼앗으려고 하면서, 계속 되는 불행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는 말들이 이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과 자존심을 자주 혼용합니다. 자존감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뜻합니다. 하지만 자존심은 어떠한 경쟁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감정입니다.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들은 자존심만 챙기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고서는 절대 궁극적인 힘을 가질 수 없습니다. 마음의 거울 속 자신이 너무나 부족해보일지라도 자신감만을 챙기려는 건 서로에게 독이 됩니다. 모든 인간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높이기 위해 타인에게 독이 되는 행동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깟’ 자존심 하나 챙기자고 자존감을 깎아내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이어오다 보니 세상 사람들이 굳이 팩트폭력 하면서 살아가야 할까 싶습니다. 누군가가 숨기려고 하는 허점들을 굳이 파헤치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것을 억누르고, 슬픔에 차 있는 누군가를 끝없이 무너지게 하는 건 정말 ‘폭력’일 뿐입니다. 짧은 문장으로 누군가를 찌르려고 하기보다, 짧은 말이라도 누군가를 아프게 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촌철살인’이 원래의 ‘촌철살인’의 뜻을 찾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러면서 혹시나 이 글이 누군가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지 않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