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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UNGIL큰길 Feb 17. 2022

아내와 싸우고 난 후 내 저녁밥은 없었다.

아내와 싸운  집에 늦게 들어가기 시작한  4일째가 되었다.


아내와 싸우고 난 후 며칠 동안 감정의 변화를 경험했다. 첫날엔 강하게 화가 난 상태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수그러져 갔다. 그리고 나흘 만에 아내의 입장까지 생각해보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번엔 감정의 골이 깊다고 생각했고 꽤 오래갈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마음이 정리될 줄이야. 이제 슬슬 출구전략을 생각할 때가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어떻게 풀어야 할지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가서 선뜻 화해를 하자고 하기엔 아직 앙금이 남아 있었고 어색했다.


출근 후 일과 시간엔 업무에 집중하기로 했다. 업무에 집중하다 보니 금방 시간이 지나갔다. 다시 퇴근시간이 되었다. 오늘도 그냥 회사에 남기로 했다. 딱히 업무를 더하고 싶진 않아 전 날에 이어 인생계획 만드는 일을 계속하기로 했다. 먼저 목표를 만들었다. ‘경제적 목표, 커리어 목표, 건강적 목표, 관계적 목표, 자기 계발 목표’ 다섯 가지 목표를 만들었다. 목표가 눈앞에 보이니 마음의 열정도 새록새록 피어났다.


사실 목표와 실행계획을 세우고, 실천을 위한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일이 내 주특기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일을 멈추고 있었다. 그게 벌써 일 년 남짓되었다. 다시 시작해야지 하면서도 선뜻 시작하지 못했다. 나의 의지가 게으름을 이겨내지 못한 게 원인이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지만 언제쯤 다시 모범적인 생활(?)을 시작할 수 있을지 계획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내와의 싸움이 나를 목표를 만들고 계획하는 인간으로 다시 서게 하였다. 집에 일찍 들어가지 않기로 마음먹고 난 후에 우연히 찾아온 긍정적 변화였다.


나는 다섯 가지 인생 목표를 세운 후 다시 각 목표를 좀 더 작은 단위의 목표로 세분화하기로 했다. 먼저 경제적 목표 달성을 위한 작업부터 시작해보았다. 경제적 자유라는 큰 목표 아래 재테크 공부를 하겠다는 중간 목표를 설정했고, 재테크 공부를 위해 1년에 50권의 재테크 서적 읽겠다는 좀 더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1년에 50권의 재테크 서적을 읽기 위한 주간 목표와 하루 단위의 목표까지 만들었다. 그다음으로 실제 실행을 위해 언제 어디서 책을 볼 건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까지 완성했다.


이렇게 각각의 목표 달성을 위한 행동계획을 세우고 행동계획을 달성을 위해 어떤 활동들을 할지를 결정하면 어느 정도 인생계획표가 완성될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매일 정해진 활동들을 실천하게 되면 나의 인생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도 생겼다.


가슴이 떨렸다. 막연했던 생각들을 표로 만들어 구체화하니 내가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훨씬 더 명확해졌다. 사실 지금 당장 내가 세운 계획대로 실천한다고 해도 바로 성공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시행착오를 겪으며 실행계획을 수정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내가 목표를 달성하는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 건 확실하다.


"계획표를 만들고 나니 내 마음도 진취적으로 변한 것일까?"


 오늘은 좀 더 일찍 집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아내를 향한 나의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아내와의 기싸움을 계속 이어가는 것은 시간 낭비이고 에너지 낭비였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부정적인 곳에 쓸 이유가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는 좀 더 밝고 긍정적이며 좋은 것에만 집중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아내와의 관계도 아직은 어색하지만 조금만 노력해보기로 했다.  


 



저녁식사 전에 집에 들어가니 아이가 반겼다.  


“아빠!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들어왔어? 일 다했어?”


“응 민석이 보고 싶어서 일 빨리 끝내고 들어왔지.”


며칠 만에 일찍 들어온 나를 반기며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평안함과 따스함이 느껴졌다. 역시 집과 가족이 내 마음의 안식처임을 확실하게 느꼈다. 한편 며칠간 속 좁게 행동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아내는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심 내 밥도 준비되어 있길 기대했다. 잠시 후 아내가 저녁 준비가 다 됐다고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메아리치듯 들렸다.


“민석아 밥 먹어~”


내 곁에서 게임을 하던 아이는 “응. 알았어~”라고 대답하며 곧장 부엌으로 달려갔다. 평소 같았으면 나도 함께 달려가서 밥을 먹었을 텐데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혹시나 아내가 나를 부를까 기다리고 있었지만 끝내 나를 부르는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예고도 없이 일찍 집에 들어왔고 아직 아내는 나를 향한 불만과 서운함이 남아 있을 것이다."


부엌으로 혼자 달려갔던 아이는 저녁을 먹자마자 다시 내가 있던 거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이의 행동이 이상했다. 내가 옆에 같이 있었는데도 아이는 같이 밥을 먹자고 하거나 왜 밥을 안 먹는지에 대해서도 일언반구 하나 없었다.


‘애가 나와 함께 밥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며칠 만에 잊은 걸까?’ 아님 혹시 ‘나와 아내가 싸운 걸 알고 일부러 서로 거리를 두게 하려는 것일까?’ 나는 아이의 생각이 궁금했다.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민석아, 너 아빠랑 엄마랑 싸운 거 알고 있었어?”


내 질문을 듣고 아이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진짜? 아빠랑 엄마랑 싸웠어? 진짜? 언제 싸웠는데?”


애는 그때까지 우리가 싸웠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언성을 높여서 싸운 건 아니었지만 말 한마디 섞지 않을 정도로 냉기류가 흘렀는데 그걸 모르고 있었다는 게 더 신기했다. 나는 순간 당황하여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아.. 아니야. 아.. 안 싸웠어.”


어색한 내 말투에 아이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확신을 한 듯했다. 아이는 나와 아내 사이를 오가며 분위기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후 확신에 찬 말투로 우리 둘에게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어휴. 싸웠네 싸웠어."


나는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있다가 아내가 방에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조용히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이에게 주고 남은 음식이 용기에 담겨 냉장고 안에 있었다. 가급적 아내가 만든 음식을 안 먹으려고 했지만 참을 수 없었다. "그래 자존심이고 뭐고 일단 먹고 보자" 나는 허겁지겁 배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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